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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갈등 편승, 美와 동맹관계 강화·자국 영향력 확대 포석 [심층기획 - 유럽 각국 인도·태평양 다시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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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9 06:00:00 수정 : 2021-04-19 07: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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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해군 강습상륙함·프리깃함 2척 동원
4월 초 인도 벵골만서 ‘쿼드’와 합동훈련

英, 안보전략서에 中을 경쟁자로 규정
여름쯤 항모 파견, 美·日과 합동훈련 계획

獨, 아세안 국가와 안보 강화 전략 첫 채택

유럽·中 관계, 전락적 경쟁·對美관계 추가
협력·경쟁·견제가 함께 이뤄지는 구도로
프랑스 해군 강습상륙함 토네르함(가운데)과 호주·인도·일본·미국 함정들이 지난 5일(현지시간) 인도 벵골만에서 열린 ‘라 페루즈’ 연합훈련에 참가해 해상훈련을 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한때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자취를 감췄던 유럽의 군대가 이 지역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불어닥친 제3세계 독립 열풍과 경제난에 직면한 유럽은 인도·태평양 주도권을 미국에 넘기고 물러났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연합체 쿼드(미국·인도·호주·일본의 비공식 안보 협의체)가 출범하는 등 역내 미·중 갈등이 치열해지자 유럽 각국은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앞세워 미국을 돕고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군함 파견하는 유럽 국가들

유럽 국가 중 인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 해군 강습상륙함 토네르함과 프리깃함 쉬르쿠프함은 이달 초 인도 동부 벵골만에서 쿼드 회원국인 미국, 일본, 인도, 호주와 ‘라 페루즈’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1780년대 인도·태평양지역을 탐험한 프랑스 해군 장교 라 페루즈 백작의 이름을 훈련명으로 정한 것처럼, 이번 훈련은 프랑스의 참여에 초점이 맞춰졌다. 쿼드 4개국은 지난해 11월 인도양에서 말라바르 연합훈련을 실시했으나, 프랑스가 포함된 5개국이 함께 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도 주재 프랑스 대사관은 지난달 31일 성명에서 “이번 훈련은 생각이 비슷한 5국의 첨단 해군 전력이 전술을 가다듬고,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서 해상 협상을 증진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네르함과 쉬르쿠프함은 다음달 미군 및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월에는 프랑스 핵잠수함 에메로데함이 남중국해에 모습을 드러냈다. 핵잠수함은 바닷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전략무기이지만,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부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관련 사진을 공개하며 “우리가 어떤 바다를 항해하든 유효한 유일의 규칙은 국제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전략적 억제력을 과시했다. 이를 두고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맞서 미국이 펼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지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브렉시트로 유럽연합(EU)과 결별한 영국은 인도·태평양지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3월 발표된 영국의 국가안보전략서에는 중국을 경쟁자로 규정하면서 EU에 치중하던 글로벌 안보 기여 범위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증진하는 내용이 담겼다.

영국의 최신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는 올여름쯤 네덜란드 구축함 등과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출동, 미국·일본 등과 연합훈련을 실시 하고 9월을 전후로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벨 골디 영국 국방부 차관은 7일 박재민 국방부 차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을 ‘주요 지역 파트너 국가’로 언급하며 “한국과 영국이 국방 분야에서 교류 및 협력을 확대하고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서도 협력을 증진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독일은 지난해 9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와 안보·경제 협력 강화를 중심으로 한 인도·태평양전략을 처음으로 채택했다. 지난달 일본과 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으며, 여름에는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할 예정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의식, 해외에서의 군사력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던 과거와는 대조적인 행보다. 네덜란드도 지난해 11월 인도·태평양전략을 수립했다.

◆국익 보호·대미 관계 강화 등 다목적 포석

유럽이 인도·태평양 지역 중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EU와 자국의 이익을 지키면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존의 유럽·중국 관계가 협력 위주였다면, 이제는 전략적 경쟁 개념과 대미 관계가 추가로 포함되면서 협력·경쟁·견제가 함께 이뤄지는 구도로 변화한 셈이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은 동유럽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자국 인접 지역에 중국이 외교·경제적 진출을 강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 애틀랜틱 이사회 세미나에서 “중국이 투자를 명목으로 유럽에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프랑스가 중시하는 북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 일부 국가에 코로나19 백신 제공을 앞세워 영향력을 증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는 본토에서 1만5000㎞ 떨어진 해외 영토인 남인도양 마다가스카르 인근 마요트·레위니옹 섬,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왈리스 푸투나 등에 병력 8000명과 해군 함대를 배치하고 있다. 과거에는 현재 병력으로도 인도·태평양 지역 내 영토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지킬 수 있었으나, 중국 해·공군이 인도양과 남중국해 등에 진출하면서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두고 ’중국이 유럽과 가까운 곳에 진출한다면, 유럽도 중국 인접 지역에 관여하겠다’는 맞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브렉시트를 단행한 영국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할 돌파구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찾고 있다. 동맹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기조에 호응하면서 역내 국가와 외교·군사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일석이조’ 전략이다. 실제로 영국은 지난 3일 일본과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을 갖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을 파견하면서 미국과 공동훈련을 진행하기로 했다.

유럽의 인도·태평양 지역 진출 과정에서 해군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여파가 남아 있고, 러시아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은 육·공군을 인도·태평양에 장기간 파견하기 어렵다. 역내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해군 함정은 자체적인 공격 및 방어수단을 갖추고 있으며 무력시위 효과가 있고 정치적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에 따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해군 전투함이 인도·태평양에 전개하는 현재 양상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中, 120년 전 ‘의화단사건’ 비교하며 애국심 고양

 

유럽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인들은 현재 상황을 120년 전 의화단사건과 비교하고 있다. 쿼드와 유럽이 중국을 압박하는 현재 정세가 의화단사건 당시와 똑같다는 것이다. 1900년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도와 서양 오랑캐를 멸하자)’을 외치며 봉기했던 의화단은 수도 베이징을 점령하고 서구 열강의 공사관을 공격했으나 8국 연합군에 진압됐다. 청나라는 1901년 신축조약을 체결하고 은 4억5000만냥을 배상금으로 지불했다.

 

중국 정부와 관영 언론은 현재 상황을 의화단사건 등 과거와 대비하며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양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강경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서방이 지난달 22일 중국의 신장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에 동시다발적인 제재를 단행하자 중국은 유럽 측 인사 10명과 EU 이사회 정치안전위원회 등 단체 4곳을 제재하는 맞대응에 나섰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오늘의 중국은 1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외국 열강들이 대포 몇 대로 중국의 대문을 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영영 지났다”고 비판해 중국인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느슨하게 하려는 외교적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기후변화 화상 정상회의를 갖고 “기후변화 대응이 무역 장벽의 구실이 돼서는 안 된다”며 유럽 기업에 대한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5일 아란차 곤잘레스 라야 스페인 외교장관과 통화에서 “중국은 서방과 조율을 강화해 경제무역과 에너지 등 분야에서 협력, 관광과 인문 교류를 강화하며 스페인과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지난달 말 헝가리, 세르비아, 그리스, 북마케도니아를 방문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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