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침공…美 타협 거부→러 침공→3차 대전 비화
제한침공…美 업은 우크라군 돈바스 공격→러 개입
무력증강…러, '나토 대치' 벨라루스에 핵무기 배치
절충타협…우크라 나토가입 10년 유예 등 현상 유지
협력타결…반소 미·중연대식 미·러 제휴→지각변동
“무력증강이나 절충타협, 아니면 그 중간 진행 공산
이번 사태 최대 수혜자는 중국과 국제 에너지 메이저”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이 폐회하는 오는 20일까지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배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냉전 시기 핀란드처럼 우크라이나를 중립지대로 만들자는 절충안도 제안하는 등 파국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미국이 수용할지는 미지수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및 한·러 관계 전문가인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장 겸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학과 주임교수는 14일 우크라이나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아 전쟁의 유령이 다시 배회할지, 극적 타결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지 결정적 순간이 임박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번 사태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결국 중국과 에너지 가격 앙등으로 이익을 챙긴 국제 에너지 메이저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바이든·푸틴 입장차만 재확인
-현재 미·러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62분간 통화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지난달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차 협상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양측 외교사령탑도 추가 회담 재개에는 합의했어도 아직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 등이 확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미국과 나토는 크렘린이 요구한 안전보장안에 대한 서면 답변서를 지난달 26일 러시아 측에 전달했다. 크렘린의 핵심 제안을 거절하면서 도리어 러시아에 전쟁할지 아니면 서방과 군축 협상 기회를 잡을지 양자택일 압박을 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동향은.
“지난 1일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의 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세 가지 핵심 안보 우려 사안을 무시한 채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도하고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나토 확장 금지, 러시아 국경 인근으로의 공격무기 배치 금지, 중동부 유럽 나토회원국에 배치된 군사 인프라의 1997년 이전 수준으로 복귀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7년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러시아 간 협력 및 안보에 관한 기본협정’이 체결된 해다.”
◆20일 동계올림픽 폐막까지가 골든타임
-러시아가 발끈한 상황인가.
“현재까지의 미·러 담판에서 한 치 양보 없는 팽팽한 힘겨루기와 치열한 수읽기가 관찰된다. 협상이 결렬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언술(言述)로 보아 예상대로 미국이 러시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협상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크렘린은 미국에서 받은 서면 답변을 면밀히 분석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워싱턴의 제안에 아직 공식 재답신을 내놓고 있지 않다.”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까.
“이제 다시 공이 러시아로 넘어와 푸틴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는 듯하다. 핵심 안전보장안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안보 위협의 근원적 제거와 전략적 균형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가용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천명해 왔던 푸틴에게 백악관의 답변은 분명 양에 차지 않는다. 그렇다고 즉각 군사·기술적 대응조치를 취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 대미·대나토 항전의 중요한 뒷배인 중국 잔치에 재를 뿌릴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이 한창이던 시점에 러시아는 조지아를 전격 침공해 당시 중국의 정치외교적 심기를 심히 불편하게 한 적이 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크렘린은 적어도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끝나는 오는 20일까지 본격적인 군사적 반격을 유예할 가능성이 높다. 뒤집어 말하면 올림픽 기간이 미·러의 협상이 파국이냐 아니면 극적 타협이냐를 가름하는 골든타임이라 할 수 있다.”
-일단 20일까지는 시간이 있는 셈인가.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크렘린의 선제적 군사행동을 자제시킨다는 점에서 미·러의 우발적 무력충돌을 억제하는 일종의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다. 예단할 수 없지만, 과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반도 상공에 드리워진 짙은 전운을 제거한 극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것처럼, 남북한과 북미가 극한 벼랑 끝 대치를 거두고 각기 3차례의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열면서 일시적으로나마 한반도 위기가 안정성을 되찾은 것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미·러의 협상에서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
◆ 미·러의 기 싸움은 ‘협상의 결착 임박’ 의미도
-주요국이 우크라이나에서 국민철수령을 내리는 등 상황을 낙관하기 힘들다.
