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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탱크에 라면봉지 넣자 기름 콸콸… 리사이클링에 ‘날개’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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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8 06:00:00 수정 : 2022-06-28 09: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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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도 이상 ‘원통 반응로’서 폐비닐 처리
4t 넣으면 최대 80% 열분해유로 재탄생
불순물 걸러내고 플라스틱 원료로 재활용

LG화학 등 대기업들 잇따라 사업 진출
새정부도 수천억 지원 약속, 성장 기대감
“시설 규모화·기술 투자 등 더 이뤄져야”
뉴에코원 공장 엔지니어가 열분해유를 만들어내는 반응로를 시험 가동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 제공

플라스틱은 20세기 초 발명돼 한때 ‘인류 최고 발명품’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 삶의 질을 높여왔다.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고 잘 부패하지 않는다는 장점은 많은 분야에서 인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꿔놨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초래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5일 세계 환경의 날에 공개한 보고서에서 “2019년 3억5300만t이던 플라스틱 쓰레기가 2060년에는 10억1400만t으로 3배가량 늘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에 따르면 한국인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1인당 연간 88㎏으로 미국과 영국에 이은 세계 3위다.

 

최근 국내 기업들은 플라스틱 순환 경제 구축을 위한 ‘플라스틱 열분해’ 기술 개발과 투자에 속속 나서고 있다. 열분해는 폐비닐 등 재활용이 어려운 폐플라스틱을 첨단 기법을 통해 석유화학 제품 원료로 재생산하는 기술이다. 폐플라스틱을 소각하지 않고 ‘재탄생’시킨다는 점에서 탄소중립 실현의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환경 규제와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여러 기업이 뛰어들고 있는 열분해 기술은 어디까지 왔는지, 그 가치와 미래 및 보완점 등에 대해 알아봤다.

 

◆라면봉지 더미에서 기름이 콸콸

 

27일 기자가 찾은 인천 서구의 열분해 전문기업 에코크레이션 뉴에코원 공장. 군고구마 기계를 연상시키는 지름 2m의 커다란 원통형 반응로가 한눈에 띄었다. 400도 이상 온도로 작동 중인 반응로에 가까이 다가서니 새빨간 불꽃이 보이는 틈새로 열기가 후끈 올라왔다.

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공장으로 오는 라면봉지, 포장지 등 폐비닐 더미가 하루 4t씩 반응로 안에 들어간다. 폐비닐에 높은 열을 가해 기화시킨 뒤 화학 반응을 거쳐 오염 불순물까지 뽑아내면 열분해유가 나온다. 여기에 최종 후처리 과정을 거치면 열분해유를 플라스틱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 반응로에서 기다랗게 이어져 나온 파이프를 보니 우리가 아는 연노란색의 기름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에코크레이션 관계자는 “어떤 폐비닐을 넣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넣은 양(4t)에서 60∼80% 정도가 열분해유로 나온다”고 말했다.

 

에코크레이션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 SK지오센트릭의 협력 업체다. SK지오센트릭은 지난해 에코크레이션과 폐플라스틱 열분해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투자에 나섰다. SK지오센트릭이 환경부로부터 인증받은 열분해 재활용 방법론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 1t을 처리할 때 소각하지 않고 열분해해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최대 2.7t가량이다. 사측은 2025년까지 울산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조성해 연간 열분해유 15만t(투입 폐플라스틱 약 20만t) 후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경우 연 40만∼50만t의 이산화탄소 감축을 인정받게 된다. 승용차 약 19만대가 한 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이다.

 

열분해에 뛰어드는 다른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LG화학은 2024년까지 충남 당진에 열분해유 공장을 연산 2만t 규모로 건설할 예정이다. 공장이 가동되면 열분해유 제품 검증과 향후 시장 상황 분석 등을 통해 공장 증설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대케미칼은 이달부터 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료로 친환경 제품 생산에 나서고 있다. 화장품, 생활용품 업체와 함께하는 친환경 용기 생산을 시작으로 관련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뉴에코원 공장에 라면봉지 등 각종 폐비닐 더미가 1t 묶음씩 쌓여 있는 모습.

◆2026년까지 ‘열분해율 10%’ 목표

 

새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과제로 플라스틱 순환 경제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윤석열정부는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재활용을 통한 순환 경제 완성’을 정하고 주관 부처로 환경부를 선정했다.

