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하루 평균 82명 학대받아
5년 내 재학대 아동 사례도 2776명
가정 돌아간 8명 중 1명 꼴 위험 노출
시·군·구에 전담공무원 664명 배치
24시간 주7일 근무 고려하면 태부족
직무교육 등 전문성 강화도 변죽만
연 2회 이상 의심 신고 땐 즉각분리
현실 모르는 탁상행정 비판 목소리
사건 처리 때 아동인권도 철저 무시
(중) 쥐꼬리 예산 등 과제 산적
예산 90%, 벌금·복권 수입서 충당
복지부 아동학대 예산은 42억에 그쳐
법무부 287억 기재부 86억 지원 불구
해마다 별도로 책정해 규모 ‘들쭉날쭉’
담당부처 달라 행정 효율성도 떨어져
지원 재원 논의 7년째 제자리
관련 법안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
시민단체, 문제 해결 캠페인 나서기도
전문가들 “예산이 안정돼야 정책 효과
구조적인 개선 없으면 비극 반복될 것”
(하) 학대받은 아동 치유 시급
학대 경험 아동 신체적 손상뿐만 아니라
자아 손실·트라우마 등 심리적인 후유증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학대 대물림’까지
가정폭력 가해자 절반 이상이 피해 경험
심리치료 서비스 지원 6개월이면 끝나
정부 지정 전담의료기관 단 한 곳도 없어
2019년 사례 3만여건 중 의료지원 401명
“아이가 지옥 속에서 헤맬 때 치료 끓겨”
지난 24일 친모에게 폭행당해 43일 동안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생후 8개월 된 여아가 숨졌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폭력이 또 어린 생명을 앗아갔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양천 아동학대 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양천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국회는 부랴부랴 수년 동안 방치됐던 입법안을 반영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시행규칙’을 통과시켰다. 시행규칙은 ‘학대 신고 후 현장 출동, 초동조사, 신속한 아동분리’를 골자로 한다.
또 정부는 지난 1월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각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을 새로 배치하고, 그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담당했던 아동학대 사건 조사·처리를 경찰과 함께 담당하도록 한 것이라고 보건복지부 등이 25일 밝혔다. 지난달 30일부터는 ‘즉각분리제도’를 시행했다. 1년에 두 차례 이상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들어온 아동은 학대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해 보호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각종 대책과 관련 법안 발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동학대 사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다. 지난 2월 전북에서는 생후 2주 된 아이가 친부모의 폭력에 사망했고, 경북 구미에서는 빈집에 버려진 3세 아이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10세 아이는 이모의 물고문에 죽음에 이르렀다. 최근 인천에서는 생후 2개월 된 아이가 친부의 학대로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졌다.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사건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문제는 최근 발표되고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한 ‘아동학대 대응책’이 학대받은 아동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아동복지 관련 시설에 보내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의 비난을 잠재울 ‘초동조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작 보호해야 할 피해아동 대책보다는 행정편의주의 중심으로 급조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학대로 상처받은 아동의 욕구와 심리를 파악하고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는 전혀 나와있지 않다. 인력 배치와 수급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물론 조사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경찰의 전문성 확보 방안 등 중장기 계획도 없다.
그래서 아동학대를 해결할 근본적인 내용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땜질식’ 처방으로는 또 아이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터질 때마다 개별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대응과 경쟁하듯 법 개정 발의를 진행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다”며 “혁신적인 시스템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 학대 사망 절반이 1세 미만… 돌아가면 재학대 ‘악순환’
2019년 한 해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는 3만45건이다. 하루 평균 82명의 아이들이 학대를 받았고, 42명이 이 때문에 사망했다. 학대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아이 42명 중 절반에 가까운 19명은 1세 미만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5년 내 재학대받은 아동은 2776명이고, 가정으로 돌아간 학대피해 아동 8명 중 1명은 다시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아동학대와 학대로 인한 사망사건이 매년 반복되는 가운데 정부는 ‘양천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지난 1월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법무부, 경찰청 등 범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한 제1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도출한 결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깊이 있는 분석이나 진상조사 없이 개별사건의 단편적인 해결책들만 열거한 이 방안만으로는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2의 ○○○’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동학대 사망자 절반은 1세 미만, 전문성 갖춘 조사 담당 공무원 부족이 화 키워
25일 정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살펴보면 사건 초기 조사를 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지난해 118개 시·군·구에 290명을 배치한 데 이어 올해 229개 시·군·구 및 5개 시·도에 374명을 추가 배정한다. 오는 10월 말까지 모든 시·군·구에 664명을 배치할 계획이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직무교육 시간을 기존보다 2배 많은 160시간으로 늘리고, 학대예방경찰관(APO)을 대상으로 심리학·사회복지학 등 관련 학위 취득 지원 등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겠다고도 했다.
