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발생 초등학교 앞 국화·추모편지 가득 쌓여
운전자 A씨, 구속됐지만 ‘민식이법’ 적용 못해
학부모 “굴착기라고 적용 안된다니…법에 허점”
“소현아,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랄게”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의 한 초등학교 앞. 내리쬐는 밝은 햇볕과 달리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얼굴엔 먹먹한 슬픔이 가득했다. 지난 7일 오후 4시쯤 이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 소현(11·가명)양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굴착기(포클레인)에 치여 숨졌다. 소현양과 함께 길을 건너던 친구 한 명도 다쳐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이날 사고 현장 앞에 마련된 조그만 추모 공간을 찾은 이들은 “하늘도 참 무심하다”며 짧은 생을 마감한 소현양을 위해 묵념했다. 이곳에는 추모객들이 놓고 간 국화꽃과 추모 편지, 과자와 음료수, 인형 등이 가득했다. 소현양이 평소 좋아했다던 김치볶음밥도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생들이 삐뚤빼뚤 쓴 추모 편지에는 “언니 많이 아팠지? 한늘나라(하늘나라)에서 아프지마. 기억할게”, “누나 안녕. 나는 같은 학교 다니는 동생이야.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랄게”, “소현아,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하늘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 이루길 바랄게” 등의 내용이 담겼다.
소현양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검은 옷을 입고 온 황은유군은 “소현이와 다친 친구, 둘이 항상 포켓몬빵을 사러 편의점에 와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며 “그날(사고 당일)에는 소현이가 안 왔다. 항상 그 자리에서 만났는데 ‘왜 오늘은 안 오지’라고 생각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소현양과 1학년 때부터 친구였다는 김가영양은 “너무 슬프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에 계속 오고 있다”며 “함께 놀 때 잠깐 다툰 적이 있는데 자꾸 그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프다.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가영양과 함께 온 한 학생도 “소현 언니가 하늘나라에선 포켓몬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영양이 들고 온 비닐봉지에는 소현양과 평소 사먹었다던 과자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인근 중학교에 다닌다는 홍지원(15)양은 “학교 앞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방금 이곳을 오는 중에도 한 차량이 초록불인데도 그냥 지나가는 것을 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어른들이 심각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며 “사고를 낸 운전자도 꼭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현양이 숨을 거둔 곳은 학교 정문에서 불과 3m도 벗어나지 않은 어린이보호구역이다. 굴착기 운전자 A(50)씨는 신호를 위반하고 소현양를 쳤지만, 사고 후 별다른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다. 그 사이 소현양은 병원에 가지도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를 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상) 및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날 구속됐다.
하지만 경찰은 ‘민식이법’을 적용하지 못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치사·상 사고의 경우 가중 처벌이 가능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이른바 민식이법이 적용되지만, 굴착기의 경우 이 법이 규정하는 자동차나 건설기계 11종(덤프트럭 등)에 포함되지 않아 적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민식이법 적용이 안 된다는 소식에 “법에 허점이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이 학교 학부모라는 윤희선(38)씨는 “아이들 하교 시간에 사고가 나 목격한 학생들이 꽤 된다”며 “소현이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해 사고 이후 단축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너무 불안한 마음에 아이 등하굣길을 더 신경 쓰고 있다”며 “굴착기라고 민식이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황기열(41)씨도 “매번 학부모들이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고, 녹색어머니회가 횡단보도에서 도움을 준다고 해도 상시 대기하는 것도 아니니 운전자들이 조심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사고 난 건널목이 커브길로 돼있다 보니 더 신경을 써서 주행해야 하는데, 예외가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황씨는 “사고 현장에 불법주정차 단속 폐쇄회로(CC)TV도 학부모들 요구에 지난해에야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법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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