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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질서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 구소련 붕괴와 이란 혁명 등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대표적인 정보 실패 탓이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는 충분한 징후 정보를 갖고도 대비하지 못해 재앙을 불렀다. 오늘날 이런 정보 실패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테러와 간첩 활동이 더욱 교묘해진 탓이다. 첩보의 홍수 속에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 또한 인간 능력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도 이런 첩보전의 실패 사례로 꼽힌다. 그럴 것이 모사드(Mossad), 신베트(Shin Bet), 아만(Aman) 등 내로라하는 정보기관을 보유하고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탓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출입문을 틀어막고 있는 상황에서 그 안에 있던 하마스가 어떻게 무기들을 준비하고, 미로처럼 연결된 지하통로를 구축했는지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을까. 전 세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스라엘이 시긴트(SIGINT·신호정보)로 하마스의 공격 동향을 도·감청하고도 이것이 과연 결정적인 단서인지를 판단하지 못해 빚어진 참사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가자지구 정보를 다루는 신베트의 ‘휴민트’(HUMINT·인간정보) 체계가 붕괴된 탓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쯤 되면 내부 첩자가 없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구멍 난 정보망을 두고서도 내부 잡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금껏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배경일 수 있다.

 

우린 어떤가. 최근 국군정보사령부 장군들 집안싸움에 군은 물론 국민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소속 군무원의 해외 ‘블랙요원’ 명단 유출에 더해 정보사가 추진하는 극비 공작명과 비밀 사무실(안가) 운영 내용 등까지 세간에 유포됐다. 이렇듯 난장판이 된 정보사를 두고 군 안팎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어제 국회에서 “정보 업무에 공백이 없고, (조직이) 대부분 정상화됐다”고 한들 곧이들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지휘부 교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또 누구를 보호하려다간 ‘제2의 채상병 파문’으로 비화되지 말란 법이 없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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