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학대 피해 장애인 총 1008명
이들 보듬는 쉼터 정원은 129명 불과
기관별 최소 4명∼최대 8명 인원제한
일부 지자체 정부 쉼터 공모 ‘모르쇠’
아동들, 성인 장애인과 생활 애로도
복지부,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해
2021년 17개 지자체 상담원 총 62명뿐
‘업무 과중’ 이직률 2년 새 14.1%p ↑
상담인력 한계, 피해 구제 엄두 못내
신해 충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
예산·인력 부족탓 장애인 지원 어려움
예방·보호 위해 정부·유관기관 지원을
#강원 춘천시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B(39)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 2월9일부터 5월20일까지 춘천시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아이스크림과 콜라 등을 훔쳤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과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지 못해 사실상 방치, 노숙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수사 과정에서 B씨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처벌보다는 B씨를 돌볼 수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하거나 치료가 더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A씨는 가족들의 반대로 시설에 입주하지 못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A씨는 결국 구속된 후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을 석방해 사회 내 처우를 하는 것은 피고인이 다시 노숙생활로 돌아가 재범하도록 방치하는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학대피해 장애인 증가… 보호시설은 제자리
보건복지부가 2021년 발간한 ‘2020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학대피해를 입은 장애인만 총 1008명에 달했다. 잠재적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례 등을 합하면 피해 규모는 더욱 크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피해자 수는 2018년 889명에서 2019년 945명, 2020년 1008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는 복지부 내부 검토를 거쳐 올해 9월 공개된다.
확인된 학대피해 장애인만 1008명이지만 이들을 긴급하게 보호할 학대피해 장애인 쉼터는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15개 광역자치단체에 단 한 곳씩만 설치됐다. 수용인원도 시설 한 곳당 많게는 8명, 적게는 4명이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5월 기준 서울과 대전, 부산, 대구, 울산, 세종, 경북 등 지역은 수용률이 50%를 넘었다. 대전의 경우 수용률이 90%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쉼터 수용인원이 0명으로 집계된 전남 지역의 경우 장애인 쉼터 운영 법인이 갑자기 변경되면서 쉼터 운영이 약 5개월간 중단됐다. 쉼터 운영이 중단된 기간 동안 학대피해 장애인들은 타 지역이나 인근 단기보호시설, 모텔 등으로 옮겨졌다. 한 학대피해 장애인은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근무하는 상담원의 집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올해 5월, 쉼터는 임시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수용인원이 3∼4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도 복지부 담당부서는 “(해당 쉼터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부 관계자는 “쉼터 운영 법인이 바뀌면서 새 운영자 선정과 시설 이동 등 상황으로 운영 중단 기간이 발생했다”며 “현재는 정상적으로 쉼터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갈 곳 없는 학대피해 남성·아동 장애인들
2020년 장애인 학대 사례 중 남성 피해자는 489명(48.5%), 여성 피해자는 519명(51.5%)으로 집계됐다. 피해자 절반이 남성 장애인이지만 정작 전국 남성 학대피해 장애인 쉼터 정원은 41명에 불과하다. 부산과 대구, 대전, 세종, 경기북부, 강원, 경남 지역에는 아예 남성 학대피해 장애인 쉼터가 전무했다. 이 지역의 남성 학대피해 장애인은 쉼터 이용 시 타 지역으로 이동해 긴급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대피해 장애아동의 전용 쉼터도 부족하다. 복지부가 올해 4월 2022년 피해 장애아동 쉼터 공모사업을 통해 서울, 부산, 경기 지역에 쉼터 설치를 추진하고 나섰지만 이외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반면 2020년 기준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장애아동 학대신고는 268건에 달했다. 이 중 학대 판정된 사례는 133건으로 2020년 전체 학대 사례의 13.2%를 차지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기 32건(24.1%), 울산 22건(16.5%), 대전과 강원 각각 11건(8.3%) 등 순으로 많았다.
