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 집안 장남으로 태어난 드가
가업 이으려 법학부 진학했다 전향
고전주의 빠져 10여년간 연구 활동
주로 근대사회 고단함·고립 등 표현
‘발레하는 소녀들’ 신선·현실적 평가
‘무용 수업’ 부드러운 색채 눈길 잡아
발레 소녀 표현한 조각작품 ‘14살의…’
해부학에 기반 실제 같이 인체 묘사
천 스커트 입혀 현실과 연결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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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발레가 있는 장면
벌써 봄의 끝이 코앞이다. 일간 기온 차가 커서 초겨울과 초여름이 공존했던 봄. 이 이상했던 계절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다. 그 마무리를 앞두고 지난 3월과 4월 그리고 5월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한 장면이 소중하게 마음에 아로새겼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장면은 햇살 좋은 날 벚꽃 휘날리는 아래를 걷는 경험이 아니었다. 대신 TV를 통해 본 드라마에서 짧은 순간 동안 일어난 것이었는데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최근 종영한 한 드라마에서 배우 박인환은 주연을 맡았다. 그가 연기한 인물 덕출은 평생 우편집배원 일을 하며 공무원으로 산 사람이다. 정년 이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발레 연습실 안을 보게 된다. 그 순간 공연 관람을 좋아했던 젊은 시절이 떠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결국 발레 연습실에 들어가 발레를 배워보고 싶다며 연습실의 주인에게 이야기한다. 극 중 그의 나이는 일흔이다.
덕출은 하나의 테스트를 통과하면 발레를 배우기로 한다. 그 테스트는 발레 기본 동작 중 하나를 취한 채 일 분간 멈추는 것이다. 덕출의 나이에는 쉽지 않은 동작이지만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버텨낸다. 발목을 꼿꼿이 세우고, 두 팔을 앞으로 둥글게 모았다가 천장을 향하고 그렇게 성공해낸다. 이 성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덕출이 며칠간 급하게 기른 몸의 근력이 아니라 성실함이다. 집배원 시절 실수를 줄이려 코피를 흘리며 배달 주소를 외웠던 그. 그는 결국 그렇게 평생의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다.
누군가의 말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운은 성실히 준비해온 사람만이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덕출이 버텨낸 그 일 분의 시간을 담은 장면은 이런 맥락에서 마음에 깊이 남았다. 일흔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만큼 그가 평생 지녀온 성실한 태도가 존경스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점차 발레 동작을 하나씩 배워갈 때마다 내 일처럼 기쁨을 느꼈다. 덕출과 함께 발레에 빠져들었고 자연스럽게 드가의 발레하는 소녀들 작품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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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파리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로 알려진 드가의 이름은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르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 Gas)다. 그는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에서 ‘일레르’는 은행가 조부, ‘제르맹’은 사업가 외조부에서 딴 것이다. 친가와 외가 모두 부유한 당대 전형적인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이러한 배경 덕에 그는 마흔 중반까지도 작품을 팔 이유를 크게 찾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가업을 잇기 위해 소르본 법학부에 진학해 법률을 배웠으나 곧 그만두었다. 어린 시절 박물관에서 그림에 갖게 된 관심으로 화가를 지망하게 되었다. 에콜 데 보자르에 진학해 앵그르의 제자인 루이 라모트에게 그림을 배웠다. 전통적인 미술 교육 방식에 의해 선의 표현과 그것을 반영한 드로잉 등을 배웠다. 이러한 신고전주의 화가들의 영향으로 고전주의에 대한 경의가 생겨났다. 10여년간 고전 연구에 힘을 쏟는 시간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많은 그림을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그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동생들은 여러 사건에 휘말리며 빚을 졌다. 드가는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자진 입대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조국의 입장에 충실한 발언들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뒤집어쓴 드레퓌스 사건이다. 그는 이 사건을 두고 반드레퓌스, 즉 반유대주의적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삶과 사회 정치적 태도에서 그가 보수주의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추측한다. 인상 깊은 점은 그런 그가 미술에서는 열린 태도를 지니고 새로움을 즐겼다는 것이다.
