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투자 위축 결국 학생들이 피해
경쟁력 제고 위해 재정지원 급선무
수도권대학 정원 규제 풀면 쏠림 심화
지방대학 충원율 낮아져 고사 불보듯
학사체계 개편 등 정원內 조정 바람직
홍원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경북대 총장)은 최근 정부가 밝힌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 방침,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 개편 방안 등에 대해 묻자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교협은 전국 4년제 대학 199개가 모인 협의체로, 홍 회장은 올해 4월부터 대교협을 이끌고 있다. 교육부에 대학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대학 교육 발전을 함께 모색하는 ‘협력자’이자 ‘동반자’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고등교육 관련 정책들은 대학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과 12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홍 회장은 “현장에서 예측이 안 되는 교육정책은 탈이 난다”며 정부가 대학의 현실과 고충을 직시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홍 회장과의 일문일답.
―정부는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 정원 규제를 푼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반도체 인재 양성’ 특명 후 교육계가 반도체로 야단법석인데 우선 실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학부 수준인지, 대학원 수준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현재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력은 석·박사급 고급인력이다. 학부생만 많이 양성하면 정작 기업에서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 학부생들은 어디로 취업하나. 일자리 미스매치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양적 확대보다는 질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금 반도체 관련 학과들은 기업이 쓰던 중고 장비 가져와서 교육하고, 교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열악한 상황이다. 기업의 박사급 전문가는 수억원 받는데 지방 국립대 교수 연봉은 수천만원 대다. 누가 오겠나. 정부가 교수 채용, 장비 구입을 지원해야 한다. 반도체 학과를 운영 중인 대학들은 정원 확대보다 투자가 급하다고 하고, 기업도 학부생 확대엔 시큰둥한 상황이다.”
―모든 대학에 장비 등을 지원하는 것은 어려울 텐데.
“예산 문제 때문에 모든 대학을 똑같이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역별로 몇 개 대학을 묶어 장비를 공유하고 함께 연구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안 하면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은 실패한다.”
―비수도권 대학은 특히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 같다.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풀면 비수도권 대학으로 갈 인원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빈 인원은 어디에서 채우나. 비수도권 대학에 정원은 생존이 걸린 절박한 문제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정원을 꼭 늘려야 한다면 수도권의 각 대학이 현재 정원 내에서 학과 개편 등을 통해 조정하는 것이 맞다.”
―특정 분야 인력이 필요하다는 산업 논리에 따라 정원을 늘리는 것은 대학 교육의 본질과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면 ‘돈 되는’ 산업의 인력을 기르는 식으로 인력 양성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인재 양성 이전에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기술혁명의 최종 지향점은 ‘인간’이고, 고도의 기술을 통제하고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인문학이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같은 속도로 성장하고 동등하게 융합될 때 우리가 진정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신입생 충원율은 수도권 95.7%지만 호남제주권 82.2%, 충청권 81.8% 등 비수도권은 충원율이 매년 떨어지고 있다. 지방 대학의 위기는 지역소멸로 이어지고, 지역소멸은 곧 국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지방대 위기는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수도권 대학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다. 비수도권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지역 산업체에 입사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대학-지자체-산업체 연계 강화 정책이 필요하다. 지방대학이 지역 회생의 거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이 과잉 상태인 만큼 부실 대학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구조조정 필요성에 동감한다. 비수도권 대학 중 폐교 위기에 직면한 한계대학도 늘고 있다. 일부 대학은 가족을 입학시켜 등록금을 내게 한 뒤 교육부가 충원율을 집계하고 나면 퇴학시켜 등록금을 빼가는 편법도 저지르는 상황이다. 학교를 접고 싶어도 잔여 재산이 국고로 환수되는 것이 두려워 못 접는 곳도 있다. 회생이 어려운 대학은 사회기여도 등을 따져 국고 환수율을 정하는 등 퇴로를 열어주는 한계대학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줄초상’ 난다.”
―등록금을 인상해야 하는 이유는.
“반도체 인재 양성, 지방대 위기와 등록금은 모두 실타래같이 얽힌 문제다. 인재를 양성하려면 돈이 들고, 결국 등록금 올려야 한다. 그래야 우수한 교수 확보하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만들 수 있다. 등록금은 그대로 두고 인재를 양성하란 것은 말이 안 된다. 현재 등록금 수입이 적어 대학이 교육에 기본적인 투자도 못해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비단 지방대 이야기만은 아니고,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대학들이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되고 있다.”
―등록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큰데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현재 국가장학금 지원사업으로 국공립대학은 2013년, 사립대학은 2016년에 ‘반값등록금’이 실현된 상태고 장학금 받는 학생 비율도 높다. 등록금이 인상되더라도 최근 3년간 물가 인상률 평균의 1.5배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학생들의 거부감이 있지만 대학 교육 질이 높아지면 결국 혜택은 학생에게 돌아간다. 대학의 어려움을 알리고, 등록금 인상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면 거부감도 낮아질 것으로 본다. 앞으로 정부, 국민과 소통하고 대학 현실을 알리겠다.”
―정부는 등록금 인상 대신 유·초·중·고에만 쓰이던 교부금 중 일부를 대학에도 쓰는 식으로 교부금을 개편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올해 교부금이 81조원 걷혔는데 교육부 설명대로라면 그중 3조6000억원가량이 대학에 지원되는 것이다. 많지 않은 액수인데 이걸 내세우고 등록금 인상 얘기는 쏙 들어가 안타깝다. 그 와중에 교육청은 왜 자기들 돈을 빼앗아가냐고 반발하고 있다. 대학도, 교육청도 모두 불만인 방안이다.”
―교부금 개편 외에 대학이 원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의 고등교육 투자는 매우 부족하다. 지난해 경제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초·중등학교보다 낮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고, 올해 교육부 예산 중 고등교육 예산은 14.2%에 불과하다. 교부금을 놓고 대학과 교육청의 싸움을 붙일 게 아니라 고등교육재정지원특별법 등을 제정해서 따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 교육부 폐지설이 나왔다. 당시 인수위에 교육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아는데, 왜 폐지설이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고등교육 현안 대응에 대한 불만도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대학은 재정과 규제 등 현안 문제 해결을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국가 차원의 교육은 유·초·중등 교육에서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종합적으로 아울러야 한다. 교육부가 미흡했던 점은 있지만 교육부의 기능과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임기 중 꼭 추진하고 싶은 역점사업은.
“학령인구 급감, 등록금 동결 정책 등으로 20여년 전부터 대학의 위기를 언급해 왔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교협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고등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재정 지원의 안정적 확보 △대학의 자율성 보장 및 대학 혁신을 유도하는 제도 개선 △지역균형발전의 구심점으로서의 대학 역할 수행을 위한 정책 제언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앞으로 정부, 지역사회, 국민들과 소통하며 고등교육 전반의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교육부와 대교협 회장단의 정례회의를 교육부에 건의하고, 다양한 의견을 전달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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