“현재 상황은 러시아와 서방이 마주 달리는 열차의 형세로 충돌을 향해 치닫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실제로 양측이 협상에서의 우위 확보를 위해 거친 설전과 언쟁을 주고받는 가운데 각기 세(勢) 결집과 군사력 전개의 기(氣)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 간 ‘엄포놓기’(bluffing)와 ‘오기대결’(contest of nerve)이 2라운드에 진입한 느낌이다. 이런 형세는 어찌 보면 협상이 거의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점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양측은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미국은 협상의 막판 샅바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전무후무한 초강력 무역·금융 제재 카드를 연일 흔들고 있다. 동시에 영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및 군사장비 공급을 늘리면서 폴란드, 루마니아,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우크라이나 인근 나토회원국에 속속 증원군을 파병하고 있다. 11일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 주요국 및 국제기구 지도자들을 초청한 화상회의를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서방의 결집력을 과시했다. 화상회의에는 바이든 대통령 이외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루마니아 등 국가 지도자들과 유럽이사회, 유럽위원회, 나토 등 국제기구 수장들이 참여했다.”
-미국의 무력동원이 협상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인가.
“러시아 역시 협상력 강화 차원에서 전쟁 가능성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고 있다. 상업위성 업체 맥사에 포착되라는 듯이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군사력을 증강 배치하고 있다. 나토와의 대치선에서도 육·해·공군 전략자산을 총동원한 역대급 군사훈련을 잇달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10일부터 실시된 벨라루스와의 연합군사훈련에 정예병력 수천 명과 S-400 지대공미사일, 판치르 대공방어체계, 수호이(Su)-35 전투기 등 최첨단 무기를 대거 투입했다. 항공우주군 소속으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22M3의 초계비행도 늘리고 있다. 러시아가 보유한 막강한 4개의 해양 전략자원, 즉 북해함대, 발트함대, 흑해함대, 심지어 극동 태평양함대의 기함·상륙함·대잠함들까지 지중해를 거쳐 흑해로 대거 이동시키고 있다.”
◆푸틴, 군사력 증강과 협상의 전형적 양동작전
-러시아의 무력증강 역시 결국 협상을 위한 작전인가.
“영민한 전략가 푸틴의 협상술은 현란하기 그지없다. 러시아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육·해·공의 입체적인 고강도 군사력을 전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협상의 여지를 열어 놓은 채 군사·기술적 대응조치를 위한 명분축적용 심리전도 동시에 펼치고 있다. 전형적인 양동작전(陽動作戰)이다. 대표적인 게 서방을 향해 큰 목소리로 비난의 포문을 연 유럽안보헌장 위반 지적이다. 1999년 이스탄불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안보불가분성’(indivisibility of security) 원칙을 꺼낸 것이다. 안보 불가분성의 원칙은 타국 안보를 희생해서 자국 안보를 추구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위협을 핑계 삼아 서방과의 안보협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미국과 나토 등이 이를 지원하는 상황은 결국 러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보불가분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달 28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 명의로 미국과 캐나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외교 수장에게 안보불가분성 원칙을 강조한 외교 서한을 정식 발송했다. 지난 1일에는 자체 웹사이트에 그 전문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각 회원국에 현 상황에서 나토·OSCE 구성원들이 안보불가분성의 의무를 어떻게 준수할 것인지 개개의 국가별로 서면 답변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러시아 군사력 전개 외에 현재 협상을 벌이고 있나.
“중국 배려차원의 시간벌기 골든타임 동안 러시아는 안전보장을 위한 자위적 군사조치의 정당성 확보 노력과 함께 추가협상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3일 OSCE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차례 미·러 실무급 협의가 있었지만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10일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노르망디 4개국(프랑스·독일·러시아·우크라이나) 정상의 정책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분쟁 해소 방안을 논의했지만 역시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좌불안석 상황의 독·프 외교전
-EU의 핵심국인 독일과 프랑스 동향은.
