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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로에 끊어진 ‘월대의 꿈’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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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5 11:00:00 수정 : 2021-06-06 11: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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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재구조화’로 본 도심 유적의 과제

임금과 백성이 만나는 장소였던 월대
원래는 약 52m… 지금은 10m만 복원
차로에 막혀 광장과 연결도 결국 포기
육조거리는 유구 일부 노출시켜 전시

역사성만으로 기반 시설의 제동 어려워
보존 전제한 활용 방안 고민 깊어져야
“담장 둘러 보존하려 하면 활성화 안돼
도심 계획의 한 요소로 적극 반영해야”
광화문 월대의 본래 모습

“복원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아닐까요. 지금 아니면 앞으로도 못 할 겁니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내용 중 하나인 경복궁의 광화문 월대를 두고 한 문화재 전문가가 한 말이다. 광화문 앞에 놓인 출입시설이자 임금과 백성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던 월대는 1920년대 광화문 앞에 전차선로가 생기면서 훼손된 걸로 추정된다. 경복궁의 위상이 워낙 큰지라 월대를 복원해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높았다. 서울시는 재구조화 사업을 통해 광화문 앞의 차로인 사직로를 보행로로 만들어 월대를 광장과 직접 연결하려 했다. 하지만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사직로는 선형만 바꾼 차로로 계속 두기로 했다. 월대와 광장의 직접 연결을 포기한 것이지만 이 전문가는 그마저도 다행이라고 한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광화문광장을 새로 꾸미는 사업이 본격화하고, 시민 의견 수렴이 한창이던 2019년 12월. 토론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돌직구를 날렸다.

“교통을 우회하면서까지 월대가 꼭 광장 안에 있어야 하나요?”

지금 우리가 큰 불편을 감수하면서 오래된 과거의 흔적일 뿐(?)인 월대를 되살려 놓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은 근본적인 만큼 묵직하다.

지난 1일 광화문광장 문화재 발굴조사 지역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우기를 대비해 안전조치(복토)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심 내 유적들은 그것이 가진 역사적 가치만큼의 대접을 못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끔은 너무 옹색하다 싶을 정도인 유적들의 처지가 어째서 이러한가. 답은 간단하다.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보호, 계승을 위한 조치가 대체로 도심 기능을 일정하게 제한하기 마련이라 보존, 복원, 활용 어느 하나 쉽지 않다. 문화유산은 보호, 계승의 대상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삶의 편리를 해치고, 현실의 이익을 침범하는 순간 절충점을 찾기 힘든 갈등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의 광화문광장을 역사성을 강조한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겠다고 시작한 재구조화 사업은 태생부터 이런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광화문광장만의 문제이겠는가. 전국의 도심 유적 대부분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유적의 존재가 우리의 삶을 고양할 수 있는 역사문화자원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래 계획과 달라진 월대 복원, ‘후퇴’인가


지난 4월 오세훈 시장이 재구조화 사업을 지속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말도, 탈도 많았던 광화문광장의 새모습 찾기는 다시 탄력을 받았다. 서울시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이어졌던 육조거리(조선시대 6개 중앙관청이 있었던 큰길)의 모습을 되살려 역사성을 높이겠다고 한다. 2019년 시작된 광화문광장 발굴 조사 결과 대상지(1만100㎡) 중 약 40%(4000㎡)에서 조선시대 유구(과거 건축물의 구조, 양식을 보여주는 흔적)이 나왔다. 이를 통해 군사업무를 총괄했던 삼군부의 위치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 등의 담장, 우물터, 수로 등을 확인했다. 서울시는 이 중 사헌부, 병조의 우물터 유구 일부를 노출시켜 전시물로 활용할 계획이다. 나머지는 보존을 위해 다시 흙으로 덮고, 그 위에는 유구의 형태를 반영한 구조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구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2023년 마무리를 목표로 한 월대 복원이다. 지금은 약 10m만 복원되어 있지만 원래는 약 52m였다. 광화문 앞에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사직로의 선형을 U자형으로 바꾸어 전체 복원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구상은 원래의 계획과는 다르다. 서울시가 2018년 작성한 ‘광화문광장 개선 기본종합계획’을 보면 사직로를 보행로로 만들어 월대와 광장을 직접 연결하려 했다. “월대 회복을 계기로 차도로 단절된 경복궁과 도시중심을 연결하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는 포부였다.

