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조간 신문 키워드 중 하나는 공매도와 전쟁이다.
미국에서는 ‘로빈후드’가 공매도 세력인 헤지펀드와 일합을 겨루고, 한국에서는 ‘동학개미’가 공매도 재개를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개미(개인투자자)들의 기세에 놀란 정치권과 당국은 눈치보기가 한창이다.
미국에서는 개미와 공매도 세력이 맞붙어 일부 종목의 주가가 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비디오게임 유통 체인 ‘게임스톱’의 주가는 28일(현지시간) 롤러코스터를 탄 끝에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게임스톱은 몇 차례 거래가 중지되는 혼란을 겪은 뒤 전장보다 44.3% 떨어진 193.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전 135% 폭등한 게임스톱은 이날도 오전 한때 39% 오른 483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다 로빈후드와 인터렉티브브로커스 등 복수의 주식거래 플랫폼이 과도한 변동성을 이유로 들어 이 회사 주식 거래를 일부 제한한다고 발표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로빈후드는 수수료가 무료여서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거래 앱이다. 장중 한때 60% 이상인 112.25달러까지 곤두박질친 게임스톱은 오후 들어 낙폭을 다소 줄였으나, 결국 44%대의 하락률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게임스톱 주가가 하락한 것은 6거래일 만에 처음이다. 이 회사는 전날까지 올해 들어 1700%가 넘는 역대급 상승률을 기록 중이었다. 게임스톱과 마찬가지로 개미와 기관투자자들의 격전장이 된 AMC엔터테인먼트는 이날 57%, 블랙베리는 42%, 베드배스앤드비욘드는 36% 각각 급락했다.
이들 회사 주식이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급등락세를 보이는 것은 몇몇 헤지펀드의 공개적인 공매도에 반발한 개인 투자자들이 합심해 힘겨루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 토론방을 중심으로 뭉친 400만 개인 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게임스톱 등의 주식을 매입해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업체들에 본때를 보여준 것이다.
개미들의 단합에 커다란 손실을 낸 헤지펀드들이 공매도 포지션을 포기하고 백기투항해 미국 내외에서 화제를 모았다.
미 정치권도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월가를 비판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편을 들었다.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 “게임스톱 거래에 당황한 헤지펀드, 사모펀드, 부자 투자자들은 그동안 증시를 개인 카지노처럼 갖고 놀면서 다른 사람들만 비용을 치르게 했다”며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이 월가의 거대 자본을 규제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증시에 대해 ‘공매도가 가능하다’고 브리핑한 내용이 뉴스로 나온 28일 ‘영원한 공매도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참여인원이 20만명을 넘어섰다. 동학개미의 분노가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안드레아스 바우어 IMF 아태국 부국장보 및 한국 미션단장은 “한국의 공매도 재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2021년 IMF-한국 연례협의 결과’에 대한 온라인 브리핑에서 “공매도는 주요 금융시장 안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 하방압력을 많이 받는 상황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 공매도 금지를 이행할 때가 있는데,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시장에서 안정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경제도 회복하는 측면이 있어서 공매도 재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우어 단장은 “공매도 금지를 전면 시행해 개인과 기관 간 균등한 투자의 장을 확보하겠다는 건 날카롭지 않은 도구로 대응하는 것”이라며 “시장의 효율성 측면에서 많은 비용이 수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매도는 주가가 비쌀 때 주식을 빌려다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사서 되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노리는 투자 기법이다. 정부는 3월 15일 종료되는 공매도 금지 조치를 3~6개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증시 변동성 확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에 대해 SK증권은 긍정적 전망을 유지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입장 재확인, 미국발 공매도 사태는 국내 증시에 무관한 만큼 국내 증시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은 “국내의 경우 올해 들어 20조원을 순매수한 개인 투자자는 1월 28일에도 1조9000억원을 손매수하면서 유동성의 힘을 재확인시켰다”면서 “2021년 코스피 종목 당기 순이익 추정치도 137조원까지 상향 조정됐다”고 말했다.
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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