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수제(컬래버레이션) 맥주가 뜬 이유 [명욱의 술 트렌드]

입력 : 2021-09-24 10:01:25 수정 : 2021-09-24 16:29:3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맥주들. 최근에는 말표 막걸리까지 나왔다.
출처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박인희

최근 와인만큼 주목받은 술이 있다면 아마 수제 맥주라고 불리는 ‘컬래버레이션 맥주’일 것이다. 컬래버레이션 맥주라고 하는 이유는 주로 대기업과 중소 맥주 양조장의 협업 작품이기 때문. 또 수제라고 하기에는 이미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제품이기에 ‘수제’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곰표 맥주, 말표 맥주, 유동 골뱅이 맥주, 백양 맥주, 금성 맥주, 최근에 등장한 캬~ 맥주 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품이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늘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전에는 이런 제품이 없었을까?

 

◆주세법의 변화, 수제 맥주 가격을 내리다

 

일단 지난해부터 수제 맥주의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금체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맥주 세금체계는 종가세. 가격에 세금이 붙는 구조였다. 이러한 종가세는 원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또 R&D 비용이 많이 들면 들수록 세금도 더 많이 내는 구조였다. 모두 원가에 반영되니 세금이 올라가고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소품종 대량생산에 유리한 대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세법이다.

 

이러한 종가세가 종량세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술의 용량에 따라서 세금이 붙는 구조. 좋은 원료를 사용하거나 디자인 등에 비용을 들이더라도 세금이 추가로 붙는 것은 없어졌다. 즉 대량생산하는 대기업보다는 제품에 하나하나의 가치를 담은 수제 맥주들에게 이러한 종량세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이것으로 비싼 맥주 영역에 있던 수제 맥주들이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는 4000원 이상이던 맥주가 3000원 전후로 팔기 시작했다.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수입 맥주 위주로 진행됐던 4캔에 1만원 행사에 수제 맥주도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 맥주가 비워놓은 냉장고 매대를 채운 컬래버레이션 맥주

 

컬래버레이션 맥주 입장에서 운이 좋았던 것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일본 불매 운동이 일어난 것. 일본 불매 운동은 일본 맥주에도 이어졌다. 이전까지 수입 맥주 1위는 아사히였으며, 기린 맥주도 4~5위를 유지했다. 이들 맥주 광고에는 국내 연예인들이 모델로 등장, TV 등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일본 맥주는 전체 수입 맥주의 30%를 차지했었고, 편의점에서의 위상은 더욱 대단했다. 하지만 일본 불매 운동으로 일본 맥주가 빠지면서 냉장고 맥주 매대에는 다른 맥주가 자리를 차지했다. 바로 컬래버레이션 맥주다. 그러면서 드디어 이들은 4캔에 1만원 행사에 동참한다.

 

◆수제 추구하는 작은 양조장 시장의 몰락

 

하지만 정말로 수제를 추구하는 작은 맥주 양조장은 자사 제품을 넣지 못했다. 전국의 편의점에 넣기 위해서는 수억,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고, 또 냉장고 매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높이와 넓이의 제품이 필요 충분 조건이었다. 결국 이것을 할 수 있는 곳은 정형화된 시설을 갖춘 대규모 맥주 공장뿐이었다.

 

소규모 양조장은 이태원이나 경리단길 등 힙한 곳에서 판매가 이뤄졌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해당 상권이 무너지면서 작은 업체들은 판로가 막혀버린다. 이것으로 수제 맥주 업체들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된다. 결국 거액이 있어야 성공하는 기간산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완화된 맥주 OEM 규제로 대기업 맥주 양조장 활용도 증가

 

기존에 맥주 산업에서 국내 OEM은 거의 없었다. 해외로 자사 브랜드를 지우고 수출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지만, 다양한 세금 및 국민 건강과 복잡하게 연결된 주류 산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에 발표된 국세청의 주류 규제 완화에 따라 같은 주류 면허를 가진 곳끼리는 OEM이 가능해졌다.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도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만 있으면 대기업 맥주 공장을 활용해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자사 브랜드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 산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곳이 롯데칠성이다. 클라우드 등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지만, 코로나 등으로 공장 가동률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중견 맥주 양조장과 협업, 현재 히트치는 대다수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곰표 맥주, 유동 골뱅이 맥주, 쥬시후레쉬맥주 등이다. 여기에 백양 맥주는 OB 맥주에서 생산하고 있다. 결국 기획은 중견 양조장이, 생산은 대기업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제 맥주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이러한 부분에 있다.

 

◆꾸준한 4캔의 1만원 맥주 행사와 홈술 시장 확대

 

2010년대 맥주 붐이 일었지만, 이는 수입 맥주에만 해당했다. 일본 맥주는 물론 독일, 벨기에, 체코, 미국,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맥주까지 다양하게 들어오면서 4캔에 1만원 행사가 홈술 시장을 꽉 잡았었다. 편의점 맥주는 이런 행사를 꾸준히 유지해왔던 것이고, 최근에는 여기에 컬래버레이션 맥주가 들어간 것뿐이다. 동시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외식·회식 등이 줄면서 홈술 문화가 커졌고, 여기에 수제 맥주를 표방한 컬래버레이션 맥주가 편승해 시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컬래버레이션 맥주 붐이 남긴 과제

 

2010년 수입 맥주, 크래프트 맥주, 이제는 컬래버레이션 맥주로 유행을 이어오고 있는 맥주 산업은 앞으로가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소비층이 다양해지면서 맥주 미식가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컬래버레이션 맥주는 맛보다는 이미지와 콘셉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이미지 마케팅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소비자가 식상해 할 수 있다. 콘셉트보다는 맛과 향에 집중하면서 팬을 키워가는 것이 맞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컬래버레이션 맥주 이후에는 어떤 맥주가 나올까? 개인적인 바람은 우리 맥아, 우리 농산물로 만든 맥주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현재 나오는 맥주 원료는 99%가 다 수입이기 때문이다. 국산 농산물을 통해 작은 양조장과 대형 양조장 모두가 상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작은 양조장의 제품은 가치 소비로, 대형 양조장의 경우는 일상의 술로 말이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안유진 '아찔한 미모'
  • 안유진 '아찔한 미모'
  • 르세라핌 카즈하 '러블리 볼하트'
  • 김민주 '순백의 여신'
  • 한지은 '매력적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