복지부 계획에 따라 664명이 배치되더라도 지자체별 2.89명으로,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원활한 아동학대 대응 업무를 위해서는 내근직 1명, 폭행 위협 등을 고려한 외근직 2명 등 최소 3명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24시간 주 7일 근무형태를 고려하지 않은 최소 인원이다. 실제 현장이 원만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민간에 맡겨뒀던 조사업무라도 가져와 공공화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복지부가 발표한 인력 계획도 방대한 업무량에 비해 양과 질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기존 인원에서 부서이동만 하는 것인지, 추가적으로 충원하는 것인지 인적 자원의 실체가 없는 등 중장기계획이 없다는 점도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가 반복해 강조하고 있는 ‘전문성 강화’도 그 방법과 세부내용이 매우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전문성’은 아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아동 인권 보호를 핵심 가치로 둔 교육·훈련을 통해서 형성돼야 한다. 이러한 교육·훈련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 예산이 전제돼야 한다. 단순히 전담공무원에 대한 직무교육과 보수교육 시간을 늘리고 순환보직을 금지하는 정도의 대책으로 전문성 강화를 외치는 것은 현장의 부담만을 가중시킨 것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동학대 사건을 지원해온 김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의 ‘아동학대대책 간담회’에서 “전문성은 한자리에서 오래, 많은 사건을 접해야 생기는 것이며, 교육시간을 늘린다고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며 “학위지원, 전문직위 지정, 전문경력관 제도가 실현가능한 상황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쉼터 등 대안 부족한 상황에서 무조건 즉각 분리는 현장 외면한 것”
지난달 30일부터 시행된 ‘즉각분리제도’는 아동학대를 몰이해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즉각분리제도는 연간 2회 이상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아동은 학대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해 아동일시보호시설 등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쉼터’ 등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즉시분리를 추진하는 것이 해법이 아니라고 조언한다. 김 변호사는 “학대피해가 확인되고, 재학대 위험이 있을 때 72시간 내에 분리하도록 하는 ‘응급조치’ 제도로 충분한 상황에서, 사법적 판단 없이 지자체 담당 공무원의 판단하에 임의로 분리하도록 한 것은 위험한 발상이며 위헌의 소지까지 있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학대라는 판단부터 위기 아동 분리 이후까지, 현장은 ‘불확실성투성이’다. 모든 단계마다 판단이 잘못될 위험이 따른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늘 책임 추궁과 경질, 비난, 처벌이 반복됐다.
이미 현장에선 기피부서가 됐다. A지자체에서 아동학대전담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공무원은 “인원이 지난해보다 3명 더 늘었지만, 신고건수는 그보다 더 늘어 업무는 여전히 과중하다”며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아이의 삶 등이 달라지고, 비난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잘 맡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배치된 전담공무원이 짧은 기간 내 자리를 옮기거나 휴직계를 내고 빠져나가는 사례도 있다. 현장에선 “일은 어려운데 전문성 키울 새도 없이 법과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일 터지면 책임지라는데 누가 버티겠느냐”는 자조가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 방안에 ‘아동’이 빠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김예원 변호사는 “사건 조사부터 분리, 사례관리까지 아동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된다”며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 과정에 놓인 아동의 욕구와 심리는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각 과정에서 선택하는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부여해줄 것인지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 보호시설 68곳뿐… 수용 역부족
“아동 학대 사건은 피해 아이를 가해자로부터 제때 떼어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내놓은 아동학대 재발 방지책의 핵심은 ‘아동학대 즉각 분리 제도’이다. 일 년 동안 2회 이상 학대 신고를 받은 아동을 양육자로부터 즉각 분리하는 시스템이다. 보호자가 아동의 답변을 방해한 경우 또는 아동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여전히 허점이 많다. 피해 아동을 보듬어야 할 보호시설은 물론 관련 인력 역시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 3만923건에서 2018년 3만3532건, 2019년 3만8380건, 2020년 3만8100여건이다. 이 중 아동 재학대는 2016년 1591건, 2017년 2160건, 2018년 2543건, 2019년 2776건으로 매년 오름세다.
이 중 원가정 보호 조치는 높은 비율의 재학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학대 아동을 보호할 만한 시설은 태부족하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모두 68개소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경기 14개소, 서울 9개소, 부산·경북·전남 4개소, 대구·인천·경남 3개소 등이다.
