삼성전자가 반도체 혁신 소재 기술 등 원천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계기로 소재·부품의 자립이 한국 산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시점이어서 삼성전자의 시도가 돋보인다. 삼성전자는 올해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정 테마로 반도체 혁신소재 개발을 포함해 모두 15건의 연구지원 과제를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2013년 시작된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기초과학, 소재기술, 정보통신기술(ICT) 3개 연구 분야에서 매년 3차례(상·하반기 자유공모, 연 1회 지정 테마) 과제를 선정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선정된 지정 테마 과제는 혁신적인 반도체 소재 및 소자·공정 기술, 차세대 디스플레이, 컨슈머 로봇, 진단 및 헬스케어 솔루션 4개 분야다.
이번 심사 결과 반도체 분야에서는 송윤흡 한양대 교수의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100층 이상 집적하기 위한 신규 소재’ 등 6개가 선정됐다. 송 교수의 과제는 회로를 100층 이상 쌓아 기존 낸드플래시가 가진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전압을 줄이는 절연체를 사용하는 등 메모리층과 채널층을 각각 새로운 소재로 대체한다.
이장식 포스텍 교수는 대표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의 속도를 높이고, 소비전력은 낮추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강유전체와 산화물반도체를 결합하는 등 소재, 공정온도, 박막공정에 변화를 줘 기존 대비 속도는 1000배까지 높이고, 작동전압은 5V를 낮추는 것이 목표다.
박기복 유니스트(UNIST) 교수는 새로운 소재를 적용해 소비전력과 발열을 줄이는 연구에 나선다. 공상과학 영화 소재로 쓰이곤 하는 영국 이론물리학자 폴 디락의 ‘반물질’(antimatter) 개념을 응용한 것으로, 외부자극에 의해 도체-반도체 성질이 변하는 새로운 소재(‘디락 반금속’)를 개발해 미량의 전류만으로 메모리 소자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조가 간단하고 스위칭의 전력도 낮기 때문에 발열 역시 떨어지게 된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김태경 홍익대 교수의 ‘올레드 청색 발광 소재의 효율 한계 극복’ 등 5개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김 교수의 연구는 기존 발광재료에서 활용하지 않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 기존 청색 형광 소재가 가진 효율 한계(40%)를 극복하는 프로젝트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중 하나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자체 발광 특성과 함께 화면이 밝고, 명암비가 뛰어나 스마트폰 기기에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청색 형광 소재는 적색과 녹색에 비해 수명이 짧고 효율이 낮은 단점이 있다.
배덕규 헥사솔루션 대표의 과제는 빛을 작은 크기의 한 지점에 정확하게 모아주는 새로운 렌즈를 만드는 게 목표다. 낮은 제조비용과 비교적 간단한 공정으로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디스플레이의 밝기와 선명도 역시 높일 수 있어 디스플레이 산업계의 파급 효과가 클 전망이다.
로봇 분야에서는 ‘로봇 피부에서 압력, 온도, 거리, 진동 등을 감지하는 말초신경계 광섬유센서 개발’(김창석 부산대 교수) 등 2건,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미세먼지를 크기와 종류별로 구별해 제거할 수 있는 공기정화 기술’(유용상 KIST 교수) 등 2건이 각각 선정됐다. ‘차세대 컴퓨팅 및 시스템 아키텍처’ 분야에서도 공모했으나 선정된 과제는 없었다.
국가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하고 우수한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국내 민간기업 최초의 연구지원 사업으로, 지금까지 총 532개 연구과제에 6826억원이 지원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해 이번 연구과제를 선정한 것은 아니지만 소재·소자 등 원천기술 확보는 장기적으로 국가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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