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여아를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학대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면서 사형 제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 전자발찌 훼손하고 연쇄살인한 강윤성, 노원 세모녀 살해범 김태현 등 반인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을 부활하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남의 생명을 빼앗은만큼 이들 범죄자 역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사형 폐지국인 우리나라에서 사형 집행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준표·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이번 대전 성폭행·살인범에 대한 법정 최고형 선고 및 집행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실제 국민 여론에 따른 형 집행은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의견이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김영삼정부 때인 1997년 12월30일이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한 번에 무더기로 사형수 23명의 형을 집행한 이후 2021년 9월까지 한 번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이 이미 국제사회 기준으로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됐다는 의미다.
한국 형법 250조에 따르면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그렇지만 살인죄를 저질렀어도 사형 선고를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8일 사법부 양형위원회의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살인사건 선고 건수 916건 중 사형선고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중학생 딸의 친구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2018년 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서 방화 및 흉기난동을 벌여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이 2019년 11월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두 명 모두 항소심에서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돼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최근 20년간 살인사건의 선고 건수 가운데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은 50건이었다. 2002년 부산에서 20대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하고 15년 만에 검거된 양모씨,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한 김성수, 2019년 모텔 투숙객을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한강에 유기한 장대호, 2019년 제주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 등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나주 여고생 성폭행 살인사건’ 김모씨의 경우엔 사형 판결을 면하기도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는 60명이 넘고 있다. 반면 그 사이 미국 등 인권 선진국들은 사형제를 다시 부활시켰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인 지난해 7월 17년간 중단됐던 연방 사형 집행을 부활시켰다. 일본 역시 최근 사형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은 영아 성폭행 및 살인 등의 혐의로 범죄 행위가 엽기적이고 잔혹한만큼 법정 최고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사형 집행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견이다. 임성문 대전지방변호사회장은 “국가의 힘으로 사람의 생명을 뺏는 게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깊은 성찰과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사형으로 범죄의 재발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효용성 문제와 함께 오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형사법적인 고민 끝에 수십년 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사건이 얼마나 불량한지, 인간의 생명을 가볍게 여겼는지, 반성 여부 등에 따라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을 순 있다”면서도 “형 집행을 함으로써 인권후진국으로 가게 되고, 그에 따른 국제사회 비판을 감당키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법무부가 유엔총회에서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일시적 유예)’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도 사형제 부활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다만 사회 경각심을 일깨우는 측면에서 사형을 선별적이고 부정기적으로 집행해야 할 필요성은 제기되기도 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사형 집행은 여론 재판처럼 가선 안되지만 사형을 선별적이고 부정기적으로 집행할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전자발찌 훼손·연쇄살인 강윤성처럼 재범 횟수가 많고,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 마이크를 발로 걷어차는 행태를 보면 전혀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국민과 사회를 능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민의 법 감정에 부응해 성폭행·살인범에 대해 사형 선고까진 가능하지만 집행까진 국제적 여론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얘기인 셈이다. 오 교수는 “사형 집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행태로 사법 제도에 의해 국민들이 능멸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한다면 사형을 선별적으로 집행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논의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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