시설 상담원은 모두 960명이다. 기관별로 편차는 있지만 상담원 1인당 60개 가정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근속기간은 2년 안팎으로 이직률 역시 높았다. 다시 말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에 비해 피해 아동을 보호할 시설과 상담원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사후관리까지 포함하면 상담원의 업무량은 곱절로 는다.
◆ 벌금·복권 수익 줄면 예산도 쪼그라져… 장기대책 ‘그림의 떡’
‘0.0005%.’
올해 보건복지부 전체 세출예산 중 아동학대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올해 초 정부가 아동학대 예방과 대응 관련 다양한 방안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를 포함한 아동학대 관련 예산의 90%가량은 벌금·복권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벌금·복권 수익이 줄어들면 관련 예산도 확 쪼그라드는 구조다. 매해 예산 규모가 바뀌다 보니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중장기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천 아동학대 사건(일명 정인이 사건)’ 이후 예산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쥐꼬리’ 아동학대 예산의 90%는 벌금·복권 수입
26일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아동학대와 직접 관련이 있는 전체 예산은 416억원이다. 복지부와 법무부, 기획재정부 3개 부처에서 책정한 아동학대 대응 및 예방 등에 관한 예산이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의 90%는 주무부처인 복지부 예산이 아니다. 법무부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 287억3600만원, 기재부의 복권기금 86억5500만원이 전체 아동학대 예산의 90%를 차지한다.
복지부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42억원에 불과하다. 42억원은 복지부 아동·청소년 관련 예산(2조5943억원)의 0.16%, 복지부 전체 세출예산(88조9761억원)의 0.0005%에 불과한 것이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범죄자들이 낸 벌금에서 8%씩 떼서 적립한다. 문제는 벌금 수납액이 들쭉날쭉한 데다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이다. 2015년 1조3490억원이었던 벌금수납액은 2019년 1조835억원으로 줄었다. 벌금을 사회봉사명령으로 대신할 수 있어 벌금수납액 자체가 크게 늘지 않을뿐더러 안정적이지도 않다.
복권기금도 지속가능한 안정 재원이 아니다.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따르면 복권기금은 저소득층, 장애인,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피해여성, 불우청소년 등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과 다문화가족 지원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나 복권기금의 일정 비율을 아동학대 예산에 쓰도록 돼 있는 것도 아니다. 관련 위원회가 매년 학대피해 아동 보호 등에 쓸 예산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다른 소외계층 사업에 기금이 많이 배분되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의 구조에서도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늘리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 올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119억4200만원이 늘었다. 그러나 늘어난 예산의 약 31%는 시스템 운영 및 유지관리, 사이버교육 콘텐츠 개발, 한시 지원 용도로 편성됐다. 복권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학대피해아동 쉼터 예산은 46% 증가했다. 쉼터를 76개소에서 91개소로 늘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복권 판매수익이 2조6208억원으로 2005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기금을 담당하는 부처가 다르다 보니 행정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두 기금 모두 복지부 소관이 아니어서 예산 심의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받지 않는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복권기금은 기획재정위원회가 소관 상임위다.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한 ‘중장기정책’을 내놓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원재원 바꿔야 한다는 지적에도 논의는 7년째 제자리
아동학대 관련 예산의 구조로 정책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최혜영 의원은 “2014년 아동학대의 국가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지방이양사업이었던 아동학대 예산을 국가보조사업으로 전환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지부 사업이 아닌 법무부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기재부 복권기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정식 회계 예산에 넣거나 그게 어렵다면 복지부 차원에서 관련 기금을 신설하자고 주장한다. 안정적인 예산이 확보돼야 인력 충원이나 전문성 강화 등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고, 각 사례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법안도 발의가 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정부가 아동학대를 막겠다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그를 뒷받침하고 실현할 예산에서는 이러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심지어 아동보호를 위한 예산은 전체 규모에서 비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아동학대를 포함한 아동보호 관련 예산이 복지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감소해 2015년 0.66%에서 올해 0.43%로 줄었다.
미국은 학대의 정도, 아동과 부모의 관계, 부모의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해 가정마다 서로 다른 교육·심리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기관 인력 비중이 높은 데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 지원 규모도 상당해서다.
