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상태로 할머니 폭행… 피해자 가족 “엄중 처벌하라” 촉구
사건은 지난 1일 오후 10시쯤 벌어졌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A(77)씨는 술에 취한 B(35)씨에게 마구 맞아 얼굴과 허리 등을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B씨는 도망치는 할머니를 쫓아가 마구 때리던 중 주민이 나타나자 폭행을 멈췄으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그를 검거했다. B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자신을 A씨의 손녀라고 밝힌 C씨는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주취자 가중처벌을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고 할머니와 우리 가족은 큰 충격에 빠졌다”며 “사회가 아무 이유 없는 폭행 등에서 보통의 사람을 지켜주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울분을 토했다.
폭행을 잡아뗀 가해자에 분노한 C씨는 “자신이 주취자라는 것을 이용해 잘못을 회피하려 든다”며 “술을 마셔서 기억나지 않으면 이유 없이 사람을 때려도 되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회가 과연 안전하느냐”며 “사회를 위험하게 하고, 집앞마저 마음 편히 나가지 못하게 하는 가해자를 엄중하게 처벌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폭력사건 절반이 술 취해 발생… ‘음주 관대’에 습관성 범죄로 이어져
이번과 같은 주취 폭행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에도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만취한 군인이 아파트경비원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이 경기도 남양주와 인천에서 잇따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년마다 조사해 2018년 발표한 ‘전국범죄피해조사 2016’ 자료에 따르면 △2012년 49.9% △2014년 44.4% △2016년 50.8% 등 전체 폭력사건 가해자의 절반 안팎이 음주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경찰청에서 받아 공개한 ‘주취상태 범죄자 현황 및 비율’ 자료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3년 강력범죄 피의자의 32.9%(8320명)였던 주취자는 △2014년 8741명(34.9%) △2015년 8931명(34.6%) △2016년 9355명(34.6%) △2017년 9964명(34.5%) △2018년 9365명(33.1%) 등으로 나타났다. 살인이나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10명 중 3명은 술에 취한 상태였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음주에 관대한 우리 문화가 그간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졌고, 또 주취 폭행을 우발적인 범죄로 보는 경향도 짙어 반복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결같이 지적했다. 실제로 음주 폭행 피의자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대부분 그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4일 “‘술’이 이유라며 가해자 행위를 정당화하는 탓에 주취 폭행이 ‘습관성 범죄’로 이어진다”며 “엄연한 하나의 병인데도 단순하고 우발적인 행위로 치부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폭 피해자의 마음속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며 “그러려면 단순히 가해자의 신체 자유나 재산을 박탈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재발방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사법당국의 태도 변화를 주문했다.
다행히 주취 폭력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사물변별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심신장애 입증 시 ‘형을 감경한다’에서 ‘감경할 수 있다’로 형법 10조의 일부가 개정됐다. 승 연구위원은 개정과 관련해 “범행 전후 사정을 고려하는 재량권을 사법부에 부여했다”며 “책임이 없으면 형벌이 없다는 ‘책임주의 원칙’에 부합하고 판결의 타당성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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