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 중 법인세 비중 26% 전망
돈 쓸 곳은 많은 데 수입은 줄어
향후 세수 여건 악화 가능성 커
국가채무 사상 첫 1000조 돌파
복지서 지출 죌 땐 불평등 심화
“분배문제 우려 해소돼야” 지적
입법 과정 상당한 진통 예상돼
정부가 16일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은 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감면하고, 상속세 납부유예를 신설하는 등 세 부담을 줄이고 각종 규제를 걷어내 ‘기업 투자 확대→일자리 창출→근로자 소득 개선→경기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감세 정책이 재정 건전성 강화 기조와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국세 수입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향후 세수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 등 재정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해관계자 반발 등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 속 경기침체) 우려로 투자 환경이 악화하고 있어 법인세 인하가 기업 투자와 고용 창출로 이어지는 부분에도 변수가 많다는 분석이다.
◆세수 줄어드는데 재정 건전성 확보 가능할까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편성된 사상 최대 규모(62조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은 29조1000억원에 달하는 법인세 초과세수 등이 밑바탕이 됐다. 올해 세목별 전망치에서도 법인세는 104조1000억원으로 추산돼 총 국세(396조6000억원)의 26%에 달했다. 또 정부가 납부유예제도 도입 등을 통해 감면을 시사한 상속증여세도 15조9000억원으로 전망됐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 감면 등은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병장 월급 205만원 인상 등 국정과제 이행에만 209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쓸 돈은 많은 데 세입 여건은 축소돼 재정 건전성 추진과 관련해 ‘정책 엇박자’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 4월 말 기준 중앙정부채무 잔액은 1001조원으로 집계돼 사상 처음으로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서는 등 재정 여건은 악화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계속 상승하면 10년 뒤 국가신용등급(무디스 기준)이 한 단계 강등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에 대해 의무·경직성 지출을 강력히 구조조정하고 민간투자 활성화 등 재정혁신 방안을 통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지출 구조조정 등 예산 삭감 작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문재인정부를 비롯해 대부분의 정부는 정권 초반 지출 구조조정을 거론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해관계자, 정치권 등의 반대 때문이었다. 실제 이번 2차 추경 때도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은 6조8000억원에 그쳤다. 특히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이 복지 사업에 집중될 경우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출 구조조정도 국민 복지나 후생과 관련된 것들은 공무원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해야 하는 만큼 (재정 혁신 과정에서) 많은 저항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수 감소에 따른 분배 문제 우려 해소돼야”
법인세 인하의 효과가 예상만큼 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법인세 인하를 통해 기업의 투자·고용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세수도 증가해 재정 건전화를 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통화긴축으로 상당히 위축되는 등 기업 투자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명박정부 당시에도 투자 증대를 기대하며 법인세를 인하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란 악재를 만나 기업의 사내유보금만 늘어났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기업 사내유보금은 2009년 전년 대비 72조4000억원,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9조4000억원, 165조3000억원 늘었지만 투자 규모를 나타내는 총고정자본형성(민간부문)은 2009∼2012년 4년 동안 23조1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아울러 투자 등에 쓰이지 않는 소득의 20% 세액을 법인세로 추가 납부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 폐지 방침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 제도가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고 형벌적인 조세로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대기업에 집중되는 부의 일부라도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분배하고자 하는 제도의 취지를 망각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감세를 통해 세수가 늘어나야 하는데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면서 “세수 감소는 분배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제시된 대책 상당수가 입법 사안이란 점에서 국회 논의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당장 국회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에 반대하고 있다. 세법 외에 각종 규제 완화 관련 법안, 근로 시간 제도 개선 법안, 재정준칙 법안, 새 서비스산업발전법 등도 국회 처리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CEO 형사처벌 대신 과징금 물린다
정부가 기업의 경영 활동 위축을 막기 위해 경제법령상 형사처벌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는 등 보완작업에 착수한다.
16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정부는 경제법령상 형벌이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도록 행정제재 전환, 형량 합리화 등을 추진한다.
기업이 경제 관련 불법을 저질렀을 때 경영자에게 징역이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대신 법인에 시정조치·과징금을 물리는 쪽으로 개정하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인 대상 법령은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발굴하기로 했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해외에서는 기업 자체에 대한 과징금 등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겠다는 것”이라며 “CEO에게 형사벌을 주려고 하다 보니 (처벌의) 실효성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그동안 형사처벌 조항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법 위반 행위를 과도하게 범죄화하면 기업의 경영 활동이 위축되고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다만, 형사처벌을 행정제재로 전환하려면 대부분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외에 기업 관련 규제도 재정비한다. 시장지배적(독과점) 사업자의 연매출액·구매액 기준은 국내총생산(GDP) 규모 증가 등을 고려해 2007년 만들어진 현행 기준(40억원 이상)보다 높인다.
대기업집단 규제 대상이 되는 동일인(총수)의 친족 범위는 축소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에서 예시한 대로 혈족의 범위를 현재 6촌에서 4촌으로, 인척 범위는 4촌에서 3촌으로 각각 바꾸는 방안이 유력하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는 우선 시행령을 개정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문가 TF를 통해 처벌 규정, 작업 중지 조항 등과 관련한 현장 애로와 법리적 문제점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중대재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법 개정을 통해 경영책임자 처벌 수위를 낮추는 문제도 향후 논의될 전망이다.
◆초과근로시간 모아 유급휴가로 활용 추진
정부가 ‘주52시간 근로제’에 묶여 있는 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화하고,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고령화·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고, 육아휴직기간을 1년에서 1년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주52시간 근로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노사 합의를 기반으로 운영 방법과 이행 수단을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초과근로시간을 저축해 유급휴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독일식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인 1개월을 현행보다 확대해 성수기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재계는 현행 근로시간제가 1950년대의 집단적·획일적 공장 근로를 전제로 설계된 것이라며 개선을 요구해 왔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다양한 근로 형태의 근로자들과 기업들이 산업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근로시간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철밥통’으로 불렸던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도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한다. 정부는 ‘일터 혁신’ 컨설팅 사업 등을 통해 사업체 특성에 맞는 합리적 임금·평가 체계 도입을 지원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 세부 대책이 나올 전망이다.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기초연금은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되, 국민연금 개편과 연계하기로 했다. 저출산 대책으로는 내년 1월부터 부모급여가 도입된다. 육아휴직기간은 1년에서 1년6개월로, 배우자 출산휴가기간도 현재 10일에서 더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생계급여 선정 기준은 기준중위소득 30%에서 35%로 상향 조정하고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도 완화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
한편, 교육 분야에서는 유·초·중·고교 교육에 쓰이는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맞게 일부 예산을 대학으로 돌리는 방안이 추진된다. 또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 양성을 막는 규제를 개선하고 교육시설 확충, 실습장비 고도화 등을 통해 첨단분야 정원을 확대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대학평가는 자율계획에 따른 선(先)지원 후(後)관리 방식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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