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크네” “살 빼라” 외모 지적
“나한테 스폰받을 친구 혹시 없나?”
20∼30대 사회초년생 상대로 빈번
“가해자 농담 치부… 직장 내 만연”

“다이어트를 하라거나 엉덩이가 크다고 신체를 지적하는 건 예사였죠. 주변에 자신으로부터 ‘스폰’을 받을 친구가 없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회사 성희롱 예방 교육 중에도 ‘나 때는 여직원 엉덩이 손으로 때리면서 커피 갖다 달라고 했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A(여)씨는 상사의 성희롱이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희망을 품고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사의 성희롱이 시작됐다. 외모 지적은 일상이었고, “워크숍에 여직원들은 비키니를 입고 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모두 ‘농담’으로 포장됐다. 참다못한 A씨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친 A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A씨의 경험이 담긴 에세이는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의 ‘성희롱 없는 일터 만들기’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다. 센터는 15일 공모전 슬로건 5편과 에세이 5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모전은 성희롱 없는 일터와 성평등한 조직문화에 대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마련됐으며, 지난 9월15일부터 10월30일까지 314편(슬로건 285편, 에세이 56편)의 응모작이 접수됐다.

센터에 따르면 참가자의 대부분(68.3%)은 20∼30대 젊은층이었다. 에세이 본선 진출작 36편 중 절반가량(17편)은 사회 초년기에 겪은 직장 내 성희롱을 다루고 있어 사회초년생이 조직 내 성폭력에 가장 취약한 계층임을 드러냈다. 센터 관계자는 “사회초년생에 대한 성희롱이 위계와 경직된 문화로 인해 묵인되며 빈번하게 발생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젊은 세대의 특징인 적극적 말하기가 드러난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며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자신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용기 내어 행위자에게 경고하고, 연대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접수된 에세이들에는 성희롱 피해 상황에 맞서 변화를 끌어낸 이야기들이 담겼다. B(여)씨는 직장 내 성폭력 전력이 많은 남직원에게 여직원들이 공동 대응한 경험을 에세이로 썼다. B씨는 “한 여직원이 스토킹 피해를 호소했는데 알고 보니 가해자 남직원이 다른 여직원들에게도 억지로 손을 잡거나 자기 차에 타라고 강요하는 등 직장 내 성폭력을 일삼아왔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여직원들이 피해 경험과 재발 방지 촉구 뜻을 모아 회사에 전달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논의를 수면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우리의 연대는 성공적이었다”고 썼다.

센터가 슬로건 부문 본선 진출작을 활용해 ‘워드 클라우드(단어 시각화)’ 작업을 한 결과 ‘농담’, ‘불쾌’, ‘불편’ 등의 단어가 두드러졌다. 센터 관계자는 “성희롱 행위자가 농담이나 칭찬이라는 말로 변명하고 피해 상황을 피해자의 예민함으로 치부하는 데 대한 피해자의 감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슬로건 응모작 중 당선된 ‘잠시만요, 저는 지금 함께 웃기 불편합니다’도 이 같은 상황을 보여준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당선작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성희롱의 심각성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글들”이라며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밖으로 끌어내 사회적 메시지로 전환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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