 

정부는 복합재질 등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을 재생 원료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열분해를 활용하고, 재활용 선별 시설에 광학 선별기(플라스틱 자동 선별기) 설치를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원료·연료화 재활용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데 수천억원의 국고를 투입하는 등 정책적 지원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밖에 폐플라스틱 열분해를 통해 석유·화학제품 원료, 수소 연료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법적 기반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폐플라스틱 열분해, 유기성폐자원의 바이오가스화 등 탄소중립을 위한 도전적인 재활용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의 최종 목표는 국내 폐플라스틱 열분해율을 2026년까지 10%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율은 2020년 기준 0.9%였다. 2030년까지 열분해율 10%를 달성하겠다던 지난 정부 계획보다 4년을 앞당긴 목표다.

반응로를 거쳐 나온 파이프에서 연노란색 기름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

미국과 유럽 국가 등 세계적으로도 플라스틱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에서 관련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전세계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 시장은 2021년 455억달러에서 2026년 650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2020년 폐플라스틱 추출 열분해유를 기준으로 70만t 규모였던 전세계 화학적 재활용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 2030년엔 330만t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시설, 폐플라스틱 선별 인프라 구축은 과제

 

여러 기업들이 뛰어들고 정부도 지원을 약속했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 대기업의 꾸준한 투자, 플라스틱 수거 체계 개선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순환시킨다는 최종 목적을 생각했을 때 열분해 시설의 규모화와 기술에 지금보다 더 투자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폐기물 선별·공급엔 중소기업의 역할이 있지만, 원료화까지 열분해 전체 공정을 감안하면 효율성을 위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현재 중소기업들의 대응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 대규모 시설 및 기술에 대한 대기업의 지속적 투자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국내 플라스틱은 복합 재질이 많은데 제대로 된 수거·선별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아 양질의 폐플라스틱을 얻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홍 소장은 “선별이 제대로 되지 않은 플라스틱을 집어넣게 되면 열분해에서 생성되는 결과물도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잘 선별된 플라스틱을 어떻게 조달할 건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SK지오센트릭 연구원이 열분해 후처리유를 보여주고 있다. SK지오센트릭 제공

◆美 일회용 사용제한, 英 포장세… 국제사회 ‘플라스틱과의 전쟁’

 

세계 주요 국가들의 탈플라스틱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적극적인 투자와 규제 도입으로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고 재활용 비율을 높여 순환 경제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다.

 

미국은 최근 플라스틱 재활용 인프라에 연방 차원의 투자에 나서는 한편, 주(州) 정부마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제한 등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27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국제사회 플라스틱 규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1월 제정된 인프라 투자 및 고용법에서 플라스틱 등 폐기물 재활용 인프라 개선을 위한 3억5000만달러 예산을 포함시켰다. 재활용 인프라 보조금 2억7500만달러 외에, 소비자 대상 재활용 교육에 7500만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 제한하거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사용 후 발생하는 폐기물 재활용까지 생산자 책임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주 정부도 늘어나고 있다. 캘리포니아·하와이·뉴욕·코네티컷·메인 주 등은 일회용 플라스틱 비닐 사용에 대한 규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메인·오리건 주에서는 미국 최초로 플라스틱과 포장재 물질에 대한 EPR 법안이 통과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의 유럽 주요국 탈플라스틱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올해부터 플라스틱 포장세를 도입했다. 재생 플라스틱이 30% 미만 포함된 포장에 대해 당 200파운드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포장산업에서 재활용 플라스틱 활용을 40% 이상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2020년부터는 의료 및 요양 목적 외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플라스틱 생산자의 환경 기여도에 따른 분담금 보너스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재생 플라스틱이 아닌 플라스틱을 사용한 제품 생산자에게는 환경 분담금을 추가로 부여하고, 친환경 제품 생산자에게는 보너스를 부여해 환경 분담금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나아가 이와 관련한 세부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해 해당 제품 구매에 영향을 미치도록 했다.

 

독일의 경우 최초 플라스틱 포장재 제조사는 유통 전 중앙 관할 기관에 관련 데이터를 신고해야 한다. 제조사가 폐플라스틱을 적절하게 폐기 처분하는 데 책임을 지도록 한 조치다. 또 올해부턴 플라스틱 포장재 재활용 의무화 비중을 63%로 높였다. 2025년부터는 일회용 플라스틱 음료수병에 최소 25%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곽은산 기자 silv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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