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창 김○○ 있잖아. 걔가 3년 전에 무슨 코인 1억원어치를 샀는데 5분의 1토막이 났었어. 그때 안 팔고 1억5000만원을 더 넣어서 평단가를 낮췄는데 그게 이번에 5배 올랐대.”
작년엔 주식으로 성공한 친구들 얘기가 들려오더니 올해는 가상화폐다.

소소하게 용돈 정도 벌고 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10억원 이상의 ‘대박’을 거뒀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라 입이 떡 벌어졌다. 배 아프지는 않았다. 나라면 그때 1억원이 있었어도 코인을 사지 않았을 테니까. 큰 금액을 과감히 투자해 인고의 시간을 견뎠으니 ‘대단한 친구’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준 친구가 재미있는 사실을 덧붙였다.
“그런데 걔 와이프는 걔가 코인 하는지 몰라.”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혼 전 투자를 시작했다고 해도 수억원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혼자 결정하고 진행한다니. 그 정도를 ‘소소한 용돈 벌이’라고 생각할 만큼 부자라면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규모에 상관없이 가상화폐나 주식 투자를 가족에게 숨기는 경우는 흔했다.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했던 지난달 말, 정보 교류 커뮤니티에서는 배우자에게 ‘코밍아웃’(코인+커밍아웃)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투자자들의 사연이 쏟아졌다. 가게보증금을 빼고 대출까지 받아 2억원을 투자했는데 반 토막이 나 아내에게 이실직고했다가 이혼 통보를 받았다는 A씨.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는 걸 수상하게 여긴 아내가 통장 잔액을 보여달라고 해 난감하다는 B씨. 남편 몰래 소액 투자했다가 수익률이 -75%까지 떨어져 말 못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C씨 등.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평생 벌어도 아파트 전세보증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다. 변동성이 큰 종목에 투자하는 것은 목돈 마련의 유일한 희망처럼 보인다. MZ세대가 코인에 인생을 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무모하다 나무랄 것도 없다. 어차피 모든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개인의 몫이다. 어떤 결과든 감당할 수 있으면 된다.
다만 결과가 좋지 못할 때 오롯이 홀로 책임질 수준을 넘는 경우가 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어 가족과 주변인들을 오랜 시간 고통받게 하는 사례가 왕왕 발생한다. 특히 가족들 모르게 투자했다가 그런 결과를 맞이하면 가정이 깨지기도 한다.
혹자는 “잘 해보려고 벌인 일인데 감싸주지 못할망정 이혼하는 건 너무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으로 이해하는 데도 정도는 있다. 아무것도 몰랐다가 혹독한 연대 책임을 지게 된 가족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투자는, 특히 규모가 큰 투자는 반드시 가족 간 합의가 있어야 하며 실패 시에도 감당할 수준이어야 한다.
가상화폐 광풍이 이어지고 있다. 상승장에서는 실패담보다는 성공담이 더 자주 들린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투자시장은 없다. 실체가 모호한 알트코인이 범람하고 이미 사기도 판쳐 위험이 최고조에 달했다. 늦기 전에 ‘코밍아웃’하자. 성공도 실패도 함께 경험하고 책임져야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김희원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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