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비권 행사하는 두 사람으로 검찰 수사는 답보
법정서 부작위 살인과 고의성 입증 놓고 공방 예상
검찰이 자신감을 내비쳤던 계곡 살인사건이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피의자인 이은해(31)씨와 내연관계의 조현수(30)씨의 입을 열기 위해 강도 높은 수사를 연일 이어가고 있지만 핵심 피의자인 두 사람이 묵비권을 행사함에 따라, 법정에서도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과 미필적 고의의 인과성 입증에 검찰과 이씨 측의 다툼이 집중될 전망이다.
◆검찰 혐의입증 자신감과 달리 입 닫은 이은해·조현수
인천지검 형사2부(부장 김창수)는 19일 살인과 살인 미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를 받는 두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 심사를 진행한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이씨의 남편인 윤모씨가 숨진 지 2년10개월 만이다.
지난해 12월 14일 검찰 2차 조사를 앞두고 잠적했던 이씨 등은 일부 진술을 거부하는 등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도 “수사 진척이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이씨의 남편 윤씨가 계곡에서 사망하기 전 보험료를 내지 못해 실효된 윤씨 명의의 8억원짜리 생명보험을 되살린 점과 피해자 윤씨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계획적 범행이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복어 피로 윤씨를 살해하려 한 정황을 두 사람의 텔레그램 대화로 이미 확인했고, 도피 전 1차 조사에서 본인들도 시인했다는 점도 검찰이 자신감을 보이는 근거다. 검찰은 검거 과정에서 확보한 휴대전화 2대도 디지털 포렌식해 물증을 더 확보하기로 했다.
검찰은 앞서 계곡 살인사건의 또 다른 공범인 이모씨를 수차례 소환 조사했다. 조씨의 친구이자 이은해의 지인인 공범 이씨도 살인 등의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은 계곡 살인이 수영 능력이 없는 피해자를 보험이 만료되는 날 피의자들이 가평 계곡으로 유인해 강제로 다이빙하도록 유도한 후, 구해주지 않고 사망에 이르게 한 계획적 살인 범행이라고 보고 있다. 또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복원해 복어 독을 이용해 피해자를 죽이려 했던 살인의 고의도 입증된다는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범죄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은 검찰 조사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자수를 해놓고 수사에는 비협조적인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공범들과 당시 용소계곡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을 대상으로 윤씨의 죽음과 두 사람의 행동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들에게 구조의무가 있었나, 부작위 입증 가능할까
이은해, 조현수 두 사람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2019년 6월 용소계곡에서 남편 윤씨를 숨지게 한 살인 혐의, 앞서 같은해 2월과 5월에 윤씨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살인 미수 혐의, 그리고 8억 원대 보험금을 타내려던 보험사기 미수 혐의다.
우선 복어피로 살인을 시도했던 살인 미수의 경우 이씨와 조씨와의 텔레그램 대화 등으로 인과관계 및 고의성을 입증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씨와 조씨의 핵심 혐의인 계곡 살인사건의 경우 치열한 법리적 공방이 예상된다. 이 사건 재판에서 유죄를 끌어내려면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이들이 받는 혐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일반 살인과는 구별된다. 일반 살인이 성립되는 구성요건의 경우 살해의 의도를 가지고 직접적인 행동을 통한 ‘작위’여부를 보지만,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위험한 상황에 빠진 누군가를 일부러 구조·구호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해 살해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를 말한다.
최장호 법률사무소의 최장호 대표 변호사는 “부작위범행이 성립하려면 작위 의무, 즉 구조활동을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물 속에 있었던 조씨에게 구조 의무가 있었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다만 윤씨가 자발적으로 폭포로 뛰어든 점, 이씨가 튜브를 구하러 간 행동, 조씨가 튜브를 던진 행동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 살인의 고의성이 있었다는 걸 입증해야 범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미필적 고의 포함, 살해의 고의성 입증돼야
고의성 여부도 쟁점이다.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행의 고의가 입증되어야 한다.
계곡 살인사건 이전에 발생했던 복어 피 살인 미수 사건 등에서 두 사람의 고의가 입증된다 하더라도 계곡 살인사건에서 두 사람의 주관적인 고의성은 별도로 판단된다.
두 사람이 입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고의성은 당시의 이들이 나눈 SNS 대화방과 목격자들의 진술 등 정황증거로 입증해야 한다. 또 강도 높은 수준의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면 미필적 고의라도 입증돼야 한다.
형법전에는 ‘미필적 고의’라는 용어는 없다. 그러나 법률의 합리적 해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개념이다. 미필적 고의는 완성되지 않은 고의를 말한다. 확정적 고의와 과실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미필적 고의란, 결과의 발생이 불확실한 경우 즉 행위자에 있어서 그 결과 발생에 대한 확실한 예견은 없으나 그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러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결과 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결과 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음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윤씨가 죽는 것까지 계획하진 않았다해도,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면 이들에게 미필적 고의가 적용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우리나라는 살인죄를 고의의 정도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같이 처벌한다. 확정적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처벌은 같다.
대법원은 세월호 사건에서 당시 선장이었던 이준석씨가 대피·퇴선 명령을 하지 않은 부작위가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트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동등하다고 평가했다. 충분히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해 그 결과에 이르게 했다는 미필적 고의를 확대 적용한 사례다.
부장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의성 입증을 포함해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면 재판에서도 큰 다툼이 없겠지만 현재 피의자들이 입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는 고의성과 행위의 인과성을 모두 검찰 측이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며 “구속 이후 두 사람의 입을 열기 위해 수사력이 모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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