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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싫었지만 내가 할 일”… 이젠 유니폼이 방호복 [코로나 최일선의 ‘사투’]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 세계뉴스룸

입력 : 2021-08-19 06:00:00 수정 : 2021-08-19 07: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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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명받지 못한 헌신
‘무명의 방호복 천사’ 보건의료 노동자

정년퇴직 1년밖에 안 남았지만
일반 병동 마다하고 묵묵히 업무

하루 최소 4~5번 방호복 환복
원무·행정 직원까지 방역 동참

확진자 곁 이유로 가족들도 경계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겨낼 것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청소노동자 안보옥(68)씨가 전신 방호복을 입은 채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얼마 안 있으면 퇴직하는데, 그냥 여기서 퇴직하겠다는 마음으로 남았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청소노동자인 김선자(가명·66)씨는 지난해 9월 그가 맡고 있던 병동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증환자 병동으로 지정되면서 자연스레 ‘코로나 병동 인력’이 됐다. 병원에선 정년퇴직이 1년밖에 남지 않은 김씨에게 다른 일반 병동으로 옮기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 병동 청소도 ‘내가 할 일’이라며 그곳에서 은퇴하기로 했다.

 

15년차 병원 청소노동자인 그에게도 코로나 병동 근무는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병실 소독작업도 해야 했기에 노동강도는 전보다 배 이상 높아졌다. 일반 병동에선 병실당 10분 내외면 끝낼 수 있었던 작업이 코로나 병동에선 20분 이상 걸렸다. 퇴원 또는 사망 환자가 있는 병실은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김씨는 “레벨D를 입고 3시간 일하다 보면 온몸이 완전히 물이 된다”고 말했다.

 

공공의료기관 청소노동자 권정희(가명)씨도 지난해 갑자기 코로나 병동을 맡게 됐다. 사태 초기 코로나 병동 앞에 설 때면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이젠 코로나19 환자들을 돕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병동에 들어선다.

 

그는 “처음엔 진짜 무서웠고, (방호복을 입으면) 땀 흘리고 숨도 쉴 수 없어서 힘들었다. 솔직히 들어가기 싫었다”면서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미룰 수는 없어 계속 들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 1명이 무사히 일상으로 되돌아가기까지 의료진 외에도 수많은 현장 인력들의 땀과 헌신이 수반된다. 코로나19 병동 청소노동자, 보건소 직원, 구급대원, 이송기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보안팀, 행정 직원 등.

 

확진자 치료 및 추가 감염 차단을 지원한다는 사명감으로 사선을 오가지만, 그들의 땀과 노력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사회적 낙인’마저 묵묵히 견뎌내야 했다.

 

지난 17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이송기사 김진만(55·오른쪽)씨가 병동으로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에서 내리고 있는 코로나19 환자를 기다리고 있다. 남정탁 기자

◆시신 처리 업무에 ‘하루 10번’ 방호복 환복도

 

병원에 입원하는 코로나19 환자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이대목동병원 이송기사 오원국(53)씨에게 방호복은 이제 유니폼이나 마찬가지다. 병원으로 온 확진자를 코로나 병동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업무를 맡은 그는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확진자 입원 예정’이란 공지를 받으면 마음을 다잡고 방호복으로 갈아입는다.

 

오씨는 “방호복을 하루에 최소 4∼5번씩 입었다 벗는다. 많이 할 때는 환복을 최대 10번도 한다”면서 “너무너무 덥다. 방호복에 고글까지 끼는데, 고글을 끼면 습기가 가득 차서 초반엔 아예 앞이 안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30년간 병원에 실려 오는 다양한 모습의 환자들을 마주했던 그이지만,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아넣은 미지의 감염병 확진자들을 맞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씨는 “확진자가 오면 음압 텐트를 여는데, 그 순간 열기가 확 끼친다. 그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공포감이 함께 밀려왔다”며 “올해 3월 백신을 맞기 전까지는 매일매일 두려움 속에 살았다”고 털어놨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해 현장에선 본래 업무 외에 코로나19 관련 업무까지 맡는 이들도 많다. 경기도의료원 산하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 6곳은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원무과, 행정과 등 전 직원이 코로나 병동 방역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관계자는 “의료진은 코로나19 환자 진료업무를 보느라 못 들어가고, 그 외 인력들은 다 같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소 직원들은 자택에서 사망한 코로나19 환자의 시신처리를 하기도 했다. A보건소 감염병관리팀장은 “지난해 8월 2차 유행 때만 해도 장례지도하는 분들이 (사망 현장에) 오시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직원들이) 레벨D 보호복을 입고 관 등을 가져가서 의사인 보건소장님이 염을 직접하고 절차대로 관에 모셨다”고 전했다.

 

◆환자 곁에 섰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된 이들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 발생 이후 ‘1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이들이 견뎌내야 했던 건 감염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었다. 확진자 곁에 있다는 이유로 쏟아진 주변의 따가운 시선, 가족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감내해야 했다.

 

오씨는 “확진자를 이송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희는 항상 기피 대상이 됐다”며 “집에 가서도 가족과 마주칠 때마다 두려웠다. 조금이라도 기침이 나거나 열감이 있으면 가족과 최대한 떨어져 있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코로나 병동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도 기피 대상이 됐다. 김씨는 “병동 밖에 나가면 (동료들이) 제가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고 있는 걸 알다 보니까 접촉하는 걸 싫어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자기 보호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며 동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의 입가에 씁쓸함이 남아 있었다.

 

대학병원 코로나 병동 청소노동자 이선영(가명·61)씨는 “백신을 맞긴 했지만, 코로나 병동에서 근무하는 저 때문에 코로나19가 전파됐다는 이야기를 듣긴 싫어서 시어머니나 가족들도 항상 경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늘어난 업무량에 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씨는 “평소엔 일반 환자 이송을 담당하고 있다가, 코로나 확진자가 오면 추가로 그 업무를 하게 되는 것이어서 사실 업무량이 많이 늘었다”면서 “지난해 휴가도 25일 중 4일밖에 못 쉬었다. 지금도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라 푹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은 오늘도 서로를 격려하며 묵묵히 일터로 향한다. 오씨는 “확진자 1명을 무사히 되돌려 보내기 위해 병원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 영상의학과, 소독하시는 미화원분들, 보안팀 등. 이분들을 정말 위로해 드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강진, 이정한, 이지안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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