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한국 경제가 ‘3고(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달 4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주요 선진국들의 물가가 30∼40년 만에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미리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취지로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우려했다. 인플레이션 악순환이란 고물가 현상이 임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자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물가 상승→임금 상승→‘또’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악순환 우려
25일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은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 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물가 상승세와 고용 회복 추세가 지속되면 올해 하반기 이후 임금 상승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경우에 따라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을 부추기고 다시 물가 추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통 물가가 오르면 생활비가 부족해져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지는데, 기업들이 높아진 인건비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해 다시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은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키고 경기회복을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한은이 총재 공석에도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로 올리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날 “물가 잡기에 총력전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배경이다.
이에 따라 한은이 물가 상승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한층 커지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 성장 둔화가 모두 우려되지만, 지금까지는 전반적으로 물가가 더 걱정스럽다. 따라서 통화정책 정상화 기조가 계속될 텐데, 다만 어떤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릴지는 데이터가 나오는 것을 보고 금통위원들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한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5월과 6월 잇달아 기준금리를 0.5%포인트씩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 것도 기준금리 인상 전망의 배경이 되고 있다.
문제는 18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기준금리 인상이 빚이 많은 서민층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경우,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대출자 1인당 평균 16만1000원씩 늘어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올 연말까지 13년 만에 7%대에 올라갈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입장에서 고환율도 점점 부담이 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10.8원 오른 달러당 1249.9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1243.5원에 출발해 장 마감 직전 1250.1원까지 오르며 지난 22일에 이어 2거래일 연속으로 연고점을 경신했다. 2020년 3월 24일(1265.0원)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 상승→ 생산자물가 상승→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창용 한은 총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 구분해야”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중장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25일 취임 후 첫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새 시대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어려운 것, 해서는 오히려 부작용이 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과거 국제통화기금(IMF)에 몸담으면서 한국 담당 직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언급하며 “한국 경제가 복잡하지 않던 과거에는 정부가 주도해서 산업정책을 세우고 문제도 해결하면서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며 “정부가 모든 일을 하려 하는데, 정부가 해서 부작용이 클 것 같은 부분을 지적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1일 취임식에서 이 총재는 “잘 달리던 경주마가 지쳐 예전 같지 않은데도 과거의 성공에 사로잡혀 새 말로 갈아타기를 주저하는 누를 범해선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세계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한 유일한 나라인데, 그 틀을 벗어나는 게 참 어렵다”고 말했다.
사례로는 고용 문제를 제시했다. 고용 문제에 있어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정부가 해도 괜찮겠지만, 고용창출 분야라면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 정부의 정책 결정이 공급자에 치우친 부분에 대해서도 향후 수요자 측면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경제정책뿐 아니라 교육정책에서도 대학생이 무슨 전공을 할 것인지,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꿀지에 고민할 때 공급자인 교사나 교수, 교육부 사람을 위한 정책인지 수요자인 대학생을 위한 정책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 1분기 실질 GDP 성장세 이어갈 수 있을까
한국은행은 오늘 ‘2022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를 발표한다. 분기별 성장률은 코로나19 발생과 함께 2020년 1분기(-1.3%)와 2분기(-3.2%)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3분기(2.2%), 4분기(1.1%), 2021년 1분기(1.7%), 2분기(0.8%), 3분기(0.3%), 4분기(1.1%)까지 6개 분기 연속 성장세를 유지했다. 코로나 확산이 정점에 이르고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친 올해 1분기에도 성장세가 이어졌을지, 성장률은 어느 정도 수준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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