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여행은 흔히 설악산과 동해를 떠올린다. 지나쳐 가는 도시가 아닌 여행지로서의 원주는 그만큼 낯설다. 하지만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와 최근 몇년 동안 관광자원을 끊임없이 개발해 온 원주는 꽤 매력적인 여행지로 바뀌고 있다. 국형사에서 끝나는 치악산 둘레길 11코스와 구룡사 탐방로, 소금 잔도(棧道)와 전망대 건설이 한창인 소금산 그랜드밸리를 들여다봤다.
◆“간현관광지에 다 있다”…출렁다리 배경에 나오라쇼
원주에서 서쪽으로 17㎞, 섬강과 삼산천이 만나는 지점에 간현관광지가 있다. 강물 주변에 넓은 백사장과 기암괴석, 울창한 고목이 조화를 이룬다. 40∼50m의 절벽이 병품처럼 감싸안아 경관이 빼어나다.
현재 간현관광지의 필수 코스는 소금산 출렁다리와 나오라쇼다. 100m 높이에 200m의 다리가 놓인 출렁다리는 멀리서 봐도 아찔하다. 다리 바닥이 격자형으로 만들어져 발아래가 훤하다. 다리 중간쯤 걸으면 건장한 어른도 오금이 저릴 법하다. 한 커플이 다리 중간도 못 가고 돌아온다. 직원이 “출렁다리는 일방통행이라 돌아오시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자 여성이 “무서워서 도저히 못 가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다리 폭은 1.5m. 두 사람이 양쪽으로 지나갈 수 있지만 안전을 위해 일방통행으로 운영한다. 이 커플처럼 무서워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만 아니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칠 일은 없다. 간혹 다리 중간에 셀카를 찍는 용감한 여행자도 있다.
다리를 다 건너면 소금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하늘바람길 산책로를 따라 하산하는 길을 만난다. 하늘바람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출렁다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를 여럿 만난다.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아찔한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가을 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출렁다리 끝에서 방역요원으로 일하는 염종수씨는 “지난 주말에 4000∼5000명이 찾았다”며 “주중에는 단체가 많고 주말에는 가족이 많다”고 소개했다.
소금산 등산로 입구에서 표를 산 뒤 출렁다리 입구에 가려면 57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 한쪽 면에 몇 계단째 오르고 있는지 숫자로 표시돼 있다. 올라갈 때 줄어드는 계단 숫자에 위로받았는데 내려올 때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출렁다리 입장료는 원주시민의 경우 1000원. 외지인에겐 3000원을 받아서 2000원짜리 지역상품권을 내어준다. 1시간여의 짧은 소금산행을 마치고 강변에 즐비한 식당에 들른다. 감자전에 출렁주 한 사발이면 피로가 가신다.
옥수수 동동주인 출렁주엔 이렇게 쓰여 있다. “한잔의 출렁주는 무서움을 진정하고, 두 잔의 출렁주는 흔들흔들 출렁이고, 세잔의 출렁주는 소금산 하늘 아래 한점 구름되어 출렁이네.”
원주시는 케이블카를 타고 출렁다리 입구에 오른 뒤 하늘정원, 데크 산책로, 소금 잔도, 스카이타워 전망대, 울렁다리를 거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하산하는 ‘소금산 그랜드밸리’를 건설 중이다. 이미 운영하고 있는 출렁다리 외에 데크 산책로와 전망대, 잔도, 스카이타워, 울렁다리 공사가 곧 마무리된다. 그랜드밸리 완성은 내년에나 가능할 것 같다.
특히 소금산 정상부 아래 절벽을 따라 산 벼랑을 끼고 도는 소금 잔도는 다음달 개장 예정이다. 높이 200m의 절벽 한 쪽에 363m 길이로 조성된 아슬아슬한 길을 걷게 된다. 소금 잔도는 중국 장가계 못지않은 짜릿함이 기대된다. 전망대는 상공 150m 높이에서 간현관광지 전체를 내려본다. 울렁다리는 출렁다리보다 2배 더 긴 404m에, 높이 100m, 폭 2m인 국내 최장 보행 현수교이다. 인근 등산로에 놓인 철계단 404개의 역할 일부를 404m의 울렁다리가 대신하게 된다. 울렁다리 바닥 일부는 투명한 유리로 제작돼 발아래로 섬강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전망대와 울렁다리도 다음달 개장이 목표다. 임시 운영되고 있는 피톤치드 글램핑장에서는 출렁다리와 잔도, 전망대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출렁다리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암벽은 밤이 되면 도화지가 된다. 야간 코스인 나오라쇼는 ‘나이트 오브 라이트(Night Of Light)’의 줄임말이다. 아름다운 야간경관 조명과 최대 60m까지 솟구치는 음악분수, 암벽에 쏜 빔프로젝트(미디어 파사드)를 합친 프로그램이다. 분수가 출렁다리까지 닿을 듯 솟구치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온다.
