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진 두 장이 있다. 첫 번째 사진은 한 여성 가수가 스탠딩 조명등 앞에서 속옷을 내리고 다른 속옷으로 갈아입는 장면이다. 다음 사진은 남성 가수가 비닐봉지를 쓴 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다. 두 사진 모두 대중가요 뮤직비디오(Music Video) 영상의 한 부분이다. 이 영상들의 등급분류는 ‘15세 이상 관람가’로 확인됐다.
뮤직비디오는 음반을 발매할 때 노래에 어울리는 동영상을 추가해 비디오 클립 형태로 제작하는 것으로, 유튜브 등 인터넷 공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연령 제한을 가리키는 등급보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부적절한 장면을 담고 있는 경우가 적잖다. 관할 당국은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27일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등에 따르면 영등위는 현재 온라인 공간에서만 상영 가능한 ‘인터넷 뮤직비디오’에 한해 사전 등급분류를 시행하고 있다. TV 등을 통해 방송되는 ‘방송송출용 뮤직비디오’는 각 방송사가 자체 심의를 통해 등급분류를 한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들은 대부분 이 방송송출용 뮤직비디오다.
등급분류는 제한 연령에 따라 ‘전체관람가’와 ‘12세이상 관람가’, ‘15세 이상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청불)’, ‘제한상영가’ 등으로 나뉜다. 당국의 별도 심사가 없는 탓에 선정성이나 폭력성 측면에서 표시된 등급과 맞지 않는 뮤직비디오도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하나의 뮤직비디오를 놓고 방송사들이 각기 다른 등급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다.
한 예로 유명 가수 싸이의 노래 ‘젠틀맨’ 뮤직비디오에는 공공시설물을 파손하는 장면이 담겨 있어 KBS에서는 ‘방송불가’, SBS에서는 편집본 한정 ‘12세이상 관람가’, MBC에서는 ‘15세이상 관람가’로 분류됐다. 사람이 비닐에 포장되는 장면이 담긴 한 뮤직비디오는 KBS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MBC와 SBS는 ‘전체관람가’ 등급으로 분류했다.
일부 뮤직비디오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시행령에 규정된 등급표시 기준을 위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등급 크기를 작게 표시하거나 노출 시간을 짧게 하는 식이다. 해당 시행령은 뮤직비디오 화면 대각선의 1/20 이상 크기로 등급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영등위가 배포한 안내서에는 등급을 3초 이상 노출하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뮤직비디오 등급분류가 방송사마다 제각각이거나 등급표시 기준을 위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영등위는 영비법 시행령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제재는커녕 권고조치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대안신당(가칭) 최경환 의원은 “방송송출용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으로 송출될 경우 영등위에서 등급분류를 다시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며 “방송사별로 제각각인 등급분류나 기준을 위반한 뮤직비디오들에 영등위가 아무런 조치도 없이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올해 영등위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내용을 질의했다. 이에 영등위 이미연 위원장은 “알겠다”고 답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