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취업 등 힘들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을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서울대 집회추진위원회’를 결성해 교내에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퇴진을 외쳤던 서울대 재료공학부 박사과정생 김근태(31)씨가 청년에게 있어 ‘공정’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강조했다.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를 대신해 교내에서 조 전 장관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를 열었고, 이후엔 연세대·고려대 등 전국 16대 대학 학생들과 ‘공정추진위원회’를 결성해 대표를 맡기도 했다. 김씨는 공정추진위원회를 나와 주변 청년들과 함께 4월 총선 때 원내 진입을 목표로 ‘정민당’ 창당을 준비하며 준비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김씨와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 회의실과 지난 1일 전화를 통해 두 차례 실시됐다.
◆김근태씨 “조국사태, 제도권과 정치권 만연한 불공정 보여줘”
서울대에서 묵묵히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김씨는 조국사태에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그는 ‘조국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 ‘불공정’이 만연됐다는 점을 느꼈다고 했다. 김씨는 “자녀 입시비리와 고위공직자윤리법 위반, 사모펀드 불법투자 문제 등 조 전 장관이 보여준 여러 모습에도 정부와 여당은 그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했다”며 “(유력 인사들과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이) 조 전 장관에게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그를 계속 옹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도권과 정치권이 ‘공정’에 대해 제대로 된 가치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취업, 결혼 등 미래를 설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은 공정이란 가치에 민감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지금 20∼30대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 등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것들이 적고 불안도 많다”며 “그래서 이런 상황이 무엇 때문인지 고민이 많은데 정치권과 고위공직자들이 스스로 강조했던 공정과 전혀 다른 행태를 보여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조 전 장관 부부처럼 자신들의 권력을 통해 정당한 노력을 하지 않은 자녀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는 것이 ‘불공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과정에서 불합리함을 느끼면 안 된다”며 “실력이 안 되고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권력을 통해 입시에서 혜택을 보고, 상식적·도덕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개인 이익을 취하는 것이 바로 불공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정농단 때 촛불 들어…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결국 김씨는 재학 중인 서울대부터 촛불을 들자고 제안했다. 서울대는 조 전 장관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그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장관 임명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서울대 재학생·졸업생이 활동하는 ‘스누라이프’(SNUlife)를 통해 학생들을 모집, 서울대 집회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당시 교내에서 2차례 촛불집회를 벌였던 서울대 총학생회가 실효성 문제 등으로 발을 빼자 김씨가 학생들을 모았다. 위원회엔 약 20명이 모였다고 한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각각 40%, 30%였고 졸업생은 30%였다. 대다수가 30대 이하였다. 이들은 광화문 집회에도 ‘서울대 깃발’을 들고 네 차례나 참여했다.

이후 김씨는 자발적으로 모인 서울대생들을 포함해 주최한 연세대 등 16개 대학교 학생 25명 등 총 45명의 학생이 모인 공정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리곤 4차례에 걸쳐 광화문에서 현 정부를 규탄했다. 김씨는 “해야 할 일이라면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또 더 이상 서울대에만 있을 것이 아닌 다른 대학교 학생들과 연합해 현 정부를 향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광장’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이 된다고 하면 충분히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의 어려움은 자신들의 활동이 진영논리로 비쳐지는 것이었다.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은 자유한국당 당원인 그가 주변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씨는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진영논리로 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프레임도 씌우려고 한다”라며 “조국사태 이전엔 평범하게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연구를 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 때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광화문 집회도 3차례 나갔다”고 말했다.
◆“선거 염두에 둔 과도한 현금 복지…청년들이 갚아야 할 빚”
그렇다면 김씨가 생각하는 현 정부 문제점은 무엇일까. 이런 불만은 김씨와 주변 청년들을 광화문으로 향하게 했다. 그는 정부가 선거에서 표를 의식해 과도한 현금성 복지를 펼치면서 미래세대인 청년이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스스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복지는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라면서도 “그러나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무책임하게 현금성 복지가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케어)으로 인한 건강보험 적자 문제와 약 40%인 현금성 복지 수혜율 등을 언급하며 “무책임하고 방만하게 재정운영을 하면 그 빚을 미래 생산주체인 청년들이 책임져야 한다”라며 “그런 부분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청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쟁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정부의 교육정책도 지적했다. 일례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특목고 폐지, 대학교 정시 축소 추세를 꼽았다. 김씨는 “지금 정부는 경쟁이 학생들을 힘들게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끌고 간다”며 “그러나 경쟁이 없으며 발전도 없다. 경쟁을 무조건 없애는 정책보다 건전한 경쟁을 장려하고 그런 환경에서 더 나은 인재가 발굴돼 이들이 국가공동체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진영논리 깨뜨려야…안철수 신당도 지켜볼 것”
김씨는 정민당을 창당하려고 한 이유로 진영논리에 빠진 기존 정당들 한계를 꼽았다. 그는 “대한민국 정치권은 진영논리에 갇혀있다”며 “어떤 메시지가 담는 가치와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만을 보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정치환경에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진영논리에 빠져) 혼탁해질 밖에 없고 거기에 발이 계속 묶여 있어 본인이 원하는 지향점이 있어도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씨는 가까운 청년들과 함께 정민당 창당을 준비 중이다. 그는 “진영논리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며 “진영논리를 깨는 대안으로서 또 하나의 선택지를 늘리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난달 31일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와 만남도 소개했다. 안 전 대표는 당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민당 창립준비위원회 임원진과의 간담회를 했다. 김씨는 “1월 말쯤 안 전 대표 측에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며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간담회에서 안 전 대표는 본인이 생각하는 중도를 이야기했다. 경제정책과 기존 정치 등에 관한 이야기도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전 대표도 신당을 창당한다고 밝힌 만큼 그 신당이 (청년들을 위한) 어떤 정책을 담을지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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