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정지인 옮김/곰출판/1만7000원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물고기를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신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19세기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의 삶과 연구를 추적하고 철학을 탐구하는 책이다. 조던에게 매료된 저자 룰루 밀러는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그의 삶을 통해 ‘진실한 관계’를 성찰하고 우리가 믿고 있는 삶의 질서를 돌아본다. 책은 조던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그의 전기를 다루지만, 그를 통한 철학적 메시지도 전달한다.
스탠퍼드대 초대 총장이자 어류 분류학자였던 조던은 새로운 종을 찾아 전 지구를 항해했다. 당대 인류에 알려진 어류 1만2000여종 중 2500종 이상이 조던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식별됐다. 조던은 새로 발견한 종이 자연에 숨겨진 기원과 질서를 알려주길 바랐다. 그의 연구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를 밝혀내는 과정으로,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것이 모든 동식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찾는 여정이다. 책은 “다윈이 신을 없애기는 했지만, 물고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상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의 진짜 창조 이야기를 알아내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그가 하는 일은 다른 생물들의 우연한 실수와 성공들 속에 쓰여 있는, 잠재적으로 인류가 더욱더 진보하도록 도와줄 실마리들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던을 보면 과학에서 답을 찾는 과정은 인생의 길을 찾는 여정과 꼭 닮아 있다. 여러 역경과 혼돈에도 굴복하지 않는 조던을 통해 삶의 자세를 성찰하게 된다. “세상이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책은 우리가 믿고 있던 삶의 질서에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하나의 사실인데,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라고.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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