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사 대표 증거인멸 의혹도
사고 다음날 몰래 자료 챙긴 정황
경찰, 원청업체 등 관계자 7명 입건
‘계약은 한솔, 공사는 백솔.’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구의 철거 건물 붕괴 뒤에는 건설업계의 뿌리 깊은 다단계 하도급이 있었다. 11일 광주경찰청과 동구 등에 따르면 학동 재개발정비 4구역 조합은 2018년 9월 현대산업개발과 아파트 건설 시공계약을 맺었다. 현대산업개발은 2020년 9월 철거와 정비를 서울 소재 업체인 한솔기업 등 3곳과 계약했다. 한솔기업은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 면허(2008년)와 석면해체 제업자면허(2012년)를 취득한 철거업체다.
한솔기업은 지난달 광주 동구청에 10개 건물 철거 허가를 받고 건물 해체와 정비 작업을 했다. 하지만 철거 건물이 붕괴되면서 한솔기업이 직접 공사를 하지 않고 광주지역 업체에 하도급을 준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이날 학동 붕괴 참사 관련 브리핑을 갖고 철거업체 2곳 관계자 3명과 감리회사 대표 1명 등 4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출국금지했다고 밝혔다. 곧이어 현대산업개발 현장 관계자 3명을 추가 입건했다.
경찰이 입건한 철거업체는 한솔기업과 백솔이었다. 백솔은 광주에 소재한 중장비 업체다. 이번 철거 중 붕괴된 건물을 포함해 10개 건축물을 해체하는 작업을 도맡은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붕괴 직전 현장에서 작업했던 굴착기 기사 등 인부 4명은 모두 백솔 소속으로 확인됐다. 현대산업개발과 철거·정비 계약을 맺은 한솔기업이 다시 백솔에 하청을 준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현행법은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시공사 현장사무소, 철거업체 서울본사 등 5개소를 압수수색해 자료를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사고 직후 한솔기업이 재하도급을 준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현대산업개발 권순호 대표이사는 지난 10일 기자 브리핑에서 “한솔기업 이외 업체에 하도급을 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재하도급의 문제점은 시공 능력이 떨어져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건물 철거를 맡은 백솔의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액은 4억원에 불과하다. 건설 관련 자격증이 있는 직원은 2명에 불과하다.
경찰은 또 감리계약회사 대표를 소환조사해 철거현장 감독을 제대로 했는지, 해체계획서 허가·이행 등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감리회사 대표는 붕괴 사고 발생 다음 날 새벽 사무실에 들러 감리일지, 해체계획서 등과 관련한 자료를 챙겨간 듯한 정황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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