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6월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독일은 내친김에 영국 본토 공격까지 획책했다. 섬나라 영국에 독일군을 상륙시키는 일명 ‘바다사자’ 작전계획이 수립됐다. 문제는 상륙작전이 성공하려면 독일군이 영국 상공의 제공권을 쥐고 섬 남부 해안가에 진을 친 영국군부터 격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독일 공군은 여러 차례 영국 공습에 나섰으나 제공권 확보에 끝내 실패했다. 그러자 독일군 지휘부는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게 “이대로 상륙을 강행한다면 우리 병사들을 적의 고기 분쇄기에 밀어넣는 것일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바다사자 작전은 무기한 연기됐다. 히틀러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면 2차 세계대전이 좀 더 빨리 끝났을지 모른다.
군대에서 고기 분쇄기 전술은 인해전술과 비슷한 의미로 통용된다. 6·25전쟁 당시 북한을 도와 참전한 중공군이 쓴 바로 그 전술이다. 사상자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든 개의치 않고 무리한 공격을 계속하는 것이 특징이다. 분쇄기에 들어간 고깃덩어리가 투입과 거의 동시에 잘게 잘려져 나오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참으로 끔찍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러시아군 장병 약 19만8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 전사자 수는 4만3000∼7만명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차이가 큰 것은 러시아군이 고기 분쇄기 전술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서방 국가들의 분석이다. 자국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독재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러시아군의 일부로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의 인명 손실에 관한 소식이 외신을 타고 속속 전해진다. 우리 국가정보원도 어제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최소 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부상자는 1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군이 전선 돌격대 역할로 소모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러시아군을 위한 총알받이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북한 병사들은 특히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무인기) 공격에 취약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이역만리에서 무의미하게 스러져가는 북한 젊은이들의 모습에 참담함을 금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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