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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가에서 새로운 형식의 독서가 유행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분도 있겠지만 바로 오디오북 형식의 독서이다. 옛날에는 유명작가의 소설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태블릿을 들고 무선이어폰을 끼고 독서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소리를 듣는 것이 오디오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나 연극에서도 낭독회나 낭독극이 유행한다. 이전까지 눈으로 책을 읽거나 배우의 연기를 보았다면 이제 귀로 들으면서 독서와 연극을 경험한다.

낭독회나 낭독극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독서는 혼자 읽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낭독은 함께 호흡하면서 함께 느끼는 감정의 공유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마치 옛날 이야기꾼이 문장에 가락을 넣어 읽어주면 모두가 숨죽여 그 소리에 혼연일체가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글에서는 낭독을 “파편화된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낭독은 산업화, 현대화 속에 옛 모습을 잃은 우리들에게 다시 근대 이전의 삶을 되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낭독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독서의 기본적인 형식이었다. 한두 사람이나 여러 사람 앞에 소리 내어 읽는 것은 가장 오래된 독서 방식이자 전형적인 소통 방식이었다. 왕이나 귀족이 소리를 내어 말하면 필경사는 이를 받아 적었고, 나중에 소리를 내어 이를 복원했다. 작가가 구술하면 필경사는 소리를 문자에 담았고, 그것을 낭독해야 비로소 작품이 되었다. 문자는 소리를 담는 기호에 불과했고 문서는 소리를 모아둔 창고에 해당했다. 독서에서 시각이 중심이 된 것은 출판이 본격화된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다.

사람의 인지 활동에 청각이 중심이란 것은 최근 심리학 연구를 통해 많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속으로 소리를 낸다. 시각으로 글을 읽지만 뇌 속에서 청각으로 전환된다. 글의 내용을 이해하거나 기억하기 위해서는 청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단어를 암기할 때마다 매번 소리를 내는 것도 이런 인지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낭독의 진정한 이점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영혼의 울림, 타인과의 공감, 공동체적 일체감일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오래전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했던 말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문자는 문자에 불과하고, 소리가 되어 나오는 것만이 정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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