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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가금류 ‘떼죽음 막기’ 백신 도입 놓고 농민·정부 ‘격론’ [AI 방역 '예방적 살처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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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8 11:00:00 수정 : 2021-04-18 13: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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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조류서 발생 4년 전보다 3.6배↑
확진농장 반경 500m→3㎞ 살처분
비협조 땐 계란 출하 막는 등 압박

업계 “200원 백신 쓰면 닭 희생 막아”
정부 “오리엔 효과 없어 근절 안돼”
학계 일부 “인체 감염 우려” 신중론
경기 남양주 고센농장의 재래토종닭

지난해 11월 26일 전북 정읍에서 처음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봄철 철새의 이동에 따라 거의 마무리된 분위기다. 고병원성 AI는 지난달 23일 이후 2주일간 잠잠했다. 지난 6일 전남 장흥의 한 육용오리 농장에서 나타나긴 했지만 소강 상태다. 지금까지 총 109건(관상조류 2건 포함)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AI는 정부의 방역정책과 관련한 여러 논란을 낳았다. 강도 높은 살처분으로 AI 확산을 막는 데는 비교적 선방했지만 농업인들의 반발을 불렀다. 농업계와 학계에서는 조류의 희생을 줄일 수 있는 백신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살처분 3000만마리… 최선인가?

농식품부는 지난해 고병원성 AI 발생 이전부터 강력한 방역을 예고했다. 전 세계 확산 양상이 역대 최악의 AI로 꼽히는 2016년 AI 사태(2016년 11월 16일∼2017년 4월 4일)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겨울 전 세계 AI 발생은 1949건(3월 말 기준)으로 2016년(1974건) AI 때와 맞먹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역대 최다인 489건 발생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발생 건수는 2016년(383건)의 28%에 그쳤다. 야생조류에서의 고병원성 AI 발견이 4년 전의 3.6배로 크게 증가한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의 고강도 방역정책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희생이 컸다. 올해 살처분된 조류는 3월까지 총 2990만9000마리로 2016년 살처분수(3787만마리)의 79%에 이른다. 그중 66%가 예방적 살처분이다.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확진농장 반경 500m에서 3㎞로 넓혀서다.

농장 밀집 지역에서 확진사례가 나오면 수십만 마리의 오리, 닭, 메추리 등이 한번에 사라졌다. 농장과 동물단체들은 “과도한 살처분”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동물권행동 시민단체 카라는 “감염되어 죽은 닭보다 그렇지 않은데 희생된 닭이 훨씬 많은 한국의 예방적 살처분은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최악의 정책”이라며 “기계적 살처분이 아니라 위험도 평가에 입각한 과학적 방역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강압적인 집행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방역수칙에 따르면 3㎞ 이내라도 지자체가 가축방역심의위원회를 거쳐 요청할 경우 농장 특성 등을 고려해 살처분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살처분 명령을 거부했다가 두 달여 만에 받아들인 경기 화성시 산안농장의 유재호 대표는 “40년 가까이 그 어떤 농장보다 안전하게 사육환경을 관리했는데 확진농장에서 1.8㎞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멀쩡한 닭들을 묻으라니 너무 억울했다”며 “거부하니 계란 출하를 막았고,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식으로까지 얘기하며 압박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살처분에 신속히 협조한 농장들도 속이 타들어가긴 마찬가지다. 재입식을 해야 하는데 아직 보상을 받지 못한 곳이 많고, 살처분으로 계란은 물론 병아리도 귀해져 살처분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철새 이동으로 AI 발생이 줄어들자 방역당국은 2월 15일부터 살처분 기준을 반경 1㎞ 이내 동일축종으로 축소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3월까지 진행한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은 약 1881억원(국비 1505억원, 지방비 376억원) 규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협회장은 “살처분은 영국이 식민지에서 본국으로 가축전염병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시작한 18세기 방식이며 진행과 보상금, 위로금 등을 합쳐 수천억원의 세금을 써야 하는 비싼 정책”이라며 “살처분은 최선이 아니라 최후의 방법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커지는 ‘백신 도입’ 목소리… 정부는 “계획 없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고병원성 AI 백신을 도입해 떼죽음을 막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식품부는 2016∼2017년 최악의 AI를 겪은 뒤 이듬해 항원뱅크를 구축했다. 현재 닭 2000만마리 접종분 백신을 만들 수 있는 AI 항원을 확보해두고 있지만 백신을 만들 계획은 없다.

