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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왕실 혼례식의 현장, 어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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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3-25 22:51:00 수정 : 2022-03-25 2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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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어의궁 터’ 표지석.

코로나19의 위세 속에서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온다. 봄이 되니 주변에 결혼식을 알리는 소식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왕실 결혼식에는 여섯 가지 예법이 있었다. 납채(청혼서 보내기), 납징(함 보내기), 고기(날짜 잡기), 책비(왕비 책봉), 친영(친히 왕비를 맞이하러 감), 동뢰(궁궐에서 함께 술잔을 나눔)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은 친영(親迎)으로 오늘날 예식장에서 거행되는 결혼식 장면과 유사하다. 조선시대 왕실 사람은 10대 초반에 혼인해 대부분 세자 지위에서 세자빈을 맞이했다. 왕이 혼인하는 경우엔 계비를 맞이할 때가 많았다. 왕비로 간택되면 별궁(別宮)에서 미리 왕비 수업을 받게 했다. 조선시대 별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곳은 효종의 잠저(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곳)인 어의궁(於義宮)이었다. 19세기 서울의 연혁과 관청, 풍속 등을 기록한 ‘한경지략’에는 “상어의궁은 인조의 잠저인데 잠룡(潛龍)이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고, 용흥궁은 동부 숭교방에 있는데 보통 하어의궁(下於義宮)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에 오면 어의궁은 곧 하어의궁을 지칭했고, 어의동별궁 또는 어의동본궁이라고도 했다. 1681년 5월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1759년 6월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1851년 9월 철종과 철인왕후의 혼례식이 어의궁에서 거행됐다. 영조실록에는 1759년(영조 35) 6월22일 “임금이 어의궁에 나아가 친영례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어의궁 위치는 현재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효제초등학교 인근으로 보고 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에서 종로5가역 방향으로 가면 ‘어의궁터’라는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어의궁이 별궁으로 활용된 것은 이곳이 창덕궁, 창경궁 등 궁궐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1863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혼례가 흥선대원군 사저였던 운현궁에서 거행되면서 어의궁을 혼례식장으로 활용한 역사는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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