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공여국 물색도 쉽지 않아…유통기한 연장 추진
방역당국이 남아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물량의 활용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백신 물량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지만 추가 접종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는 백신을 다른 나라에 공여하는 것도 생각해보고 있지만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당국은 화이자 백신 등의 유통기한을 3개월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중앙방역대책본부(이하 방대본)는 10일 0시 기준 국내 백신 잔여량이 1501만3000회에 달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물량은 화이자 790만6000회분, 모더나 334만6000회분, 얀센 198만6000회분, 노바백스 159만2000회분 등이다. 소아용 화이자 백신도 18만3000회분 남았다.
이날 하루 신규 접종자는 10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3차 접종은 매일 1만명 안팎이 접종하고 있어 그나마 접종률이 64.7%를 기록하고 있지만, 1·2차 접종은 이미 전체 인구의 87.8%, 86.8%가 완료했기 때문에 신규 접종자가 600, 800명대에 불과하다. 최근 고령층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4차 접종도 60세 이상 접종률이 20.8%일 정도로 저조한 상황이다.
백신 접종 속도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오미크론 유행 이후 감염자가 크게 늘면서 자연 면역을 갖게 된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반복 접종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으며, 부스터 샷까지 맞고도 돌파 감염되는 사례가 증가하자 백신 회의론이 퍼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당국이 코로나19로 인한 위·중증, 사망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여전히 접종을 독려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규제를 풀면서 접종 유인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방역당국은 백신 폐기를 막기 위해 지난달부터 관계부처 간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해외 공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마땅한 대상국을 찾지 못했다.
방대본 관계자는 “외교부를 통해 의향을 파악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접종률이 올라 예전 같지 않다”고 밝혔다. 의료 취약 국가는 냉장시설이 부족한 탓에 물량을 받아낼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연말까지 백신이 들어올 물량은 총 1억4190만 회분이다. 당국은 전량은 아니더라도 물량 일부의 도입 시점을 가급적 하반기나 내년으로 미루는 방안도 제약사들과 협의하고 있다.
방대본 관계자는 “제약사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는 거라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긴 어렵지만 가급적 지연 도입하는 방향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국은 하반기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해 접종 물량을 어느 정도는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변이주로 만든 개량 백신이 나온다면 사전에 계약한 물량을 새 물량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당국은 폐기량을 줄이기 위해 또 다른 선택지인 유통기한 연장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국 관계자는 “화이자의 국내 유효 기간은 현재 9개월인데 해외에선 12개월로 연장해 쓰고 있다”라며 “국내에서도 제약사 허가 변경 신청이 들어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이자는 당초 6개월로 허가 났다가 9개월로 한차례 연장됐고 추가로 3개월 더 늘리는 걸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거쳐 허가가 변경되면 새로 수입되는 물량부터 적용하게 되지만 기존 도입 물량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 가능할지 질병청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법적으로 소급은 어렵지만, 자료를 가지고 변경 허가하는 거라 (자료와) 비축된 로트(제조단위)가 같고 같은 제조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제조한 것이라면 과학적으로는 별문제가 없다”이라고 설명했다.
모더나 백신도 현재 7개월로 허가가 나 있는데 해외에서 9개월까지 연장하고 있어 제약사 신청이 들어오면 심사할 예정이다.
남아도는 백신 처리를 두고 골머리를 앓는 건 우리나라만의 얘긴 아니다. 미국 ABC뉴스는 최근 50개 주에서 수백만 도즈 백신이 이미 버려졌거나 몇주, 몇달 안으로 유통기한이 만료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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