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위법성 관련한 공익제보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수사 의뢰 검토에 착수했다. “공수처 이첩”을 주장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권익위도 조직 구성도 완료하지 못한 공수처로 수사 의뢰를 검토하자 ‘김학의 사건’ 수사에 연루된 여권 핵심 인사를 향한 수사를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공수처로 사건을 끌고가서 뭉개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이라고 비판했다.
권익위는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관련해 이달 초 권익위에 부패·공익신고를 한 신고자가 최근 권익위에 신고자 보호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권익위 관계자는 “전날 신고자가 권익위에 보호 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공익신고자의 보호 신청은 전날 차규근 법무부 외국인·출입국정책본부장이 KBS 라디오에 출연해 공익신고자에 대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며 신고자의 신원을 ‘검찰관계자’라고 특정한 것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공익신고자 보호 신청이 인용될 경우 신고자는 인사 등 각종 불이익 조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으며 공익신고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거나 신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공개할 경우 공익신고자보호법에 근거해 처벌받을 수 있다.
권익위는 이어 “조사 결과 신고된 내용이 고위공직자 부패혐의로 처벌을 위한 수사 및 공소제기의 필요성이 있을 경우 공수처 등에 고발 등 수사 의뢰 할 수 있다”며 공수처로 사건을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신고자와 신고와 관련해 면담 등 관련 절차를 통해 확인·검토하고 있으며, 조사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관계 법령에 따라 신고자 보호조치, 공수처 수사 의뢰 여부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권익위는 공수처의 수사 범위에 검사와 고위공직자가 포함되기 때문에 ‘김학의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검사들과 법무부 관계자들이 공수처의 대상이라 수사 의뢰를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공수처는 다음 달 2∼4일 검사 23명을 공개 모집한다. 수사관도 다음 달 2∼5일 사이에 응시원서를 접수한다. 수사관은 4급 2명, 5급 8명 등 총 30명을 선발한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차장 임명 등 두 달 안에 인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권익위의 수사 의뢰를 받더라고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기까지에는 두 달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기 진행되는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공수처로 사건이 이첩될 경우 수사의 공백도 발생할 수 있다.
공수처로 사건 이첩은 박 후보자도 전날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주장했다. 박 후보자는 ‘김학의 사건은 검사 대상 수사이니 공수처로 이첩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의에 “공수처법에 의하면 현재 상태에서 이첩하는 것이 옳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의 본질이 절차적 정의냐 실체적 정의냐는 문제인데 (이 사건을) 검찰이 말하는 절차적 정의의 표본으로 삼는 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이첩을 강조한 박 후보자와 일부 여당 의원들의 발언이 자칫 처음 출범하는 공수처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떤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수사할지는 공수처장과 공수처가 판단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수사할 준비가 되지 않은 공수처에 사건을 당장 넘기겠다는 것은 현재 이뤄지는 검찰 수사의 중단을 뜻하기 때문에 수사 공백을 피할 수 없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형사 사법 절차상 국민의 신체·인신구속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며 “처장 한명 위촉됐다고 사건을 이첩받아 수사하라고 하면 어떻게 수사가 가능하냐”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전 차관 사건을 공수처에 넘겨야 수사해야 한다’는 박 후보자의 답변을 유도한 의원은 김 전 차관 출국금지 사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라며 “김 의원은 인사청문회를 시종 ‘셀프 방어’에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제지하기는커녕 가세했고, 박주민, 김남국 의원 등은 총력 지원했다. 공수처로 사건을 서둘러 끌고 가서 뭉개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얼마나 다급한지 여실히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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