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 산업계 전반이 ‘올스톱’ 위기에 놓였다.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셧다운(공장 폐쇄) 공포가 점차 현실화되는 와중에 각국의 한국인 입국 불허로 해외사업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가 이를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제조업의 연쇄 셧다운은 국내 전자업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구미산단 내 삼성전자 구미 2사업장(무선사업부)에서 네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LG이노텍 구미사업장도 전날 카메라모듈 생산처인 구미1A공장의 직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공장 폐쇄 후 방역 조치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24시간 쉬지 않고 라인을 돌려야 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대규모 장치산업의 경우 잠깐이라도 셧다운될 경우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각 기업이 느끼는 체감경기도 싸늘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100 이하 불황 관측) 조사 결과 3월 전망치는 84.4를 기록했다. 한경연은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11.7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12.1에 비해 하락수치가 작아 보이지만 코로나19가 초기 단계에서 조사했다는 점에 미뤄보면 그 영향은 더 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베트남,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한국과 경제 교류가 많은 국가들이 잇달아 ‘한국인 입국 금지 및 제한’에 나서면서 한국 기업의 해외 사업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 기업의 해외 출장과 현지 마케팅 행사 등이 사실상 중단됐고 해외 공장 완공 일정마저 지연될 가능성이 커져 한국 기업들이 사면초가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오던 베트남이 한국인에 대해 강력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자 기업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 예정이던 모바일 연구개발(R&D)센터 착공식을 취소했다. 이 행사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할 계획이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출장도 막혔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27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와 수소에너지 분야 협업을 위해 현지에 직원을 보냈지만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현지에 구축된 네트워크와 인력을 활용할 수 있어 낫지만 현지 법인이 없어 판로를 새로 확보해야 하는 중소기업은 아예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정부 차원의 항의 말고는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라 기업들이 체감하는 공포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29일 베트남 항공당국이 한국발 여객기의 하노이·호찌민 공항 착륙을 예고 없이 금지한 것과 관련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날 베트남 항공당국에 “심각한 안전상의 문제”라며 항의서신을 보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자국의 보건과 국민건강을 위해 중국과 베트남 등이 한 한국인 입국불허 조치의 경우 우리 정부가 나선다고 해도 뚜렷한 해법을 찾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인 이모씨는 “집에서 메신저나 전화로 보고를 받고 업무지시를 하고 있으니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더 어렵기만 하다. 지난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한 서울 구로구의 소규모 행사대행업체 강모 대표는 “직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재택근무 시에 업무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될 경우 회사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재택근무보다 차라리 휴직을 권고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건호·박세준·이종민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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