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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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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20 22:29:00 수정 : 2021-08-20 22: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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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져 가는 팬데믹의 시간
친척·지인 얼굴 본 지도 오래
꾹꾹 눌러 쓴 안부편지 들고
동네 우체통 찾아나서 보길

오랜만에 지인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을 찾아 나섰다. 동네 시장 입구 건널목 한쪽에 수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빨간 우체통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운 곳으로 옮겼나 싶어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만 그런 것일까. 우체통이 있던 자리엔 붉은색 소화기가 놓였고 우체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것 참. 편지를 어떻게 부치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카톡으로 전할 수 없는 안부들. 그런 것이 있지 않나. 나는 최근에 큰 슬픔을 겪은 지인에게 쓴 편지를 들고는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매미와 귀뚜라미가 동시에 우는 밤에 결국 우체국 앞, 우체통에 편지를 툭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손으로 쓴 편지로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는 게 얼마 만인가. 한때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작은 일에 속했을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묻는 일.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이 서로의 관계를 쌓아오기도 했을 터인데.

조경란 소설가

편안함과 편안하지 않은지에 대한 소식, 안부. 슬리퍼를 끌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길에 안부, 안부라고 몇 번인가 중얼거려보았다. 안부를 묻다, 안부를 전하다, 안부 전화를 걸다. 그러고 보니 안부라는 단어가 그리운 친구의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때 가까웠으나 지금은 멀어진 사람들도 어쩌면 제때 안부를 묻거나 전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짐작도.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안부.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반가운 책 한 권을 읽었다. 강영숙, 권여선, 조해진, 박서련 같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덟 명의 작가들이 ‘안부’라는 주제로 신작 소설집을 펴냈다. 조해진의 단편 ‘혜영의 안부 인사’는 한때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지금은 실업 상태가 된 혜영이 같은 과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잃어버린 꿈을, 살아간다는 일의 의미를 알아가는 하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영숙의 ‘남산식물원’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공간과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에 관하여, 권여선의 ‘기억의 왈츠’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과거의 어떤 찰나, 그 순간을 아프고 뜨겁게 반추한다. 박서련의 단편 ‘A Queen Sized Hole’은 이 고된 시기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그래도 희망은 있다, 라고 믿고 싶게 만드는 진솔한 이야기.

책머리에 작가들은 이렇게 썼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팬데믹의 시간, 막막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과정’을 함께 지나가는 것이며 빨리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여덟 편의 안부 인사’. 이 여덟 편의 소설들이 전하는 안부를 독자로서 나는 다정히 받고, 이제 누구에게 이 안부를 전하면 좋을지 생각한다. 코로나 상황이 더욱 엄중해지면서 약속들은 취소되거나 가을로 미뤄졌고 8월에는 가족 외에 아무도 만난 사람이 없다. 이 상황이 얼마나 더 길어질 것인가. 잘 지내고 있으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혹은 핑계로 안부를 묻지 않았던 이름들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안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서로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귀뚜라미 울음 사이로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매미 소리도 여전하다. 이틀 후가 처서이고 한 달 후 이맘때면 추석이다.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여름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여름을 가까운 이들, 한때 가까웠던 이들에게 안부를 묻는 일로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겠지. 이 작은 일이 결코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하더라도. 유희경 시인의 시 ‘작은 일들’의 마지막 연을 다시 읽는다. “어떤 작정이 없다면 사람은 금방 슬퍼지고 만다/ 고작 덥네 더워 여름이네 여름/ 하면서 그렇게 부끄러운 일만/ 잔뜩 떠올리면서.”

안부를 묻고 싶은 이름을 적고 책상 서랍에서 엽서 몇 장을 꺼낸다. 이 작은 일들을 하면서 남은 8월을 보내겠다는 작정을 하면서. 꾹꾹 눌러쓴 엽서를 들고 이참에 동네 우체통들을 찾아봐야겠다. 어떤 지도가 생기지 않을까. 그 과정의 이야기가 언젠가 단편소설로, 어느 독자에겐가 안부 인사가 되길 바라면서.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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