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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자기최면에 더 이상 속지 마세요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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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12 13:00:00 수정 : 2023-12-10 15: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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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다”고 말할 용기 / “나 아픈 사람”…정신과 상담 치료기 유튜브 공유 / 학창시절 왕따부터 현재 질환까지 / 블로그 후기·우울증 치료기 출간도 / 정신과 진료 편견 없애는데 기여 / 현대인의 친구 ‘과로·스트레스’ / 2018년 우울증 76만명… 50∼70대 많아 / 10∼20대 증가율 9년 새 91% 심각 / 시작은 섭식장애 등 몸의 이상부터 / 방치 땐 악화… 전문의 치료 꼭 필요

“정신과 병원에 다녀왔어요.”

 

가족이나 주변 지인이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까.

 

우리 사회에는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우울증, 불안장애 등 마음이 힘든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마음의 병은 더 나빠진다. 정신과를 향한 시선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최근 자신의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를 드러내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신과 진료 앞에 세워진 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마음이 아픈 환자예요.”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서 ‘동네개그맨 김정구’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구씨는 ‘나 아픈 남자’라는 주제로 우울증과 정신건강에 대한 영상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우울증의 증상이나 정신과 의사들이 알려주는 우울할 때 해야 하는 행동 등을 이야기한다.

 

9개월 전 영상에서는 정신과 의원을 다녀오는 모습을 공개했다. 상담할 내용을 정리한 뒤 병원을 방문하고, 정신과 진료를 받은 뒤 소감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을 바꿔보고, 병원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라고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나 아픈 남자’라는 주제로 우울증 영상을 올리고 있는 동네 개그맨 김정구씨(왼쪽 사진)와 최근 힘들었던 학교 시절을 고백한 뷰티크리에이터 ‘미닝’

뷰티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미닝’도 최근 자신의 우울증 심리상담 후기를 담은 영상을 공개해 응원을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친구들이 자신을 오해해 안 좋은 소문까지 번져 힘들어했다. 그 시기를 지나 겨우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적응을 못하면서 결국 대학교를 자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우울증이 왔고 정신과 진료, 심리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미닝은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내가 뭘 잘못했지’라며 원인을 자신에게 찾았다”며 “현재 어떤 감정인지, 마음 상태인지 스스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않아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상담일지를 공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A씨는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 심리상태, 심리상담을 받는 과정 등을 정리해 놓고 있다. A씨는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고 심리상담에 대한 마음의 문턱을 낮추고 싶어서”라고 적었다.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A씨는 정신과 진료, 심리상담센터를 찾게 됐다. 그는 “평생 심리상담 같은 건 받을 일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고 정신과 갈 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이 힘든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한참 늦어버린 뒤였다”고 밝혔다. 심리상담센터와 정신과 진료를 같이 진행하고 있다는 그는 “심리상담은 마라톤을 뛸 수 있게 하는 페이스메이커, 정신과 선생님은 길목에서 초코파이와 물을 건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B씨는 ‘나는 우울증 환자’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지고 소화가 잘되지 않는 증상 등을 겪으면서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자각했지만 피했다. 상담과 약을 찾는 자신에 패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우울증을 받아들여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했다. B씨는 최근 글에서 “스스로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직면하지 못했다”며 “꾸준히 상담을 받으면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준비를 하고 움직이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자신의 변화를 적었다.

 

최근 서점가에서도 자신의 정신과 상담기를 엮은 책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아임 낫 파인’ 등의 에세이가 잇따라 출간됐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씨는 책에서 “생각만 하고 있을 때는 감정이 섞여 있는데, 말로 꺼내면 자신을 관찰자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다”고 적었다.

최근 서점가에서 자신의 정신과 상담기를 출간해 주목을 받고 있는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왼쪽 사진)’ ‘아임 낫 파인’

이 같은 분위기를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는 “정신과적 문제는 초기에 빨리 개입하면 쉽게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오픈해야 한다”며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방송에서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그것을 보고 병원을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다”며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문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안석균 교수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자신의 마음상태, 생각, 태도 등에 대해 정리하다 보면 싫은 모습, 뿌듯한 모습 등을 발견하게 된다”며 “싫은 것은 극복할 수도 있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다 안 될 수도 있고, 결국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건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현대인의 정신은 그리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76만6959명으로 집계됐다. 2014년 60만477명에서 27.7% 증가한 수치다. 절대적인 우울증 환자 수는 50∼70대가 많지만, 증가율을 보면 최근 10∼20대가 눈에 띈다. 10~29세 환자 수는 2010년 7만5352명에서 지난해 14만4028명으로 91% 증가했다.

 

공황장애 등을 포함하는 기타 불안장애는 2014년 50만1516명에서 지난해 65만3880명으로 30.4% 늘었다. 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및 적응장애로 진단받은 환자와 식사장애 환자도 같은 기간 각각 27.8%, 16% 증가율을 나타냈다.

하지만 한 번도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지 않았다면 선뜻 시작하기 망설여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찾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극복하기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방치하면 더 나빠진다고 강조한다.

 

안 교수는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서 ‘잠을 잘 못 자지 않니’, ‘밥을 못 먹고 있지 않으냐’ 등 신체변화를 먼저 받아들이게 하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고 이야기하면 좋다”고 했다. 그는 “병원에 간다고 해도 약을 먹고 증상이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약을 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병의 뿌리를 뽑아내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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