미국에선 1명의 공공 인력이 한 달 평균 6건의 아동학대 사례를 담당한다. 예산은 학대아동 1인당 약 43만원(397달러)이 쓰인다. 한국은 공공 인력 1명이 14건의 사례를 처리하고, 아동 1인에게 2064원이 배정된다. 김 교수는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 한 비극적인 사건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비정부단체도 나섰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당신의 이름을 보태주세요’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충분한 예산과 인력, 인프라 등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피해 아동과 가정이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 확보 △아동학대 예방 예산의 안정성을 위한 복지부 일반 예산으로 전환 △229개 시·군·구마다 보호전문기관 설치 △아동보호 체계에서 일하는 전문가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모인 서명은 정부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매번 제시된 아동학대 대응의 주된 내용은 가해자의 처벌 강화, 신고의무자 확대, 미신고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아동학대 업무 담당자의 권한 강화, 가해자의 조사 불응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였다”며 “더 이상 미안한 어른, 미안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도록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생계 부양해야”… 아동학대 대부분 실형보다는 집행유예
법원은 지난달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친부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친부는 자녀를 한겨울에 속옷만 입혀 밖에서 2시간 넘게 방치하고 상습적으로 폭행을 일삼았다. 문제는 친부의 범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3년 전에도 같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는 “피해 아동이 피고인에 대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며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6일 대법원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총 267건이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치사의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중상해의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극히 일부다. 2019년 발생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12.3%)에 불과했다. 집행유예는 96건(36%)으로 실형보다 3배 많았다.
집행유예 선고 이유는 대부분 생계부양의 이유나 아동보호 공백 등이었다. 이 때문에 피해아동의 상당수는 다시 폭력이 발생한 원가정으로 돌아가고 있다. 2018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 2만4604건 가운데 82%(2만164건)는 ‘원가정 보호조치’됐다. 부모의 학대에도 아이는 부모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자 정부도 대법원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월 대법원양형위원회에 아동학대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처벌 불원’ 사유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동학대처벌법이 치사와 중상해, 아동복지법상 일부 금지 행위만을 규정하고 있어 범죄 기준이 좁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은 16세 미만의 아동을 의도적으로 폭력, 학대, 방임, 유기 및 정신적 학대를 한 경우 최대 1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학대와 방치 모두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는 의도와 상관없이 친권자가 폭력을 이용해 15세 미만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징역 30년의 중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학대처벌법은 처벌 조문보다 국가가 아동 학대 문제에 개입하는 범위와 보호적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다”며 “판사 입장에서도 아이가 부모와 분리된 이후를 생각해 처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승 연구위원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나오려면 학대피해 아동이 부모와 분리된 이후 지원, 생활 등 현실적인 대책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피해아동 2명 중 1명 정신질환 앓지만 사후 치료·관리 부실
#1. A(12)양은 “아빠가 학대했다”고 신고를 했다. 어른들은 ‘학대’로 판단했고, 그때부터 A양은 시설을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이후 A양이 “아빠가 엉덩이를 꼬집어 화가 났던 것”이라며 “아빠가 보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고 수차례 이야기해도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또 다른 시설로 보내질 뿐이었다. 견디지 못한 A양은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지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수면제와 항정신성 약을 먹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됐다.
#2. B(8)군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자였다. 아버지는 B군이 눈에 띄면 아무데나 때렸다. 어느날 B군 아버지는 “라면이 어디 갔느냐”며 행패를 부렸다. 그러다 B군을 향해 칼을 휘둘렀고, 칼은 그대로 아이의 발을 관통했다. 병원 응급실 의료진의 신고로 B군과 아버지는 분리됐다. 하지만 B군에 대한 정신적·신체적 건강 관리 지원은 6개월 만에 끊겼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경악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사건이 주목받고, 대책이 발표되는 와중에도 ‘아동’은 보지 못한다. 피해아동이 이후 어떻게 치료받고 치유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입양된 동생이 학대받는 걸 봐야 했던 언니, 동생이 갇힌 여행가방에 올라가야 했던 형제들, 빈집에 버려지는 아이를 봐야 했던 아이 등 또 다른 아이들의 ‘다친 마음’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학대 아동 2명 중 1명 정신질환 등 앓아
A양 사례는 ‘과잉 분리에 의한 부작용’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계적인 분리가 아동에게 오히려 2차 학대가 된 사례라는 지적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많은 학대 피해 아동이 갑작스러운 분리로 인한 분노와 공포를 호소하고, 분리가 되면 공황장애가 오는 아이들도 있다”며 “아동 심리에 대한 이해 없이, 아동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판단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 아동의 진정한 의사를 파악하고, 아동의 관점에서 모든 과정을 점검하고, 사후 관리를 하는 등 사건이 굴러가는 와중에도 아동이 ‘자신의 삶’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대는 아동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단순한 신체적 손상에 그치지 않고 지능·언어·신체적 발달의 지연을 보이며, 자아 기능 손실, 트라우마, 자학적·파괴적 행동 등의 심리적 후유증도 나타난다.
