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영국의 작가 조지프 콘래드는 매일 아침 아내에게 서재를 잠가 달라고 부탁했다. 서재에 틀어박혀 나올 수 없어야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콘래드가 밖으로 나오자 아내가 오전에 무슨 작업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쉼표를 하나 뺐소”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문을 잠갔다. 몇 시간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콘래드가 서재를 나오자 아내가 오후에는 무슨 작업을 했는지 물었다. 콘래드는 “오전에 뺐던 쉼표를 다시 집어넣었소”라고 대답했다. 콘래드는 하루 종일 쉼표 하나 넣을지 뺄지를 가지고 고민했다. 그 쉼표는 과연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을까?

소설가 귄터 그라스는 글쓰기가 조각과 닮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조각은 글쓰기와 유사하게 작품을 만들 때 균형을 중시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각작품을 만들 때는 어느 한 곳을 바꾼다면 균형에 맞춰 다른 곳도 바꿔주어야 한다. 다비드와 같은 인체상을 조각해 만들어보자. 우선 질료인 큰 대리석의 모든 면을 깎아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야 한다. 한 곳을 깎으면 다른 부분도 비율에 맞춰 그만큼 깎아줘야 한다. 조각작품은 비례와 균형의 규칙 속에 전체가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사소한 부분이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콘래드의 쉼표도 단순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사소한 것이지만 작품 전체에서 영향을 준다면 하루 종일 고민해도 시간이 부족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라스가 강조한 점은 다른 데 있다. 조각이나 글쓰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대리석의 한쪽 면을 살짝 바꾸었는데, 갑자기 훌륭한 조각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떤 때는 비율이 맞지 않는데도 작품은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다. 글쓰기도 이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약간 바꾸었는데 갑자기 모든 문장이 잘 풀리기 시작한다. 반면 아무리 잘못된 부분을 고쳐도 전체가 살아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글쓰기가 힘들고 고된 작업이라는 것을 이럴 때 깨닫게 된다. 글이 풀리지 않을 때 해결책이란 고치고 또 고치면서 글을 다듬어 가는 것뿐이다. 아니면 자신이 잘 아는 분야로 아예 주제를 바꿔주어야 한다. 그래도 안 된다면 글쓰기의 신(神)에 자신을 맡기고 그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손예진 '상큼 발랄'
  • 손예진 '상큼 발랄'
  • 이채연 '깜찍하게'
  • 나띠 ‘청순&섹시’
  • 김하늘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