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 해약한 수표·현금 총 2천만원 조직원에 건네
"현금 바꿔오라" 지시에 은행 가다 배터리 방전
충전하려 찾아간 지구대서 사기범죄 연루 직감
송금책 1명 현장서 체포, 사라진 일당 추적중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은 70대 노부가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된 바람에 큰 위기를 모면했다.
27일 전북 전주완산경찰서에 따르면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 거주하는 주민 A(75)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이 걸어온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26일 아침. “아들이 납치됐으니, 무사히 돌아가게 하려면 5000만원을 준비해 전주로 가라. 휴대전화는 절대 끊지 말고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눈앞에 캄캄해진 A씨는 앞뒤 가릴 새도 없이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입으며 “가진 돈이라고 해봐야 2000만원짜리 적금 하나가 전부인데,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며 안절부절하지 못하자 “할 수 없지만, 그럼 2000만원이라도 찾아오라”고 시켰다.
A씨는 곧장 읍내 인근 은행으로 달려가 적금을 해약해 수표 1000만원과 현금 1000만원을 싸 들고 지령에 따라 전주 삼천동 한 주택가로 찾아갔다.
현장에는 한 남성이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서성이고 있었다. 피해자임을 단번에 알아차린 그에게 돈 봉투를 건네자 “수표 1000만원은 현금으로 바꿔오라”고 다시 지시했다.
이에 A씨는 부랴부랴 은행으로 가 현금으로 바꿔 다시 약속 장소로 향하던 순간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돼 저절로 꺼져버렸다. 사기 조직이 피해자의 신고나 아들과의 통과를 막고 모든 순간을 감시하기 위해 전화를 끊지 못하게 협박해 장시간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그는 눈앞에 보이는 삼천지구대로 달려가 경찰관들에게 휴대전화 충전을 부탁했다. 충전을 기다리는 사이 A씨는 혹여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좌불안석이었다.
경찰들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시느냐”며 말을 건네자 그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털어놨다.
보이스피싱에 연루됐음을 직감한 경찰관들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하고 사기 범행을 확신했다.
이에 경찰관들은 피해자를 진정시키며 사기 범죄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일당을 검거하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경찰들은 완산경찰서 지원 수사관 등 5명과 다시 약속 장소로 향하는 A씨의 뒤를 미행했다.
이번엔 현장에 태국 국적 외국인 여성 B(41)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해자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보내기 위한 송금책이었다.
경찰은 현장을 덮쳐 피해금을 손에 쥔 B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유치장에 입감시켰다. 또 앞서 피해자로부터 현금 1000만원을 챙겨 사라진 남성의 뒤를 쫓고 있다.
삼천지구대 관계자는 “피해자가 휴대전화 충전을 위해 지구대를 찾지 않았다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을 터인데, 절반에 그쳐 다행”이라며 “피의자를 상대로 공범 여부와 자세한 범행 경위, 여죄 등을 집중 조사해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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