문제는 사직로를 대체할 차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서울시는 인근의 정부서울청사를 우회하는 도로를 조성하려 했다. 하지만 교통 체증이 심해질 수 있고 청사 내 경비대, 안내실, 어린이집 등 부속건물을 철거해야 해 청사 기능에 지장이 생긴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서울시와 청사 관리를 책임지는 행정안전부의 갈등이 불거졌고, 인근 주민들의 반발까지 더해졌다. 오랜 논란 끝에 나온 절충안이 사직로의 선형 변경이다.

월대를 복원하기는 하지만 사직로로 인해 광장과 단절되는 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후퇴’라고 비판할 이도 있겠으나 월대의 온전한 복원을 경복궁 제모습 찾기의 선결과제로 주장하는 한 전문가의 평가는 이렇다.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이제원 기자

“도로는 시민들에게 중요한 기반시설인데, 월대의 역사성만 강조하며 막으려 들면 납득을 하겠습니까.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없는 게 나았다, 훼손 대상 된 도심 유적

이런 평가는 도심 유적이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파괴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머지않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공익을 목적으로 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경제적 이익을 노리는 개발사업은 종종 유적의 생존을 위협했다. 유구가 확인되면 개발사업에 제동이 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유구를 훼손해버리거나, 유구의 존재는 무시하고 건물을 올려버리기도 했다. “(조선시대 정치, 행정, 경제의 중심지였던) 종로 일대에 자리 잡은 건물 대부분이 유구를 깔고 있다고 봐도 된다”고 말할 정도다.

심각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유적 보호를 위한 법률, 제도가 정비되었다. 특히 도심에서는 지켜보는 눈이 많다 보니 지금은 이런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인식도 많이 개선돼 관련 기관과 개발업자가 협력해 유적을 보호하고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게 서울 공평동도시유적전시관이다. 2018년 9월 문을 연 이곳은 서울시가 건물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개발업자는 지하 공간 3817㎡에 16∼17세기 건물터, 골목길 등의 유구를 보존함으로써 탄생한 서울 최대 규모의 유적전시관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위해 발굴조사가 진행된 현장에서 장마철에 대비해 안전조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일부였던 이곳에서 발굴을 통해 삼군부, 병조, 사헌부 등의 흔적이 확인됐다. 연합뉴스

◆“도심 유적 활용 ‘생색내기’ 수준 아닌가”

2005년 5∼11월 진행된 경기도 안산 신길동 택지개발지구 발굴조사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 유구가 확인됐다. 이후 이곳은 흙으로 덮어 유구를 보존하는 한편 그 위에 신석기시대 움막, 사냥 모습, 출토품 등을 재현한 조형물이 설치된 선사유적공원으로 조성됐다. “재현된 조형물이 썩 훌륭하지는 않지만” 이곳은 주민들이 적극 참여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지역 유적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 지역 자원에 대한 비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사례로 평가된다.

도심 유적의 ‘보존’을 넘어서 이제는 신길동의 사례처럼 ‘활용’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보존에만 급급한 태도에서 벗어나 문화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도심 유적의 활용은 보존 처리된 유구의 일부를 노출시키는 게 대부분이다. 유리벽을 만들어 유구를 외부 영향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안내판을 설치하는 형식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이다. 발굴 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런 방식이 “유적에 대한 최소한의 보존, 활용 조치는 했다는 문화재 당국, 관계자의 변명 혹은 생색내기 정도”이라고 꼬집었다.

서울 공평동도시유적전시관은 개발업자와 지방자치단체가 협조해 도심 내 유적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활용하는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흔히 보는 또 다른 방식은 유구가 확인된 장소에 잔디를 깔고, 안내판을 두는 것이다. 문화재 보존을 명분으로 빈 공간으로 두는 것이어서 활용이라고 할 것도 없다.

공공재인 유적의 적극적 활용은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하지만 예산, 인력은 태부족이다. 문화재청은 유구가 나와 개발이 제한된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책정한 25억원가량의 예산 중 6억원 정도를 떼어내 활용 정책에 사용하고 있다. 보존만도 벅찬 지자체에 활용까지 주문하는 건 사실 난센스에 가깝다. 일례로 경남 진주의 평거3지구 내 유적공원은 “진주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관리권을 다투고 있어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LH토지주택박물관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특화도시 조성방안 연구’ 보고서)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따라 도심 유적을 도시계획의 한 요소로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전통문화대 김영재 교수는 “유적에 시민들이 쉽게 다가가고, 그것을 통해 자기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제고하는 게 게 중요하다”며 “담장을 둘러 보존하려고만 들어서는 유적을 문화자원으로 활성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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