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9년이 가고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교수들이 선정한 2019년을 요약하는 사자성어인 ‘공명지조(共命之鳥)’(자기만 살려고 하면 공멸한다)는 이미 많이 보도된 바 있다. 나아가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두 번째로 많은 교수가 선택한 ‘어목혼주(魚目混珠)’이다. 이 말의 원뜻은 ‘무엇이 물고기 눈인지, 무엇이 진주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기 힘듦을 의미한다.
지난해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입장에 따라 호오(好惡)가 극명하게 갈렸고, 이로 인해 무엇이 상식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위 요즘 말로, ‘믿고 거르는’(보나마나 별로 일 것이니 아예 안 보고 안 듣는다)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럼 사람은 합리적일까. 일반적으로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사고체계가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마음이 불편하거나 화가 날 때는 더 불완전한 것 같다.
예를 들면, A는 자신의 생일을 연인이 기억하지 못하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생일을 축하해 줄 거라고 기대했던 터라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겠다. 문제는 그다음 이어지는 지나치게 경직된 생각에 있다. “내 생일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증거야. 이제 이 관계도 끝낼 때가 됐어.” 이는 한두 가지의 사건을 근거로 상대방의 마음을 추측·단정해 버리는 독심술 사고의 전형이다. 상대방의 마음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점차 자신의 가설에 맞는 증거만 수집하게 되고, 끝내 “거봐! 내 예상이 맞았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B는 자주 가는 커피점에서 주문받는 점원이 자신에게 무표정하게 대해서 마음이 불편하다. 단골손님이니까 점원이 상냥하게 웃으면서 대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문제는 “이 점원은 나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는 한두 번도 아니고 늘 그런 심드렁한 표정을 짓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B에게는 ‘좋아한다 아니면 싫어한다’라는 두 가지 판단기준만 존재한다. 사건을 흑백의 범주 중 한 가지로만 해석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중립적인 감정도 있는 법인데 말이다.
우리의 사고체계 자체가 불완전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이 어떨 때 주로 불편해지고 화가 나는지 자각해 보자. 또 누군가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들면 그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다른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필자의 경험상, 가능하면 관대한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결과도 좋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대화 중 화가 날 때는 잠깐 ‘타임아웃’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화가 날 때는 잘 모르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하자. 무엇보다 나중에 후회할 말을 하지 않도록 유의하자. 새해에는 불편하고 화날 때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고 사회적으로도 갈등과 반목 대신 ‘소통과 화합의 시대’가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귀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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