“미·러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EU 주도국 독일과 프랑스이다. 미·러가 일으킨 군사적 스파크로 우크라이나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으로 불똥이 튈 것이 자명하고, 그 후과는 워싱턴이 아니라 베를린과 파리가 고스란히 껴안게 된다. 대규모 전쟁 난민 발생으로 EU 구성원 간 난민 수용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심화할 것이고 사회적 혼돈도 불가피해진다. 지불해야 할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에너지 가격 급등과 수급 악몽도 현실이 될 수 있다. EU의 입장에서 볼 때 지정학적 긴장 고조의 장기화는 유가에 상방 압력을 가함으로써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 미국과 러시아만 좋을 일이다.
더욱이 전 유럽이 전쟁터화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제한전이든 전면전이든 유럽에서의 전쟁은 독일과 프랑스의 입지를 축소하고 미국과 영국에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서로 멱살을 움켜잡고 있는 미·러의 싸움을 어떻게든 뜯어말리고 충돌을 막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독일과 프랑스가 역할 분담을 하는 가운데 살인적 일정을 소화하며 분주하게 셔틀 중재외교에 나선 이유다.”
-독일과 프랑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겠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7일 바이든 대통령과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외교적 수사 차원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세에 단일대오로 강력히 공동 대응할 것임을 언명했지만, 사실은 미국의 러시아 몰아세우기를 완화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사실상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외교적 합창을 한 것이다. 숄츠 총리는 바이든의 압박에도 끝까지 노드스트림2 차단을 언급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도 같은 날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첫 정상회담을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참혹한 대가를 치를 것임을 거듭 경고함과 동시에 나토와 러시아가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면서 푸틴의 불만을 달랬다.
마크롱은 모스크바 정상회담 직후 곧바로 우크라이나로 넘어가 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마크롱은 젤렌스키 손에 우크라이나 경제 안정화 자금 12억 유로(약 1조6400억원)를 쥐여주면서 이제 더는 미국의 앞잡이가 되지 말고, 프랑스와 독일이 제안하는 모종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라 다독였다.”
-독일·프랑스는 폴란드와도 3국 정상회의를 열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EU 내 대표적인 친미 추수(追隨) 국가로 대러 공세의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폴란드의 오버액션을 누그러트리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전개했다. 숄츠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8일 베를린에서 소위 바이마르 3자 회담을 개최했다. 바이마르 회담은 독일, 프랑스, 폴란드가 냉전 종식 후 유럽의 안보협력 증진을 위해 1991년에 창설한 협의체다. 그동안 3국의 껄끄러운 관계 등으로 제대로 열리지 못하다가 이번에 11년 만에 재개됐다.”
-바이마르 회담이 11년 만에 열렸다는 것은 그만큼 독일과 프랑스의 입장이 급박하다는 의미로 보인다.
“바이마르 3국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국경 침범은 러시아에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경고하면서 서로 대동단결해 반드시 전쟁을 막겠다는 결의를 천명했다. 그렇지만 이 외교적 화법 이면에는 폴란드를 향한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굳이 어색한 관계의 폴란드와 정상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고 유럽에서 전쟁을 막는 것이 우리의 공동 목표라고 강조한 것은 미국을 위해 러시아 몰이 사냥개 역할을 하는 폴란드에 더는 크렘린을 자극해 전쟁을 부추기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하다. 독일과 프랑스가 분주하게 펼치고 있는 중재외교의 핵심은 미·러의 위장된 흥분은 가라앉히고,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은 진정시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EU의 유럽안보 주도권 확보하기
-독·프가 미국과 공조하는 듯하면서도 독자적 행보를 한다는 의미인가.
우크라이나 안보위기는 결국 유럽의 안보위기임에도 미·러가 주연이고 EU가 피동적 관객으로 전락한 것에 대해 EU의 기분이 유쾌할 리 없다. 그런 정서는 러시아의 안보불가분성 서면답변 요구에 대한 지난달 28일 EU 집행부의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U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러시아가 요구하는 EU 회원국 개별 답변이 아니라 공동 답변을 낼 것임을 언급하면서도 유럽안보 문제는 나토·러시아위원회 협상 테이블과는 다른 OSCE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U가 미국과 더불어 러시아의 군사 공세에 공동대처는 하겠지만, 안보주도권은 내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프랑스와 독일의 적극적 중재자 역할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독·프의 구체적 입장은 무엇인가.
