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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곤충을 분석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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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23 23:39:43 수정 : 2022-05-23 23: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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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충남 아산에 위치한 경찰수사연수원 뒷산에는 돼지사체 6마리가 쿰쿰한 냄새를 뿜으며 널브러져 있었다. ‘왜 돼지가 야산에서 죽어 있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이곳은 엄연한 야외실습장이다. 돼지사체에서 나오는 곤충 종들을 관찰하는 부패실험이 진행 중인데, 이를 토대로 곤충의 성장데이터를 만든다. 야외실습장을 소개해준 법곤충감정실 오대건 보건연구사는 “여기도 어찌 보면 보디팜”이라며 웃어보였다. 보디팜은 시체가 부패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일종의 ‘시체농장’이다.

이 야외실습장은 경찰청 법곤충감정실에서 일하는 2명의 보건연구사가 관리한다. 법곤충감정은 시체에서 발견한 곤충들로 사람의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과학수사기법으로, 한국에선 다소 생소한 영역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엔 이미 보편화해 있다. 미국과 독일의 일부 대학엔 법곤충학 석·박사 과정이 운영 중이고, 미국엔 법곤충학위원회(ABFE)도 있다. 한국 경찰청은 이런 추세에 발맞춰 지난 17일 법곤충감정실을 개소했다. 법곤충감정이 고도화하면 오래되거나 이미 부패한 시체도 정확한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희진 사회부 기자

이곳에서 만난 오 보건연구사와 이현주 보건연구사는 개소 첫 주차임에도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개소한 지 4일 만에 벌써 6건의 의뢰가 들어왔고, 또 다른 의뢰 2건도 곧 접수될 예정이라고 했다.

법곤충감정의 기본적인 방식은 이렇다. 사건현장에 출동한 과학수사 담당 경찰관이 시체에서 파리 유충으로 추정되는 구더기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경찰관은 발견한 구더기를 우선 끓는 물에 넣어 살짝 데친다. 이후 구더기를 70도 알코올에 넣어 법곤충감정실에 보낸다. 일련의 과정은 현장에서 발견한 곤충이 더 이상의 성장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사건현장의 구더기를 받은 연구사들은 연구실 내 형태분석실에서 우선 구더기가 어떤 분류의 파리 유충인지 분석한다. 현재 법곤충감정실은 3개과(띠금파리과, 금파리과, 검정파리과) 31종에 대한 성장 데이터를 보관 중이다. 해당 유충이 만약 띠금파리과로 판정나면 바로 옆 유전자(DNA) 분석실로 옮겨가 구체적으로 어떤 종인지 분석한다. 확인이 끝나면 그때서야 성장데이터를 토대로 언제 시체에 파리가 알을 낳았는지 추정한다. 분석기간은 보통 7~10일 정도다.

법곤충감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장데이터를 축적하는 일이다. 하지만 성장정도가 각 종별로 다르고, 같은 종이어도 온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니 데이터 구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 보건연구사는 “20도, 21도, 22도 등 특정 온도에서 곤충들이 성장하는 발육정도를 데이터화한 게 성장데이터”라고 설명했다.

세상엔 억울한 죽음이 많다. 망자의 사인이나 사망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죽음들이다. 법곤충감정학을 통해 사망시기를 추정하면 용의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것도 용이해진다. 법곤충감정이 장기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조만간 법정에서 “증거순번 1번으로 법곤충감정 보고서를 제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검사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희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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