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여념없는 사이 전세 역전
10년 넘게 쌓은 외교·전략적 투자
순식간에 무너지며 시리아서 철수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내 정국이 혼미한 가운데 국제정세도 어지럽게 돌아가기는 마찬가지다. 전쟁의 포연이 자욱한 중동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24년간 철권 통치를 휘둘러 오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 8일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하는 반군의 파상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다마스쿠스의 대통령궁을 황급히 탈출했다. 이로써 13년간 계속되어 온 참혹한 시리아 내전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아랍의 봄’ 여파로 시리아에서 알아사드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는 시위가 시작된 것은 2011년 3월쯤이다. 평화적 시위에 대한 알아사드의 강경 진압으로 유혈사태가 발생하게 되자 시리아 곳곳에서 반군이 등장했다. 2014년에는 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까지 시리아 내전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해 9월쯤에는 미군 주도로 국제동맹군이 결성되어 시리아 내 IS 세력에 대한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2015년 9월 시리아의 오랜 맹방 러시아도 IS 등 테러조직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반군 거점 지역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가함으로써 시리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개입으로 반군의 기세는 꺾였고 알아사드 정권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2017년 5월 이란 및 튀르키예와 함께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 휴전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푸틴의 러시아는 여세를 몰아 2017년 1월 시리아 정부와의 협정을 통해 향후 49년간 타르투스 해군기지와 흐메이밈 공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지중해에 면해 있는 타르투스항은 러시아가 열망하는 천혜의 부동항으로서 해외로의 군사력 투사를 위한 요충지 중의 요충지이다. 타르투스 항구와 흐메이밈 공항은 지중해 및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러시아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이곳은 러시아의 글로벌 강대국 도약에 반드시 필요한 지정학적 급소에 해당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권의 보위에 공을 들였다. 지난 10여년에 걸친 내전의 와중에서도 알아사드 정권이 생존하는 데에는 러시아의 적극적인 군사 개입과 무기 지원,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 큰 몫을 차지했다. 물론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통한 이란의 군사적 지원도 시리아 반군을 약화시키고 알아사드 정권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달 초 알아사드가 반군에 의해 축출됨으로써 그동안 이곳에서 러시아가 쌓아올린 공든탑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푸틴에게는 뼈아픈 결과이다. 이는 3년 가까이 끌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는 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사이 HTS가 세력을 확장해 알아사드 정부를 정조준할 때까지 러시아는 시리아 문제에서 사실상 발을 빼고 있었다.
시리아 반군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지난 11월 하순에 러시아는 반군 기지를 공습했다. 그러나 때늦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이 반군의 기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란 역시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여력이 없다. 그 사이에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아온 HTS가 주도한 반군 세력은 파죽지세로 시리아를 평정했다. 이에 러시아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략적 자산인 타르투스 기지와 흐메이밈 기지에서 철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릇 영향력, 경제적 부, 신용과 명성, 외교적·전략적 자산 등 유형·무형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쌓아올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확한 역사 인식,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균형 잡힌 판단력 등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빚어진 정치적 대혼란과 시리아 사태 등 국제 정세의 격변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되는 평범한 진리이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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