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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면서도 악한’ 두 얼굴의 인간 본성 추적

입력 : 2020-12-19 03:00:00 수정 : 2020-12-18 20: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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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뇌과학·심리학 등 오가며
진화론 관점서 인간성 기원 살펴
버럭 화를 내는 ‘반응적 공격성’
냉정·계획적인 ‘주도적 공격성’
‘길들이기’ 등 흥미로운 개념 제시
유대인 수백만명을 학살한 히틀러(왼쪽 사진)와 철의 장막 뒤에서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스탈린. 루소주의자들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한 반면, 홉스주의자들은 악하다고 맞선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간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인간은 때로는 한없이 사악하지만 때론 더없이 관대한 키메라 같은 존재라고 주장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리처드 랭엄/이유 옮김/을유문화사/2만2000원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서,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루소는 책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본래 자연상태에서 자유로웠지만 사회적 질서를 위해 계약을 맺는다고 주장했다. 루소주의자들은 그래서 인류가 원래 평화적인 종이었지만 사회에 의해 타락했다고 말한다.

반면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평등 의식과 서로간의 불신 때문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지만 리바이어던을 통해 평화를 찾는다고 맞섰다. “정치국가들 외부에는 언제나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존재한다. 즉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 권력 없이 살아갈 때는 전쟁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홉스주의자들은 우리는 원래 폭력적인 종이었으며 사회에 의해 문명화됐다고 주장한다.

과연 인간의 본성은 ‘평화적’(루소)인가, 아니면 ‘폭력적’(홉스)인가. 미국 하버드대 랭엄 교수는 책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에서 인간 본성은 염소의 몸과 사자의 머리를 가진, 평화적이면서 폭력적인 키메라 같다고 답한다. 두 속성이 혼재돼 있다는 점에서, 루소의 성선설과 홉스의 성악설 모두 절반만 맞는 셈이다.

실제 유대인 수백만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히틀러는 미술학도이자 채식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반려견이 죽었을 때 깊은 슬픔에 잠긴 동물학대 혐오자였다. 비서였던 융게는 그가 쾌활하고 친절한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철의 장막 뒤에서 수많은 정적을 숙청하고 죽인 스탈린은 어떠했던가. 18개월 동안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항상 조용했고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지 않은 모범수였다.

1970년대 탄자니아에서 구달의 침팬지 프로젝트를 돕던 대학원생 출신의 저자 리처드 랭엄은 때로는 한없이 사악하고 때로는 더없이 관대한 인간 본성의 수수께끼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고고학과 뇌과학, 심리학, 생화학, 신경생리학,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며 풀어냈다. ‘반응적 공격’이나 ‘주도적 공격’, ‘자기 길들이기’ 등 흥미로운 개념과 풍부한 연구를 바탕으로 관용과 폭력성이 혼재된 인간 본성을 비범하게 추적한 노작이다.

리처드 랭엄/이유 옮김/을유문화사/2만2000원

책에 따르면 인류는 ‘반응적 공격성’을 줄이고, ‘주도적 공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기 길들이기’를 통해 진화를 거듭해 왔다. 반응적 공격은 어떤 자극이나 위협에 대해 즉각적이면서도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화를 버럭 낸다든가 몰아세우는 것과 같은 화끈한 공격을 가리킨다. 주도적 공격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지향적인 공격으로, 계획적이고 정교한 냉정한 형태의 공격을 의미한다. 자기 길들이기는 인간 스스로 참을성이 증가시키는 과정쯤 될 터다. 즉 인간은 자기 길들이기를 통해 반응적 공격성이 줄여 관용을 베풀고, 주도적 공격성을 높여서 악하고 치명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인류의 길들이기는 홍적세 중기인 50만~20만년 전 사이에 시작됐고, 길들이기 증후군은 30만년 전후에 나타났다. 길들이기에 따른 해부학적 변화도 나타난다. 즉 무거웠던 몸은 작아지고 가벼워졌고 얼굴은 돌출이 줄어들고 작아졌으며 뇌도 점점 줄어들었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가 반응적 공격성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오는 데는 사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본다. 즉 반응적이고 공격적이며 법과 제도를 어기는 사람을 사형을 통해 제거하며 길들이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결국 사형 집행만이 그런 남성이 폭군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형은 이처럼 수렵채집 사회부터 농업 혁명, 국가의 발생을 통해 제도화하면서 인간 사회 안에서 협력과 친사회성, 질서, 도덕감정 등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길들이기의 결과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종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번식의 평화를 누렸다. 즉 반응적 공격성을 줄여 협력 능력과 학습 능력을 성장시켰는데, 이는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승리자로 만든 요소였다.

반응적 공격성을 줄인 인간은 반면 주도적 공격성은 매우 높았고, 여러 사람이 연합해 주도적 공격을 함으로써 다른 종이나 집단을 압도할 수 있었다. 다만 주도적 공격은 인간을 온화한 종으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새로운 악과 과제를 낳았다고 저자는 본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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