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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댕댕이도 마스크 써야”… 불안감 부추기는 상술 [이슈 속으로]

입력 : 2020-03-21 14:00:00 수정 : 2020-03-21 10: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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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반려동물 방역용품도 등장 / “개·고양이 코로나 감염 막을 수 있다”… 온라인서 버젓이 광고 / 마스크 1개당 4000원·특수용은 1만원까지… 소독제·세정제 등 판매 / 홍콩 확진자 강아지 최종 ‘음성’ 판명 났지만 우려감 확산 / 전문가들 “동물 감염 가능성 희박… 견주들 심리 이용 말아야”
“비싼 가격이 부담됐지만 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길래 샀습니다.” 올해로 12살이 된 반려견을 키우는 직장인 윤모(34)씨는 최근 큰맘 먹고 반려견용 마스크를 대량 구매했다. 사람용 마스크의 절반 크기인 반려견용 마스크 가격은 3장에 1만2000원꼴, 1장당 약 4000원이다. 일회용 마스크인 만큼 매일 개를 산책시키는 윤씨는 우선 1개월분으로 약 12만원어치를 주문했다고 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반려견용 마스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만 마스크 낄 거냐’는 광고 문구를 보니 반려견한테 미안해지더라”며 “코로나19 바이러스, 미세먼지 등을 막는 데에 효과가 있다길래 노견의 건강이 걱정돼 결제했는데 사실 예방 효과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1개당 4000원꼴… “사랑스러운 개가 바이러스에 노출돼 있다” 불안감 자극

최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불안감을 타고 반려동물용 방역 물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려견용 마스크, 소독제, 세정제 등이 그것인데 ‘개나 고양이의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를 한다. 문제는 이들 제품의 성능이 확인되지 않았을뿐더러 반려동물이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걱정을 부추겨 제품 판매에 이용한다는 점이다.

온라인상에서 수천 건의 리뷰가 달린 한 반려견용 마스크는 제품명에 대놓고 ‘우한폐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비용’이라고 적혀 있다. 업체 측은 제품 설명에 최근 국내에 코로나19로 확진자와 사망자 등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붙여놓았다. 한 중국 공무원이 ‘애완동물이 집 밖에서 (코로나19에) 간접 점염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원문상으론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만전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제품 설명에 “사랑스러운 댕댕이(개)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다”며 “아이들(개)을 보호할 수 있는 건 바로 마스크 착용”이라고 강조한 업체도 있었다.

판매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회용 마스크 1개당 4000~5000원꼴이었으며 환풍구가 있는 고급형은 1개당 6000원 정도다. 3중 필터가 들어 있는 특수형은 1개당 1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이들 업체가 판매하는 제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KN95(중국 식약청 인증 등급, ‘0.3㎛ 분진포집률 95% 이상’ 조건 충족) 등급이라 안전하다며 국내 KF94와 같은 성능이라 홍보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두 등급이 같은 수준의 차단 효과가 있는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홍콩에서 개 ‘약한 양성’ 반응 나타나… 동물 학대 늘어

반려동물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는 최근 홍콩의 한 개에서 약한 정도의 코로나19 양성(Weak Positive) 반응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확산됐다. 17살 포메라니안종인 이 개는 60세 여성 견주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하루 뒤인 지난달 26일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며 ‘사람으로부터 최초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옮은 개’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코로나19가 많은 사상자를 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마찬가지로 인수공통감염 전염병이라는 사실 때문에 ‘개도 코로나19에 걸렸다’며 사람들이 동요했다. ‘사람이 개에게, 혹은 개가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옮기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도 감돌았다. 동물권 단체들은 해당 소식 이후 중국에서 동물 학대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혈액 검사 결과 ‘음성’… “반려동물 코로나19 감염 가능성 거의 없어”

하지만 학계에선 개가 코로나19 감염원이 될 수 없으리란 판단이 압도적이다. 실제 코와 입에서 검체를 채취한 검사에선 약한 양성 반응을 나타냈던 홍콩의 개도 지난 13일 혈액 검사에선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증상도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가 퇴원 후 이틀 만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17살 노령이었고 격리 상태를 겪은 후 주인이 부검도 반대하고 있어 코로나19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홍콩 농수산물보존부(AFCD) 대변인은 “현재 반려동물이 코로나19의 감염원이 되거나 이들이 코로나19로 아플 수 있다는 그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세계동물보건기구는 코로나19에 감염된 동물이 건강상 전혀 이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홍콩 동물보호협회(SPCA)도 “동물이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전염시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코로나19에 ‘감염된 것’과 ‘감염시킬 수 있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지금까지 홍콩 외의 지역에서 동물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는 신종 감염병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판단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을 아꼈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해외 연구 결과와 국내 상황을 살펴봤을 때 개가 코로나19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개 마스크의 감염 예방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문가 “불안감 자극한 상술… 정상 행동에 방해”

동물 전문가들은 반려견용 마스크가 견주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상술’이라고 경고했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마스크를 반려동물이 착용했을 때 얼마나 전염을 막을 수 있는지 전혀 증명된 바가 없다”며 “사실 미세먼지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개에게 잘못 만들어진 마스크를 씌우는 경우 오히려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반려견용 마스크는 불안한 견주들의 마음을 악용한 상술”이라며 “코로나19로 우려가 큰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상술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의 명보영 수의사도 “지금까지 나온 수천명의 확진자 중에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꽤 있을 텐데 국내 학계에 코로나19 유사 증상이 의심되는 동물들에 대한 사례가 전혀 보고된 게 없다”며 “미국수의사회, 한국수의임상포럼 등도 개나 고양이에게 코로나19가 전염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려견의 건강에 염려가 많으신 분들이 간혹 개에게 마스크를 착용시키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며 “개가 미세먼지를 흡입해 건강 이상이 나타난다는 증거도 거의 없다. 차라리 산책 등으로 개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게 면역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판매업체 측이 과장·허위 광고를 하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전염병 초기 단계라 사람과 동물 간 감염이 없는지 사례가 충분치 못해 추후 조사를 해야 위법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며 “허위·과장 광고인 게 밝혀지면 위법성 정도에 따라 경고, 과징금, 시정명령, 검찰 고발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마스크 판매업체 측은 “안 끼는 것보다야 끼는 게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짤막한 대답 외엔 말을 아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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