미디어 파사드는 폭 250m, 높이 70m의 암벽에 원주의 대표설화인 ‘은혜 갚은 꿩’ 등 여러 콘텐츠를 상영한다. 11월부터 오후 7시 한 차례만 공연하는데, 하루 2회 운영할 때에도 매번 450석이 꽉 찼다. 40분 공연에 대인 5000원, 소인과 원주시민은 3000원을 받는다.
커다란 그물 위에서 뛰어도는 네트어드벤처는 오후 6시까지 30분 단위로 끊어서 운영된다.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소인은 2000원, 어른은 3000원이다.
◆치악산 둘레길 11코스와 구룡사 탐방로
사실 원주 하면 간현관광지보다 치악산이 입에 더 잘 붙는다. 치악산은 주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동쪽은 횡성군, 서쪽은 원주시와 접한다. 남쪽의 남대봉, 북쪽의 매화산 등 1000m가 넘는 고봉 사이에 가파른 계곡들이 즐비할 만큼 산세가 험하다.
치악산둘레길은 치악산 외곽을 시계방향으로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됐다. 옛길, 등산로, 샛길, 임도, 둑길, 마을길 등 기존의 길들을 모두 연결했다. 길이 끊긴 곳은 새로 내고 다듬어 11코스로 나눴다. 원주시 구간만 104.5㎞, 횡성군과 영월군 구간이 각각 12.3㎞와 22.4㎞로 총 139.2㎞이다. 도보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각 코스마다 안내표식, 길잡이 띠, 스탬프 인증대를 설치했다.
치악산 둘레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11코스의 종점, 국형사에서 11년차 해설사 목익상씨를 만나 함께 걸었다. 한가터길로도 불리는 11코스는 크고 작은 고개와 능선이 이어지고, 한가터 인근 잣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목씨는 “3코스(수레너미길)와 11코스에 흙길이 많다”며 “아직 공사 중인 일부 구간까지 열리면 11코스가 흙길로는 최장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1코스(꽃밭머리길), 2코스(구룡길), 3코스와 11코스에만 해설사가 있다. 횡성군에 속하는 4코스(노구소길)는 26.2㎞에 달하고, 2코스는 산세가 험해 겨울엔 자주 문을 닫는다.
국형사는 송림 속 사찰이다. 그만큼 소나무가 많다. 개인사찰이다가 조계종 소속이 됐는데, 도벌꾼이 판칠 때 이곳을 소유한 주지가 도끼들고 도벌을 막아 소나무들을 지켜낸 때문이라고 한다. 신라 경순왕 때 창건해 초기엔 고문암(古文庵)이라 불렸다. 인근 노인들은 여전히 고문사, 고문절이라고 한다. 국형사(國亨寺)는 국향사(國享寺)라고도 한다. 아직도 국향사와 국형사가 혼용되는데 나라의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절이었으니 국형사가 맞을 것이라고 목씨는 말했다.
오르막 내리막길을 지나 잣나무를 심어놓은 한가터 잣나무 숲길이다. 한가터는 한씨성과 무관하게 산이 둘러싸여 ‘넓은’ 마을을 의미한다. 대전을 한밭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곳곳에 벤치를 둬 쉬어갈 수 있게 했다. 코스에선 이따금 저 멀리 혁신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치악산에서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구룡사다. 원주시도 원주팔경 중 구룡사를 첫번째로 꼽는다. 구룡사는 668년(신라 문무왕 8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아홉마리 용과 거북바위 전설은 이름에서 비롯한 것 같다. 오래전 대웅전을 앉힐 곳에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에 살던 아홉마리의 용을 몰아내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곳이라고 해서 ‘구룡사(九龍寺)로 불렀다. 지금은 ‘아홉 구’(九) 대신 ‘거북 구(龜)’를 쓴다. 조선시대 들어 절 사세가 나빠지자 구룡사의 기를 누르고 있다는 커다란 바위를 쪼갰는데 상황은 악화했다. 거북의 혼이 깃든 그 바위가 절을 보호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거북 혼을 달래기 위해 거북 구자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목씨는 “사람들이 구룡사에 와서 거북모양 바위를 찾는데 전설에는 거북 혼이 깃들었다고 했을 뿐”이라며 웃었다.
구룡사 계곡에 있는 세렴폭포로 길을 잡았다. 샛길로 가면 계단식 지형이 나온다. 예전에 화전민들이 농사짓던 땅이다. 오래전 이곳에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동그랗게 돌을 쌓아올린 곳은 화장실로 쓰였다. 초록 이끼가 가득한 바위 주위로 시냇물이 흐르고, 석조 유물 뒤로 오래전 폐쇄된 등산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길을 재촉하니 계곡 옆에 평탄한 곳이 나온다. 예전엔 대곡야영장이었지만 지금은 폐쇄됐다. 사람이 몰리자 쓰레기가 넘쳐나 식수오염이 우려된 탓이다. 구룡사 탐방로를 따라 오르는 동안 물소리가 가득하다. 금강솔빛 생태학습원, 족욕장 등을 거쳐 세렴폭포에 닿았다. 생각보다 작지만 물줄기가 시원한 2단폭포다. 구룡폭포와 칠석폭포가 지척에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