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달달함 정점
곰탕에 결들인 깍두기
시원한 동치미
깔끔한 소고기뭇국
부드러운 갈치조림
달다구리한 무 케이크…
“음식 주인공은 바로 나”
# 깍두기
무 하면 역시 가장 먼저 깍두기, 깍두기하면 역시 누가 뭐래도 국밥이다. 깍두기와 국밥의 조합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은 뭘까. 명동 하동관의 맑은 곰탕과 시원한 깍두기가 무 하면 떠오르는 최우선 조합이 아닐까.
기름을 싹 걷어내 맑고 담백하게 끓인 곰탕에 곁들이는 깍두기는 주연과 조연이 헷갈릴 만큼 선명하게 매력적이다. 겨울에 맛의 정점을 맞는 제주산 무와 국산 소금, 새우젓으로 맛을 내는 하동관 깍두기는 섞박지 형태로 배추김치 일부와 함께 나오는데, 상큼한 단맛이 일품이다. 하동관 곰탕의 깊고 담백한 국물과 만나 최상의 고급진 조합을 이뤄낸다. 그릇을 반쯤 비웠을 때 단골들은 ‘깍국(깍두기 국물) 추가’라고 외친다. 주전자에 가득 담긴 깍국은 곰탕 그릇에 찾아가 또 한번 새빨갛게 존재감을 과시한다.
깍두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또 있다.
메인인 고기보다 더 유명해진 왕십리 ‘대도식당’의 ‘깍두기볶음밥’. 국내 고깃집들의 후식 패러다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될 만큼 존재감이 상당하다. 소고기를 구운 기름진 무쇠판에 단맛과 감칠맛이 강하게 도는 깍두기를 잘게 다져 자작한 국물과 함께 밥에 끼얹는다. 무쇠 솥에 지글지글 달구며 야무지게 슥삭 비벼 한김 푸욱 익힌다. 뜨거운 무쇠 열에 그대로 눌어붙은 매콤한 누룽지는 그 어떤 후식과도 바꿀 수 없다. 서로 눈치게임을 하며 무쇠판 바닥에서 서로 땅따먹기를 한다.
# 동치미
애호박으로 만드는 갖가지 음식을 파는 서울 계동의 ‘애호락’은 헌법재판소 앞 굵직한 노포들 사이에서 선명한 개성을 뽐내는 아기자기한 한식 주점이다. 근처 직장인들에게는 혼자서도 가득한 찬에 반주 한 잔 즐기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 난 가성비 식당이다. 애호락에서 지금 가장 먼저 맛봐야 할 음식은 다름아닌 동치미. 기본찬이라고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넉넉히 내어주는 푸짐함에서 사장의 인심을 엿볼 수 있다. 사장의 어머니가 겨울 동안 직접 담근다는 동치미는 담음새부터 정성이 흘러 넘친다.
# 무 케이크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홍콩에서는 딤섬(간단한 식사 또는 스낵)에 포함되는 만큼 대중적인 음식에 속하는 ‘무 케이크’. 오픈하자마자 이듬해 미쉐린 별을 획득해 유명한 홍콩의 식당 ‘팀호완’이 최근 서울에 상륙해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무 케이크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적당한 가격과 달리 예리한 칼질로 단번에 측면을 동강낸 매무새에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식당답다는 인상을 준다. 케이크처럼 마냥 부드러운 것도, 무 자체의 아삭함이 도드라지는 것도 아닌 딱 그 중간 지점의 식감. 전반적으로 ‘달다구리’하면서도 언뜻 구릿한 무의 향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중화식 ‘무떡’과 비교하자면 서구인이 많은 영향을 준 홍콩의 식문화가 반영됐음이 물씬 느껴진다. 처음 접하는 이색적인 맛과 식감에 갸우뚱하면서도 한 번 두 번 수저를 반복해서 뜨게 되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먹기 편하고 소화도 잘되는 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해 부담이 없으니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 소고기뭇국
군산 여행의 필수 코스, 이제는 전국구 맛집으로 한번쯤 꼭 다녀와야 할 맛집으로 자리 잡은 군산 ‘한일옥’. 주말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소고기뭇국을 먹기 위해 더우나 추우나 기꺼이 줄을 선다. 집에서도 손쉽게 해먹는 소고기뭇국이 뭐라고 이렇게 줄을 서나 싶지만, 한번 한일옥의 소고기뭇국을 맛본 사람들이라면 상당 기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한일옥은 1등급 한우를 사용해 매일 소고기뭇국을 끓이는데, 파의 선명한 초록빛이 그대로 비칠 만큼 최대한 깔끔하게 걷어낸 국물이 인상적이다. 너무 맑아 수저를 담그기도 미안할 정도로 국물은 기가 막히게 깔끔하다. 용기 내 밥을 한 사발 푹 담가 꾹꾹 누르면 쌀이 알알이 풀어지면서 입이 냉큼 마중 나가는 환상적인 해장국이 된다. 한 수저 잡아들고 후후 불어서 한 입. 정신차려보면 어느새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릇 채로 국물을 목에 털어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수희식당
제주산 갈치에 겨울 제주도 무, 이보다 더 좋은 겨울 맞춤형 제주 음식이 또 있을까. 1992년 작은 가게로 시작해 지금의 큰 몸집이 된, 갈치조림으로 제주에서 신화를 쓴 서귀포 ‘수희식당’. 제대로 푹 익혀 나온 갈치조림은 등장부터 푸짐하다. 토막이 큰 갈치와 무는 사이좋게 일대일로 번갈아가며 누워있다. 달큰하고 자작한 국물은 탁하지 않아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다. 큼지막한 무는 충분히 익혀 시원하면서도 보드랍고, 갈치는 집을 때마다 뽀얀 살을 드러낸다. 조림 양념의 밸런스가 좋다. 일부러 하얀 살코기를 부셔서 국물과 뒤섞어 밥에 얹어 먹어야 더욱 맛이 좋다. 입에 착 달라붙어 금세 밥 한 공기를 뚝딱, 제주도의 밥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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