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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살아있는 우아한 ‘여인들의 성’ [박윤정의 알로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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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07 09:00:00 수정 : 2022-05-04 19: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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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슈농소 성

앙리 2세가 사랑한 연인과 왕비 등
400년간 6명의 女 성주들 머물러
방마다 아름다운 가구와 꽃 장식
중세 요새 앙부아즈·클로뤼세 성
레오나르도 다빈치 ‘삶의 흔적’도
슈농소 성. ‘여인들의 성’이라 불린다. 르네상스 스타일 가구와 16·17세기 태피스트리, 회화 작품들은 물론이고 방마다 장식된 생화들이 오래된 건축물에 생명력을 더하는 듯하다.

루아르 강가를 따라 달린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은 가지 끝을 웅크린 채 바람 끝에 긴 밤을 떨친다. 프랑스 왕들의 유산을 만나기 위해 평화로운 마을 길로 들어선다. 앙부아즈 지역(DANS LA REGION D'AMBOISE) 여러 성 가운데 슈농소 성(Chateau de Chenonceau), 앙부아즈 성(Amboise), 그리고 클로뤼세 성(Chateau du Clos Luce)을 방문할 예정이다.

먼저 슈농소에 도착했다. 슈농소 성은 베르사유궁 다음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다양한 행사를 제공하고 있다. 티켓을 끊고 검색대 앞으로 가니 도도하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슈농소 고양이인가? 익숙한 자태로 관람객들을 아래위로 훑는다. 당황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검색원이 미소를 지으며 표를 스캔한다. 마스코트인 듯한 고양이의 안내를 받으며 성으로 들어선다.

슈농소는 ‘여인들의 성’이라 불린다. 프랑수아 1세 때 건축돼 훗날 앙리 2세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는 이 성을 부인이 아닌 사랑하는 애인 디안 드푸아티에(Diane de Poitiers)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앙리 2세가 사망하자 부인 카트린 드메디시스는 디안 드푸아티에를 밀어내고 슈농소에 젊은 왕의 권위를 세웠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화려함을 더한 파티를 제공하며 프랑스 왕국을 지휘했다. 앙리 3세 왕의 아내 루이즈 드로렌(Louise de Lorraine) 역시 홀로 된 뒤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슈농소 성은 이렇듯 4세기에 걸쳐 여섯 명의 여성 성주가 머물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성 내부 곳곳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다른 성과는 다르게 눈에 띈다. 르네상스 스타일 가구와 16·17세기 태피스트리, 회화 작품들은 물론이고 방마다 장식된 생화들이 오래된 건축물에 생명력을 더하는 듯하다.

슈농소 성의 내부. 곳곳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구와 장식이 눈길을 끈다.

슈농소 성의 박물관은 성의 역사와 성주들의 발자취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역사뿐 아니라 주변국 관계를 더듬어 보며 옛 기억을 되살려 본다. 건물을 나와 먼발치에서 성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겨울이라 정원의 아름다움이 더해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한적한 공원을 둘러보는 여유로움이 나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슈농소 미술관은 자유를 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됐다고 한다. 당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에 방문해 처음 들른 곳이기도 하다고 하니, 이곳 슈농소는 현대사에서도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세계대전 때 군 병원으로 개조돼 부상자를 치료한 슈농소, 성이 아닌 병원으로서의 기억은 현재 갤러리가 돼 남아 있다.

앙부아즈 성. 디지털 태블릿 기기인 히스토패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르네상스 시절 프랑스 왕들의 궁으로, 프랑스 르네상스 예술미를 엿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무덤이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슈농소를 벗어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앙부아즈로 향했다. 매표소에서 국적을 묻는다. 한국인이라 대답하니 디지털 태블릿을 내밀며 한국어 서비스를 사용하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처음 보는 기기인 히스토패드(Histopad)는 2019년 2월부터 제공된 서비스란다. 이동하는 장소가 태블릿 화면에 보이고, 화면을 탭하면 설명이 나온다. 현재와 과거 역사를 오가며 르네상스를 경험할 수 있으니 마치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는 듯하다. 이 성에 무덤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탄생 500주년(2019년) 기념 행사를 위한 서비스였을까? 누구나 쉽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어 오디오 가이드보다 훨씬 좋은 경험이었다.

르네상스가 시작되자 강력한 중세 요새인 앙부아즈는 프랑스 왕 샤를 8세와 프랑수아 1세의 통치 아래 왕실 거주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프랑스 르네상스 예술미를 엿볼 수 있는 뛰어난 가구 컬렉션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건물을 벗어나 위엄 있는 타워에 올라본다. 성 아랫마을과 루아르강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이룬다. 파노라마 전경을 비추는 정원에서 잠시 산책을 즐겨본다. 르네상스 시절 프랑스 왕들의 궁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무덤이 있는 장소로 유명한 앙부아즈 성을 떠나 클로뤼세 성으로 향한다.

클로뤼세 성.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삶의 마지막 3년을 그림과 작업으로 보낸 곳이라 한다.

클로뤼세 성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삶의 마지막 3년을 그림과 작업으로 보낸 곳이라 한다. 붉은 벽돌과 석조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축물에는 그가 사용한 주방, 서재, 그리고 전시실, 비밀 지하 통로 등이 있다. 거장의 작업장과 작업물을 보며 현대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기계들이 얽혀 과거와 현재가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이해하기 힘든 대가의 창작물을 감상하고 발명품들로 조성된 정원을 걸으며 석양을 바라본다.

어느덧 호텔로 돌아오는 길! 강을 따라 뻗어 있는 프랑스 최장 와인 루트다. 루아르 지역은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많이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투렌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인 지역 특산품이 포함된 요리를 경험하기로 했다. 와인 페어링 메뉴로 미식 세계를 접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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