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3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적 악화를 직접 체감한 국내 기업은 10개 중 9곳이었고, 조사시점 기준(3월24일) 전년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7.5%, 19.0% 하락했다.
6개월이 지난 현재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1일 “코로나19 확산이 기업 실적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친 시기는 2분기부터”라며 “코로나19 재확산 및 장기화 가능성 증대, 글로벌 경제 성장률 전망 하향으로 하반기에도 큰 폭의 실적 반등은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지난해 말 대비 올해 6월 기준 순차입금 규모가 자동차 부품과 정유, 호텔·면세, 항공 등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생존’이라는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빚으로 연명하는 상황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전환하려면 전 세계 산업과 소비자 구매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아 충고한다. 현재 글로벌 산업계의 화두는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성’, ‘미래 기술’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는데, 특히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의 바람이 매우 거세다. 미세먼지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인간의 인위적 영향으로 발생한 위협이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되자 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산업계 곳곳에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공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구환경과 지속가능한 친환경 이슈로 산업계와 소비자 모두 시선이 옮겨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현대백화점과 이마트, 마켓컬리, 쿠팡 등 주요 유통사와 대형 유통 플랫폼이 친환경을 강조하며 자연 소재로 만든 포장재, 친환경 제품 원료 등으로 대거 전환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부가 적극 장려하는 ‘그린 뉴딜’ 산업과 맞물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문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 및 패션, 식품 등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친환경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게 재계의 당면 목표이기도 하다.
최근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ESG(Environment 환경·Social·사회·Governance 지배구조) 본드, 즉 지속가능 채권의 시장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속가능 채권은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지원 등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한 소셜 본드, 환경 개선과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는 그린본드 등을 포함한 특수목적 채권이다.
산업계가 이처럼 환경과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함에 따라 대내외 투자자를 상대로 기업 가치와 신뢰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일반 시민과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성을 담보하는 특수목적 채권의 시장은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3년 내 지속가능 채권을 발행한 회사만 살펴도 한국전력공사(2000억원), 산업은행(4000억원), 우리카드 (사회적 채권·2억달러·약 2356억원), 기업은행(6500억원), 현대캐피탈(녹색채권·5억달러·약 5890억원), LG화학(녹색채권·15억6000만달러·1조8376억원), SK이노베이션(그린론·8370억원), 포스코(5억달러·5890억), 롯데물산(3억달러·3534억), 한화에너지 미국 법인(녹색채권·3억달러·3534억원) 등이다.
이처럼 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이슈가 모든 산업에서 주요 화두로 대두함에 따라 ESG는 기업경영의 핵심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엔은 2005년 책임투자원칙주도기구(PRI) 설립에 관여해 산업계의 다양한 사회적 책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2015년 UN SDGs(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의 등장은 이러한 ESG 기준을 더욱 확장시켜 기업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이를 기반으로 한 전 세계 최초의 지속가능경영평가지수인 SDGBI(UN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는 ESG와 SDGs를 접목시킨 대표적인 글로벌 지수로 인정돼 많은 기업이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지속가능성과 환경, 기업 지배구조, 지속가능 금융까지 모두 아우르는 SDGs와 ESG가 코로나19 후 기업에는 생존 및 경영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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