농식품부는 △매번 새롭게 유입되는 다양한 바이러스를 방어할 수 있는 범용 백신과 오리에 효과적인 백신이 없다는 점 △백신접종 시 바이러스가 상재화(토착화)될 수 있다는 점 △백신을 도입한 국가에서 AI가 근절되지 않았다는 점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도 대규모 유행 등 살처분이 어려운 경우 제한된 기간만 백신접종을 권고하는 점 등을 들어 백신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최강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오리는 백신 효과가 없고 사육기간이 짧은 육계는 백신이 의미가 없다. 백신을 도입하더라도 살처분 정책과 함께 가야 하는데 백신 접종하고 사후관리하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아 실효성 측면에서 의문이 든다”면서 “백신을 도입하면 바이러스가 상재화될 수 있고 인체감염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신중론을 피력했다.

반면 윤종웅 가금수의사협회장은 “이미 100% 효과가 증명된 백신을 안 쓸 이유가 없다. 매번 새롭게 유입되는 바이러스라도 한국에 들어온 바이러스들은 H5 항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대부분 방어할 수 있다”면서 “살처분은 1만원을 들여 닭을 죽이고 보상하지만, 백신은 200원만 들이면 닭을 살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재홍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이전엔 인체감염, 변이 우려 등으로 AI 백신을 쓰지 않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이 달라졌다고 본다”면서 “코로나19로 국내에서만 1700명 이상 사망했는데 AI는 그에 비해 인체 감염확률이 훨씬 낮다. 또 코로나19도 변이가 있지만 백신을 사용한다. AI 백신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가금농업계에서도 산란계 농가들은 백신을 맞춰 안정적인 생산환경을 확보하는 것에 찬성하지만 육계·토종닭 농가들은 중국 등의 시장 개방 압력을 우려해 신중하다.

농식품부는 백신 도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항원뱅크는 백신을 만들기 위해 구축한 것이 아니라 살처분만으로 전국적인 확산을 막을 수 없는 유사시를 대비한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백신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 김정일이 DJ에 선물했던 北토종 ‘개마고원닭’ 사라질 위기

 

“정부가 축산농가를 보호하고 지켜줘야 하는데 그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살처분을 실행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고 거부하면 각종 압박을 가합니다. 우리는 피해자인데 왜 가해자로 만드나요?”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고센농장 이경용(77) 회장은 16일 세계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장시간 울분을 토했다.

 

재래토종닭으로 유명한 고센농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북한 토종닭(개마고원닭·사진)의 명맥을 유일하게 잇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농장은 지난 1월 반경 3㎞ 이내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살처분 명령을 받게 됐다. 1만여마리 닭이 살처분 위기에 놓이자 이 회장은 남양주시를 상대로 의정부지방법원에 살처분 행정대집행 정지 소송을 냈다. 하지만 기각됐고, 항소했지만 또다시 졌다. 이에 상고해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회장이 살처분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닭들이 고병원성 AI에 감염되지 않았고, 다른 농장과 바이러스 수평전파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고센농장은 AI 발생농장으로부터 지도상 직선거리로 1.3㎞에 위치해 있지만 산에 둘러싸여 있어 가장 짧은 길도 5㎞ 거리다. 이 회장은 “방역상태를 확인하러 온 검역본부 직원이 ‘이렇게 완벽한 곳은 처음 본다. 바이러스가 침투할 곳이 없겠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방역당국은 2월 15일부터 살처분 기준을 반경 1㎞로 변경했다. 이에 따르면 고센농장은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지만 방역당국은 “소급적용은 없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개별 농장마다 사정이 있지만 예외를 인정하면 시스템이 무너진다”면서 “고센농장에 대한 살처분 명령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청정환경에 있는 우리 닭들은 30년간 병에 걸린 적이 없다. 남북한 토종닭을 연구하고 통일 염원을 지켜갈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기도 하다”면서 “이런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닭들을 죽일 생각만 하는 정책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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