“독일과 프랑스가 견인하는 유럽연합 지도부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이나 유럽 국가들의 안보가 훼손되어서는 안 되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안보 우려도 고려해 크렘린의 요구를 일정수준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먼저 우크라이나 국경 상황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영 및 러시아가 아니라 EU의 이익을 위해, 말하자면 유럽에서의 전쟁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절충안의 제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문제의 핀란드 해법
-미·러 대립 와중에 EU의 현실적인 절충안이 있나.
“러시아의 안보보장 요구에 대한 일부 수용은 나토와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이어야 한다. 이는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즉 우크라이나 위기의 핀란드식 해결로 설명된다. 국제정치학에 ‘핀란드화(Finlandization)’로 통용되는 이 용어의 의미는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는 우크라이나를 냉전 시기 핀란드처럼 서방과 러시아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립지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중립지대안을 미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있나
“러시아가 일관되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확약을 요구하고 이것을 서방이 거부하면서 전쟁 위협이 반복적으로 고조되는 상황에서, 제2의 샤를 드골을 꿈꾸는 마크롱은 절충안으로 양측의 타협을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요컨대 우크라이나를 동(러시아)과 서(EU·나토) 사이의 중립적인 완충지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가 미국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과 영국은 EU에 대한 통제권 강화를 위해 러시아를 유럽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여기에 동참할 의사가 전혀 없다. 독일은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무기는 보내지 않고 헬멧만 보내기도 했다. 물 위에서의 미국 대 러시아의 ‘기 싸움’도 간단치 않지만, 물밑에서의 미·영 대 독·프의 ‘수 싸움’도 예사롭지 않다. 일주일 정도 남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나는 20일까지가 협상의 극적 타결이냐 아니면 군사적 충돌로 치닫는 결렬이냐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이 될 듯싶다.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의 실질적 열쇠를 쥔 미·러 양자 간 외교적 논의가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두 축 독일과 프랑스의 숨 가쁜 중재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 미지수다.”
◆미·러 협상의 5가지 시나리오
-이 시점에서 미·러 협상의 향방은 어떻게 전망할 수 있나.
“5개 정도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첫째는 최악의 시나리오로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침공이다. 미국이 러시아가 요구하는 마지노선, 즉 우크라이나와 조지의 나토 회원국 편입 불허 확약을 거부하고 나토 가입 추진을 강행할 때 미·러의 직간접적인 군사적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크라이나를 인질로 한 크렘린의 서방에 대한 군사적 도전은 러시아의 위험한 지정학적 불장난이나 도박이 아니라, 사활적 이해를 확보하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이기 때문에 그렇다.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경우 프랑스와 독일 역시 유럽안보를 위해 미국과 함께 공동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 상황 여부에 따라서는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 같다.
“두 번째 시나리오 러시아의 전면침공이 아닌 제한침공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제한적 침공을 하는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는 러시아 군대가 먼저 탱크를 몰고 돈바스 지역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아니다. 비용 대비 효용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푸틴의 실사구시적 대외 군사안보 전략을 감안할 때 러시아가 먼저 돈바스를 침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다만 미·영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에 첨단무기 제공과 함께 다양한 당근책을 제시하여 돈바스 반군에 대한 선제적 총공세를 부추김으로써 그들이 밀리거나 궤멸할 때는 상황이 다르다. 이 경우는 인계철선(引繼鐵線·적 침입 시 건드려 폭발물이나 조명탄·신호탄을 터뜨리는 철선)이 되어 러시아가 정규군을 제한적으로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일원에 투입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친러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고 우크라이나 현 정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보루이기 때문에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군사적 개입이 요구되는 지정학적 핵심이익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한 이면의 원인을 숙고해볼 때 미·영이 내심 바라는 그림일 수 있다.