드가가 미술을 배우고 화가로 활동한 시기는 미술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때다.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구스타브 쿠르베는 왕과 귀족이 아닌 돌 깨는 사람을 그려 세상을 사실 그대로 표현했다. 모네는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화는 풍경의 인상을 화면에 담았다. 드가는 이러한 새로운 사상과 기술에 개방적이었으며 이 작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독립파’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 밑바탕에는 자기 작업의 기조를 고전주의로 삼은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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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발레하는 소녀들
드가는 고전주의에서 비롯한 작품 세계를 펼쳤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은 과거가 아니라 현실에 속해 있었다. 틀에 박히거나 시대착오적이지 않았으며 신선하면서 현실적이라 주목받았다. 그는 르네상스 작품에서 느껴지는 ‘영원’이 자기 시대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걸음걸이마저 빠르게 변하기 시작한 근대 도시, 파리에 살며 깨달았다. 근대의 작품은 작은 구석, 한순간, 파편을 그릴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 이유다. 이렇게 드가는 작품에서 근대 사회의 고단함과 인간 고립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중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발레를 하는 소녀를 다룬 것들이다.
‘무용 수업(The Dance Class)’(1874)은 한 발레 교습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스무 명이 넘는 소녀들과 그녀들의 엄마, 그리고 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이 지도자는 파리에서 무용수 겸 안무가로 이름을 알린 쥘 페로다. 페로의 발레 교습소에 이렇게 많은 이가 등장한 이유는 이날 그동안 배운 발레 동작들의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상상의 장면은 파리 오페라의 리허설 룸을 그 배경으로 한다.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 옆에는 오페라 ‘윌리엄 텔’의 포스터가 보인다. 이는 작품을 의뢰한 오페라 가수 장 밥티스트 포레에게 보내는 헌정의 의미다.
작품을 보는 순간 감탄하게 되는 것은 소묘 능력으로 정확하게 그려낸 형태들이다. 그 위를 감싸듯 덮은 신선하고도 부드러운 색채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덕출만큼 성실했던 드가는 루브르에 있는 거장의 작품을 거의 다 모사할 정도로 수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결과처럼 드러나는 소녀들이 입은 순백색 발레 스커트의 묘사는 특히 섬세하다. 스커트를 이루는 얇은 모슬린 천의 겹겹이 나풀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벽 전체에 칠해진 에메랄드 녹색은 소녀들의 하얀 스커트, 분홍빛 토슈즈와 어우러져 화사한 분위기를 만든다.
‘14살의 어린 무용수’(1879~1881, 1922 제작)는 이렇게 발레를 하는 소녀를 표현한 조각이다. 드가는 1860년대부터 대상의 형태와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조각을 시작했다. 1881년 제6회 인상주의 전시에서 발표한 이 작품은 그의 조각 중 유일하게 전시에서 선보인 것이다. 이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논란이 되었다. 작품의 모델이 마리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드가의 작업실 근처에 살던 마리는 발레리나로 활동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매춘부로 살게 되었다. 무용수들이 후원자에게 몸을 팔다 결국 직업을 바꾸는 일은 당시에 비일비재했다. 흔했지만 무대의 뒤에서만 은밀하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마리를 모델로 삼고 이를 무대 앞으로 내세운 드가가 비도덕적이라며 비난했다.
그렇지만 비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을 향한 찬사도 쏟아졌다. 조각은 해부학에 기반한 듯 실제 인물 같은 얼굴 형상과 인체 묘사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14살 소녀를 대상으로 삼아 여성의 이상적인 고전미를 강조하던 조각 경향을 깼다. 더불어 천으로 만든 스커트를 입혀 현실과의 연결을 강화했다. 결국, 이 작품은 아카데믹한 전통 기술로 제작하는 동시에 거기서 지속하던 미에 관한 관습을 깨고 재료의 혼합 등을 통한 실험으로 혁신적 조각이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만큼 중요한 모던 조각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 작품을 향한 찬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매춘부라는 주제를 사회 문화적 담론을 통해 드러낸 것 역시 주목할 점이다.
김한들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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