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캠프 “가짜뉴스 방치” 공개 저격
구글 등 ‘빅4’ 독점적 시장지배력 남용
칼 빼든 美하원 ‘기업 쪼개기’ 해법 제시
EU에선 ‘개인정보 이동권’ 보장에 관심
‘미들웨어’ 활용 정보독점 분산도 거론
“선거 후 페이스북이 우리 민주주의의 구조를 찢어발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선거 캠프에서 공보 부국장이었던 빌 루소가 페이스북이 선거 관련 가짜뉴스를 방치하고 있다며 트위터를 통해 페이스북을 공개 저격하며 한 말이다. 그는 지난 1년 넘게 왜곡된 사실관계가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하는 문제를 심각히 다뤄달라고 페이스북 측에 간곡히 부탁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쌓였던 불만을 트위터에 쏟아냈다. 바이든 당선인도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팬이 아니라며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하고 나면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거대 IT(정보기술) 공룡 기업을 대상으로 강력한 규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가짜뉴스, 개인정보 보호, 반독점 등 이슈와 관련해 적극적 대응을 할 가능성이 우세하다는 분석이다.
◆“거대 IT 공룡의 시장지배력 남용 규제해야”
최근 미 하원 법사위원회 반(反)독점 분과위원회가 발표한 450쪽 분량의 보고서는 실리콘밸리를 뒤흔들었다.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이 시장지배력을 남용했다는 조사 결과가 담긴 보고서였다. 분과위가 16개월간 벌인 조사 결과였다. 분과위가 보고서에서 제시한 해법은 일종의 기업 쪼개기였다. 이미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 IT기업이 기존 분야와 유사한 사업을 통제하거나 그 안에서 경쟁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구글이 유튜브를 운영하고,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와츠앱을 소유하는 것도 향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원회를 이끄는 민주당 데이비드 시실린 하원의원은 로이터통신에 “바이든 행정부는 이 보고서를 수용할 것”이라며 “바이든은 경제력 집중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보고서가 1990년대 미국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를 반독점법 위반 행위로 고소한 이후 세계 최대 기술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1998년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는 MS가 PC용 운영체제(OS)인 윈도와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결합 판매하는 건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MS를 2개 회사로 분할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정보 독점자들… 민주주의 최대의 위협”
IT 공룡 기업의 영향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맞물린 비대면 시대를 맞이해 더 강력해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와 버락 리치맨 듀크대 법대 교수, 아시시 고엘 스탠퍼드대 공대 교수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IT 거대기업이 강력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에 끼치는 힘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IT 거대기업들은 대중의 정치적 동원을 조정하고 정보 확산을 지배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순기능을 위협하는 독보적 존재”라고 경계했다.
포린어페어스는거대 IT기업이 제공하는 플랫폼은 경제적 폐해보다 정치적 위험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거대 IT기업이 민주주의에 최대 위협 요소로 꼽히는 이유는 이들이 정보 유통 채널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야마 교수를 비롯한 공동 기고자들은 “이 기업들이 고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선거판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많은 힘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 가장 위험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 기업은 등장 초기만 하더라도 경제적 효율을 높이고 소비자 모두에게 보편적 효용을 제공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마존의 등장으로 동네 구멍가게는 물론 대형 할인점까지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소비자들에게 검색엔진과 이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제공하는 긍정적 역할이 있음에도 그 대가로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누군가의 먹잇감으로 던져졌고 이용자들은 무차별적 광고 공세에 노출됐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필터 버블’ 문제 해결이 관건
미국의 온라인 시민단체 ‘무브온’의 엘리 프레이저 이사장은 일찍이 저서 ‘생각 조종자들’에서 거대 소셜미디어 기업의 폐해를 경고하고 나섰다. 이용자들이 몇몇 거대기업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해 정보를 편식하고 그 결과 점점 자신만의 생각 울타리에 갇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란 이름을 처음 붙인 프레이저 이사장은 거대 IT 기업으로 인한 필터버블이 오히려 더 비민주적인 사회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경고했다.
근래 들어 웬만한 포털 사이트는 사용자의 취향이 반영된 뉴스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든 유튜브든 개인마다 추천하는 광고 글과 동영상이 다르다. 개인의 취향을 수집한 알고리즘을 통해 필터링이 이뤄진 결과다.
프레이저 이사장은 저서에서 “궁극적으로 시민들이 편협한 자기 이해관계를 넘어 생각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작동한다”며 “그러려면 우리는 서로 세상에 대한 시각을 공유해야 하는데 필터버블은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낸다”고 진단했다.
◆커지는 규제 목소리… 개인정보 강화·미들웨어 등 해법 될까
디지털 시대의 이런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은 규제 장치를 하나둘 마련하고 있다. 거대 IT기업의 권한과 지배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물리적으로 기업을 쪼개는 건 본질적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후쿠야마 교수 등은 과거 AT&T와 스탠더드 오일을 강제 분할하듯 구글과 페이스북을 다룰 수는 없을뿐더러 기업을 억지로 쪼개 놓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강조한다. IT기업 특성상 신생업체가 빠르게 성장해 기존 역할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EU에선 ‘개인정보 이동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추세다. EU는 2018년 5월부터 정보 주체인 개인의 권리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 시행에 돌입했다. 개인의 정보관리권을 확대하기 위해 데이터 삭제권과 이동권 등을 명문화하고 높은 수준의 개인정보처리 기준, 역외 적용 및 강력한 처벌규정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장애가 만만치 않다.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은 이동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특정 제품이나 뉴스에 ‘좋아요’를 누르는 등의 개인 취향이 반영된 엄청난 분량의 정보까지 모두 이동 가능한 건 아니라는 점에서다. 예컨대 사용자의 구글 검색 기록을 정확히 페이스북이나 다른 플랫폼에 정확히 이동시키긴 어렵다는 얘기다.
거대 IT 플랫폼의 정보 독점을 완화할 수단으로 ‘미들웨어’가 꼽히는 배경이다. 서로 다른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미들웨어를 활용해 정보 독점을 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위터 등을 경유해 미들웨어에 접속하면 이용자가 접하는 게시물에 ‘검증되지 않은 사실’ 또는 ‘오해 소지 있음’ 등의 알림 문구가 뜨게 한다거나 친환경 제품 여부에 따라 상품 검색을 필터링해주는 미들웨어를 사용해 구글이나 아마존 검색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