학대피해 장애아동 전용 쉼터가 설치되는 지역을 제외한 울산, 대전, 강원 등 장애아동 학대 사례가 다수 발생하는 지역은 피해아동이 머물 쉼터가 없는 상황이다. 이들 아동은 별도 분리 없이 성인 학대피해 장애인과 함께 생활한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계자는 “쉼터 부족으로 성인 장애인과 장애아동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이 외에도 학대 피해자가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 쉼터에 함께 입소해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정부지원 시급… 전국 상담원 62명 불과
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에 소속된 상담원은 62명이다. 반면 학대 의심 사례는 1년간 2438건으로 상담원 1인당 평균 담당하는 사례(사건)는 39.3건으로 집계됐다. 상담·지원 횟수는 총 2만215회로 상담원 1인당 평균 상담 및 지원 횟수는 326회에 달한다.
전년도(상담원 1인 평균 42.8건, 459.0회 상담 및 지원)와 비교했을 때 상담원 1인 담당 사례 건수는 평균 3.5건, 상담 및 지원 횟수는 133.0회 감소했지만 여전히 업무가 과중한 상황이다.
특히 부산의 경우 상담원 1인 평균 96.0회의 사례를 담당했는데 이는 전국 평균보다 약 2.4배 높은 수치다. 이어 충북은 81.0건, 충남 75.0건, 경북 56.0건 등 순이다. 상담원 1인의 1년 동안 상담 및 지원 횟수는 전남이 864.0회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충북 543.5회, 부산 462.0회 순이다.
근무 상담원의 경우 경기에 총 11명의 상담사가 근무,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10명, 경남 5명, 강원 4명, 대구·인천·광주·울산·전북·전남 각 3명, 부산·대전·세종·충북·충남·경북·제주 각 2명 등 순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을 떠나는 상담원도 매년 늘고 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이직률은 2018년 21.1%에서 2020년 35.2%로 14.1%포인트 급증했다. 학대피해 장애인에 대한 적극적 보호를 위해서는 전문지식을 가진 상담원이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높아지는 이직률에 전문성 유지도 어려운 실정이다.
인력 부족에 따른 현장 대응 능력 저하도 문제다. 장애인복지법사업안내에 따르면 장애인 학대 사건은 신고 접수 후 72시간 내 조사가 원칙이다. 하지만 정부와 각 지자체가 전문 상담 인력을 충원하지 않으면서 고질적 인력 부족으로 2018년 50.4%였던 72시간 내 조사율은 2020년 46.8%로 하락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상담원은 “장애인 학대 피해자를 직접 발굴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인 예방활동으로 피해자를 막아야 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라며 “하지만 인력 부족 현상이 심해 신고 접수한 학대 사건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피해자 격리는 미봉책에 불과… 2차 가해 막을 보호환경 시급”
“장애인 학대 피해자가 체감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신해(사진) 충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1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학대 사건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정부의 피해자 격리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장애인 학대 예방과 온전한 피해자 보호’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유관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장애 당사자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안전한 보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대 피해 장애인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최일선 기관인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전문성을 가지고 학대 피해 장애인을 지원해야 하지만 부족한 예산과 고질적 인력 부족 탓에 지원 활동에 어려움이 크다.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노인보호전문기관과 비교하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 신 관장의 진단이다.
충북 지역의 2019년 상담 인력 대비 신고 접수 사건을 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상담원 1명당 20.8건, 노인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47.6건이다. 반면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상담원은 1명당 99.5건을 담당해 업무가 과중하다.
지원 예산과 관련해서도 신 관장은 “2017년 개원 이후 현재까지 지원 예산이 동결된 상황”이라며 “직원들의 연봉 삭감으로 운영비를 확보해 기관을 운영하는 상황까지 닥치면서 직원들의 고통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 부족으로 인력 충원이 어려워지자 학대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학대 피해 장애인에 대한 지원 및 보호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신 관장은 “매뉴얼에 따라 72시간 이내, 2인1조로 현장 조사 및 응급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며 “2차 가해와 보복의 위험이 만연한 학대 현장에서 피해 장애인을 신속하게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기능과 인력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각 지자체의 공무원이 학대 현장에 의무적으로 동행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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