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Y(74)씨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 정책 홍보를 도왔다. 노동부 장관까지 만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1년 6개월가량 지난 요즘 그는 인쇄업 불황에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까지 겹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는 7명이던 직원도 2명을 줄였다. 그는 통화에서 “제도를 너무 급작스럽게 하다보니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대외 여건이 나쁜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과 각종 규제로 신규 투자에 나서기도 여의치 않다. 여유 있는 기업들조차 생산활동보다 부동산 투자 등에 관심을 보이고 생산설비를 동남아 등 해외로 옮기는 데 열중하고 있다.
경기 불황이 심화하면서 부실 징후를 보이는 기업이 올들어서만 20곳 늘어났다. 이들 기업은 구조조정 수순을 밟게 된다.
지난해 새로 생긴 기업 수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다. 신생 기업 10곳 중 9곳이 ‘나 홀로 사장’인 영세기업이다. 그나마 창업 후 5년 이상 버티는 기업은 10곳 중 3곳에 그쳤다. 특히 1인 창업이 몰려 있는 숙박·음식점업은 5년 생존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12일 금융감독원은 올해 기업 3307개사를 대상으로 정기신용위험을 평가해 210곳을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부실징후기업은 C등급 59곳, D등급 151곳으로 지난해보다 20곳이 늘어났다. 이들 기업은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이나 회생 절차 등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부실징후기업은 중소기업에 몰려 있다. 부실징후기업 가운데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의 대기업은 1곳 줄어든 반면에 중소기업은 21곳이나 늘었다. 부실화된 중소기업이 늘어난 건 세부평가대상 기업이 늘어난 데다가 실적도 소폭 하락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부실징후기업 중 중소기업 비중은 2016년 84.6%에서 올해 95.7%로 매년 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권은행이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했으나 워크아웃 등 관리절차를 신청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사후관리를 강화토록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불황 여파는 기업의 신생·소멸 수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지난해 새로 사업을 시작한 신생 기업 수는 92만개로, 전년보다 7000개(0.7%) 늘었다. 이는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신생기업 대부분은 소규모 영세 창업이다. 신생기업의 89.3%(82만1000개)가 종사자 1명뿐인 기업이고, 70.7%(65만개)는 매출액이 5000만원 미만이었다.
20∼30대 젊은 창업자보다는 40대 이상 창업자가 많아 10명 중 7명꼴이다. 신생기업 대표자는 40대가 28.9%로 가장 많고 50대(25.5%), 30대(22.3%), 60대 이상(14.4%)이 뒤를 이었다. 최근 제조업·조선업 불황 등으로 명예퇴직한 40·50대가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 생긴 기업이 많지만 소멸기업 숫자도 무시할 수 없다. 2017년 소멸기업은 69만8000개로 전년보다 11.5%(7만2000개) 늘어 2014년 이후 가장 많았다. 창업했더라도 오랜 기간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2017년 기준 신생기업의 1년 생존율은 65.0%, 5년 생존율은 29.2%였다. 2016년 창업한 기업 중 35%가 이듬해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퇴직한 40·50대가 창업으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건 아는데, 대안이 없어 창업에 나서다보니 문 닫는 기업, 부실기업이 늘 수밖에 없다”라며 “(해법은)경기를 띄우는 것밖에 없는데, 지금처럼 고용률, 실업률 수치만 국한할 게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분야를 찾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백소용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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