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은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36) 측이 법정에서 사전 계획된 범행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고씨의 변호인은 23일 제주지법 제2형사부(정봉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피고인은 전 남편이 성폭행을 시도하자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전남편을 이혼 과정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범행도구를 검색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살해 목적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펜션에서 전남편을 살해한 뒤 혈흔을 청소하고, 두 차례에 걸쳐 시신을 훼손하고 은닉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공소장에는 피고인이 검색한 물품 내역 중 졸피뎀, 혈흔, 전기충격기, 니코틴 치사량, 뼈 강도·무게, 제주 바다쓰레기 등 살해를 준비하는 듯한 단어가 많다”며 “다음 재판에선 피고인의 우발적 범행 주장과 배치된 행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변호인에게 요구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 측이 대항하기 위한 살인이라고 주장한다면 범행 이후에 피고인이 피해자의 폰으로 피고인에게 발송한 문자 메시지는 우발적 살해라는 주장과 대치한다”며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범행 이후 전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처럼 꾸민 문자 내역을 증거로 제출했다. 또 범행도구 사전 검색, 졸피뎀 처방 내역, 피고인이 고도의 평정심을 갖고 펜션 업주와 장시간 통화한 점, 피고인의 몸에 난 상처가 다른사람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감정 결과 등을 보면 우발적 범행이 아닌, 계획적 범행임을 자신하고 있다.
재판이 끝난 뒤 고유정 측 변호인은 “그동안 접견을 하며 많은 대화를 했지만, 현재 다른 사건(의붓아들 의문사) 조사를 받는 상황이어서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 범행 과정 등에 대해 대부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씨가) 억울한 마음과 자신의 범행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혼재돼 있다”며 재판부의 요구에 대해 입장을 정리해 다음 재판에서 밝히겠다고 말했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심리에 앞서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 측 입장과 쟁점을 정리하고 심리 계획을 세우는 절차다. 정식 공판과 달리 피고인이 직접 재판에 출석할 의무는 없다. 고씨도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제주지법 형사2부는 이날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 측의 입장과 쟁점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하고, 오는 8월 12일 첫 정식 재판을 열기로 했다.
공판준비기일이 아닌 정식 공판인 만큼 피의자인 고씨는 법정에 직접 출석해야 한다.
이 재판에서는 고씨의 계획적 범행 여부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고씨에 대한 사형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민적 법 감정이나 국민 정서에 부합한 형벌이 내려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날 재판은 제주지법 사상 처음으로 방청권을 선착순으로 배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법원은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재판인 만큼 법정 질서 유지를 위해 앞으로 진행될 고씨의 재판에 대해 방청권 소지자만 방청을 허용하기로 했다.
고씨는 지난 5월 25일 오후 8시 10분부터 9시 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모(36)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혐의는 살인과 사체손괴·은닉이다.
검찰은 이달 1일 20일간 이어진 수사를 마무리하고 고씨를 재판에 넘겼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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