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일강은 상류의 흙을 운반해 하류에 비옥한 삼각주를 만들어 주었고, 광활한 농경지는 왕국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도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묘사했다.
이집트인들은 풍부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나일강 상류에 수많은 유적들을 남겼다. 나일강을 통해 운송된 돌들은 거대한 피라미드와 신전들로 세워졌으며 화려하고 정밀한 내부는 수많은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채워졌다.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에서 아부심벨의 신전까지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세심하고 정밀한 묘사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여정이었다.


경이로운 고대의 유적이 지금의 위용을 유지하는 데는 현대의 노력이 더해진 덕이었다. 건조한 불모지에 세워져 오랜 기간 유지될 수 있었던 유적은 아스완댐의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놓였지만 국제사회 지원 속에 원형 그대로 이전될 수 있었다.
유적지를 돌아보며 복잡하고 심오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종교관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이으려 한 그들의 의지는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비록 수많은 도굴과 훼손의 아픔을 겪었지만, 삶의 흔적을 간직한 무덤은 또 하나의 역사서로 후대에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 상상력을 제공한다. 주로 ‘저주’로 표현되는 상상력은 영원한 안식을 방해한 미안함의 발로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고대에는 왕가의 여행이었을 유람선을 타고 상부 이집트를 돌아본 경험도 나일강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주변 작은 농경지와 강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집트인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강 너머 사막으로 뜨고 지는 태양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집트를 만나기 위해 이번에는 뱃길이 아닌 하늘 길을 따르기로 했다. 유람선을 이용해 나일강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리면서 하부 이집트까지 가기에는 여행객에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다. 나일강 크루즈를 아쉽게 뒤로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아스완 비행장을 떠난 비행기는 아스라이 사막을 내려다보면서 나일강을 따라 카이로를 향해 날아간다.

기내에서 역사책을 들여다보며 수천 년의 고대 이집트 역사를 가늠해 본다. 람세스, 네페르티티, 투탕카멘과 같은 이름이 흐르듯 지나쳐 간다. 하부 이집트로의 이동은 나일강 상류에서 하류로의 이동을 넘어 고대에서 현대로의 시간을 순식간에 지나오는 듯했다. 오래지 않아 드디어 창밖으로 모래사막 풍경이 아닌 도시 모습이 나타나더니 비행기가 카이로 공항에 내려앉는다.
나일강 하류에 꽃 모양으로 펼쳐진 나일 삼각주를 만들어 낸다. 나일 삼각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삼각주 지형 중 하나로 서쪽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동쪽으로는 포트사이드까지 약 240㎞의 넓은 지중해 해안선이 펼쳐져 있고 남북 간의 거리도 160㎞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토양 중 하나인 이 삼각주에 1억 이집트 인구 대부분이 모여 살고 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는 삼각주 남단에서 약 25㎞ 남쪽, 나일강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아랍권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인 카이로 이름은 969년부터 불렸으나 도시 역사는 이집트 역사와 같이한다. 카이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인 데다 나일 삼각주의 풍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고대부터 통치의 중심지로 여겨졌다. 기원전 31세기, 고대 이집트가 통일되고 세워진 수도, 멤피스는 현재의 카이로 남쪽 교외에 위치해 있으며, 아랍인이 이집트를 정복하였을 당시 세워진 도시들도 현재의 카이로 지역이었다. 현재 이름은 10세기에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를 지배하였을 때 도시 북쪽에 새로운 수도 카히라를 건설하였는데, 카히라는 ‘승리’라는 뜻으로 카이로의 어원이 되었다.
카이로에서는 고대 이집트부터 로마제국, 이슬람 왕조, 이집트의 현대사에 이르는 역사적 흐름과 오늘날 이집트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카이로는 지난 10년 동안, 아프리카의 현대적인 허브로 성장해 왔다고 한다.


‘빵빵. 빵빵빵…’ 교차로에 차량들이 한데 뒤엉켜 경적을 울려댄다. 아직 정비되지 못한 대도시의 혼란을 겪으며 드디어 현대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도로를 용케 뚫고 나온 차량이 호텔 앞에 멈춰 서고야 깊은 숨을 내쉬어 본다. 카이로 공기는 모래사막 영향인지 뿌연 바람과 함께 적도의 끈적끈적한 열기를 가득 안고 있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카이로의 여행을 기대해 본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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