학대받은 아동 2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2015년 발행한 ‘아동학대 피해 아동의 정신질환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학대 경험이 있는 0∼18세 아동 61명 중 약 50%가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23%로 가장 많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21.3%, 우울장애 16.4% 등의 순이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학대 후유증이 ‘학대 대물림’이라는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10살 조카를 물고문해 숨지게 한 이모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고, 7살 아이를 학대한 끝에 사망케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사건의 계모 역시 어린 시절 계모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에서도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주기별 학대 경험의 상호관계성 연구’(2019년)를 보면 가정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2153명 중 52.8%가 아동기와 성인기 때 모두 피해를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36.7%는 아동기에 학대 등 피해를 겪었고, 생애 과정을 통틀어 피해 경험이 없는데도 가정폭력을 저지른 경우는 9.1%에 불과했다.
◆6개월 만에 끝나는 심리치료 서비스 지원
그럼에도 학대 피해아동 사후관리 체계는 미흡한 실정이다. 심리치료 서비스 지원이 6개월이면 끝나 B군의 사례처럼 치료가 더 필요한데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에 따르면 학대피해 아동 치료를 위한 전담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의료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지정된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은 2곳에 불과하다. 이마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한 곳으로 보건복지부 지정 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2019년 3만45건의 아동학대 판정 사례 중 의료지원을 받은 아이는 401명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 2월 대한의사협회와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공동 주최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보건의료시스템,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도 지적됐다. 배기수 아주대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아이는 한창 지옥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치료는 끊기게 된다”며 “현재 협력기관도 병의원, 보건소, 정신보건센터, 알코올상담센터 정도로, 피해아동을 도울 협력기관이 부족하다. 최소한 PTSD 특화센터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아동에 대한 사후 치료·관리가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고, 피해아동의 형제자매, 동거 아동까지 관리·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배 교수는 “피해 아동의 평생에 걸친 육체 및 정신 질환을 관련 종사자 간의 융합ㆍ통합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지향’ 소속 김영주 변호사는 지속적인 아동학대 모니터링 및 점검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아동학대 대응체계 과제와 개선방향’ 세미나 보고서에서 “아동학대 사례 관리 시 시설에 입소했다 하더라도 피해 아동이 학대받지 않는지 등 안전 확인 및 대면점검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관부처 및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보호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체계적 부모교육이 근본적 학대 예방책”
“아동들의 꿀밤을 몇 번 때리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게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을 만한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인이나 강도, 절도를 한 것도 아니고. 여론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서 우리가 처벌을 중하게 받으면 그건 억울한 것이다.”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인천 서구 공립 어린이집 전 원장이 지난 2월 한 보육교사와 통화한 내용이다. 이들은 지난 19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학대로 보는 것은 가혹하다”고 항변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의 생각이 이럴진대 일반 가정은 어떨까.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면서 부모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권위적 가족문화에다 점점 커지는 핵가족화, 물신주의, 양육 부담 등으로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역량, 지식을 미처 갖추지 못한 채 부모가 된 이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상담이 이뤄져야 근본적으로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사건(3만45건)의 가해자 75.6%는 부모였다. 피해 아동을 재학대(3431건)한 행위자 역시 부모가 94.5%를 차지했다. 부모들은 체벌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편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민법상 부모 징계권 폐지(2021년 1월8일) 100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66.7%는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응답자의 84%는 체벌이 아동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정부도 부모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중앙정부는 지난해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 중 하나로 ‘맞춤형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을 포함한 뒤 지원대상을 중위소득 72%에서 100% 이하로 확대했다. 부모교육 확산·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마련한 지방자치단체는 4월 현재 광주와 전북, 경남, 서울 노원·도봉구, 경기 안산시 등 14개 광역·기초단체에 이른다.
문제는 내실화다. 울산여성가족개발원에 따르면 부모교육은 주로 영·유아기나 아동·청소년기 부모 대상으로만 이뤄지고 예비 부모나 성인기 부모, 맞벌이 부모, 한부모·조손·다문화·미혼모 가정에 대한 부모교육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초·중·고교 단계나 출산·보육수당 지급 시 부모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민자 울산대 교수(아동가정복지학)는 “국가 차원에서 아이라는 선물, 인간다움에 대한 긍정성을 디자인하고 교육해야 하는데 지금은 칸막이식 교육만 하고 있다”며 중고교 가정과목을 활용하거나 혼인신고, 임신·출산·양육수당 지급시 부모교육 의무화 방안을 제안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배소영·안승진·송민섭 기자 bora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