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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얇은소설] 음악은 시끄럽고 무거운 말에 대한 새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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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01 22:52:56 수정 : 2022-07-01 22: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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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하는 청소부의 ‘세계 초연’
진심과 위트와 깊은 울림 담겨

얀 마텔,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에 수록,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대표작은 2002년에 부커상을 받고 이안 감독이 영화로도 만든 ‘파이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얀 마텔이 “내게는 세계 초연의 기쁨과 흥분을 간직한 작품”이라며 애착을 표현한 소설집이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그 소설집에 두 번째로 수록된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인데, 이후로는 지면상 <랭킨 협주곡>이라고 줄여서 표현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작가 얀 마텔을 좋아할 기회를 거의 놓칠 뻔했다.

조경란 소설가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는 ‘나’는 워싱턴에 사는 고교 동창생을 만나러 워싱턴에 온다.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는 친구는 바빠서 나는 혼자서 도시를 구경하다가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의 이발소 창문에 붙은 안내문을 본다. 메릴랜드 월남 참전용사들이 바로크 실내악 앙상블을 공연한다는 내용엔 이런 문장도 있었다. “그 외에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이 세계 초연됩니다.” 음이 안 맞는 바이올린과의 협주가 무엇일까. 내가 그 음악회에 관심을 가진 건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프닝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공연은 철거 중인 극장에서 열렸다. 관객석마저 줄줄이 뜯겨 있어 플라스틱 접의자를 놓고 앉아야 하는. 턱시도를 입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등장하고, 그들은 알비노니 협주곡 B플랫부터 연주하기 시작한다. 연주자들이 활을 현에 대는 순간 내 귀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진짜 ‘음악’이 나를 해일처럼 덮치면서 나는 음악이 생각이 되고 솟구치는 아름다움과 경이가 되는 경험을 하며 “음악은 시끄럽고 무거운 말에 대한 새의 대답”이라고까지 여기게 된다.

드디어 오늘의 주 프로그램인 랭킨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존 모턴이 무대에 오른다. 그의 연주에 나는 삶의 고민과 어리석은 소리가 밀려나며 “음악 때문에 내 영혼이 나와 공중으로 솟았다가 내려오는” 숭고한 감각을 느낀다. 긴장 상태였던 존 모턴이 그 곡을 끝까지 연주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그 실수마저 인간적으로 느껴지며 완벽한 미와 거기서 파생된 무시무시한 슬픔에 빠져버렸다. 그에게 꼭 당신의 작곡과 연주가 얼마나 훌륭한지 말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존 모턴을 뒤쫓아간다. 존 모턴이 간 곳은 밤의 텅 빈 은행이었고, 그는 그곳의 청소부였다. 이제 나는 존 모턴을 도와 은행의 수많은 전화기와 책상을 닦으며 그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나는 여기에 다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음악하는 청소부’ 존 모턴이 하는 말들은 다 왜 아픈 걸까. 예를 들어 그가 이런 말을 할 때. “젠장, 연주를 제대로 해야 했는데”라거나 자신이 11년째 근무한 이 은행 휴게실에 음악회 포스터를 붙이면서 이름에 밑줄도 긋고 ‘세계 초연’이라는 수식어도 붙였는데 은행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말도. 자신은 곡에 항상 사람 이름을 붙인다는 고백은 더욱 그렇다. 그는 타인을, 타인이 자신에게 준 것을 잊지 않는 작곡가인 것이다.

그를 만나고 캐나다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존 모턴이라는 미국 작곡가’의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나는 법대에 입학했다. 그러다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쳇바퀴 돌 듯 살다 보면 어느 날 창밖에서 자신을 보는 한 남자가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왜 자신에게 더 요구하지 않지?’라고 묻는 듯한 눈으로.

자신이 믿는 것을 향해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훌륭하고 강한 아름다움”을 가진 줄 모르는 사람들.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얀 마텔은 진심과 위트와 깊은 울림을 담아 이 단편에 그려냈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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