이런 두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었을 때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함께 러시아에 소위 ‘지옥의 제재’를 가할 것이다. 정치외교적, 군사안보적, 경제통상적 작용과 반작용의 보복을 주고받음으로써 동(러시아)과 서(EU 및 나토) 사이에 문자 그대로 다시 신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국제질서에 투영될 것이다. 노드스트림2는 폐쇄압력을 받아 국제유가는 춤추고 금융시장은 휘청거리며 국제곡물 가격 변동성을 확대될 것이다. 유럽대륙에 대한 미·영의 통제권과 영향력은 확대·강화될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세 번째는 러시아가 일종의 비례적 대응으로서 서방에 대해 강력한 군사기술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안보적 위협을 가하는 시나리오다. 러시아가 요구한 안전보장안 가운데 크렘린이 만족할 정도의 합의를 조약 또는 협정 형태로 미국이 확약해주지 않을 경우, 누차 천명한 대로 국가 안보에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을 제거하고 동시에 전략적 균형 확보를 위해 다양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으로 나토 대치선 국가인 벨라루스에 러시아군 주둔 및 전략핵무기 배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둘러싸인 러시아의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에 유럽을 향한 타격용 공격무기, 이를테면 미국 미사일 방어망(MD)을 피할 수 있는 RS-26 아방가르드과 RS-28 사르맛 배치, 반러 핵심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Tu-22M3의 초계비행 및 역외정찰 강화, 지중해 및 카리브해 일원에서 중·러의 해상연합훈련 실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러시아 군사 인프라 설치 및 극강의 초음속 미사일 치르콘 배치 등을 상정할 수 있다. 돈바스 지역에서 국가 성립을 선포한 친러 성향의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세 번째 시나리오도 무력충돌 가능성이 커 보인다.
“네 번째 시나리오는 미·러의 물밑 협상에서 각자가 원하는 최대치가 아니라 양측의 목표치 사이 어디쯤, 즉 파레토 최적의 균형점에서 상호 안보이익을 교환하여 타협점을 찾는 현상유지다. 미국이 러시아의 군사적 도발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 양보를 함으로써 현상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시도다. 군축이나 군사적 신뢰 구축, 긴장 완화 등을 약속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을 10년 정도 유예하는 미·러의 비밀 협정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또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우크라이나의 완충지대화, 즉 핀란드식 중립화 방안도 현상유지의 한 해법이다. 이 경우 미·러의 군사적 충돌과 전쟁은 억제되겠지만 그렇다고 양국관계가 개선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일정수준 지금처럼 동서 사이에 긴장 관계가 유지될 공산이 크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다섯 번째로 미국이 강경한 외교적 수사와는 다르게 물밑 협상에서는 러시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 미·러 관계를 개선하는 현상타파다. 미국이 견고한 중·러의 반미연대에서 러시아를 끌어내기 위해 큰 당근책을 제시하는 시나리오다. 미·러의 협상 타결이 상호 신뢰 구축으로 이어져 우크라이나 거래에서 양측이 손을 맞잡을 경우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과거 미국이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하고 베이징과 화해하면서 반소 전략적 연대를 구축한 사례처럼 미국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대러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역(逆·reverse) 닉슨 전략’으로서 21세기 국제질서의 새로운 지각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미·러 대립 최대 수혜자는 중국과 국제 에너지 메이저
-어떤 시나리오로 갈지 현시점에선 예측 불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라는 골든타임에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해당사자 및 이해상관자 사이에 불안한 숨 고르기가 이어지고 있어 협상의 전망을 예측하기가 쉽지가 않다. 칼을 뽑은 러시아의 최후통첩이 협상의 결렬로 유럽대륙에 다시 전쟁의 유령이 출몰할지 아니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극적 타결에 이를지 그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굳이 전망하자면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에서는 세번째 또는 네번째 시나리오, 아니면 그 중간의 시나리오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 전쟁이 나면 결국 모든 플레이어가 패배자가 되지 않을까.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미·러의 소모적 극한 대치로 이득을 취하는 최대 수혜자는 중국과 국제 에너지 메이저라는 점이다. 중국은 힘의 오버스트레칭(Overstretching,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힘의 과잉 투사)을 야기하는 미·러의 대립을 멀리서 흐뭇하게 즐길 것이고, 국제유가는 천장을 뚫고 계속 고공행진을 거듭할 것이다. 국제 투기세력이 인위적으로 연출된 위기 조장에 편승해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며 활개 치는 모습을 우리는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거대한 지정학적 쇼는 끝나가고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